의정 갈등이 장기화 되면서 간호사 채용시장이 급격히 얼어붙는 모양새다. 적자 경영에 신음하는 대형병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간호사 채용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의대 증원 사태에 따른 대학병원들 경영난 여파가 간호사 취업난으로까지 이어지고 있고, 사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간호사 채용 한파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의정 갈등이 불거진 이후 신규 간호사 채용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대학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중 올해 상반기 신규 간호사 채용을 진행한 곳은 삼성서울병원과 중앙대병원 등 극히 일부에 그쳤다.
지난 2월 시작된 의료대란 사태 이후 경영상황이 악화된 병원들이 사실상 간호사 신규 채용을 멈추면서 취업을 앞둔 예비 간호사들은 취업 절벽에 맞닥뜨렸다.
의료대란 사태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간호사 채용시장 한파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오히려 ‘간호사 블랙홀’로 불리는 대학병원들의 경쟁적 채용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기간 면접제’라는 제도까지 도입할 정도로 간호사 채용시장은 성황었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 22개소가 신규 간호사 채용 면접을 같은 시기에 진행하는 ‘동기간 면접제’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동기간 면접제는 여러 병원이 간호사 최종면접을 동일 기간에 실시하는 것으로, 지난 2019년부터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시행돼 왔다.
2024년 채용부터는 대상기관을 확대해 수도권 소재 22개 병원의 신규 간호사 최종면접을 해당 병원의 자율 선택에 따라 7월 또는 10월 중 동기간에 실시할 예정이었다.
이는 일명 ‘대기간호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함으로, 수개월 동안 발령 대기 상태인 간호사의 불안감과 중소병원 간호사의 대형병원 연쇄 이동에 따른 인력난 해소를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의료대란 사태로 병원들 경영상황이 악화되면서 모든 계획이 무산됐다.
통상 병원들은 간호대학 졸업 예정자 등을 대상으로 1년 전부터 이듬해에 필요한 간호사를 채용해 왔다. 합격자들은 간호국시 통과 후 3월부터 의료현장에 투입되는 방식이었다.
합격 이후 의료현장에 배치되기까지 대기 발령 상태인 ‘웨이팅 간호사’들이 즐비했지만 이번 의료대란 사태 이후 각 대학병원들이 대기 간호사 발령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 합격해 3월 출근 예정이었던 A간호사는 “출근 2주를 남겨 놓고 전공의 집단사직이 발생하면서 병원이 발령을 무기한 연기했다”고 토로했다.
예비간호사들 앞에 놓인 ‘취업절벽’, ‘웨이팅게일’ 간호사들 한숨만 푹푹
채용시장이 위축되면서 취업을 앞두고 있던 간호대학 예비 졸업생들의 시름도 커지는 모습이다.
보통 2월 간호사 국가시험 합격자 발표 이후 3~5월 사이에 신규 간호사 채용공고가 봇물을 이뤘지만 올해는 의료대란과 시기가 겹치면서 취업난이 발생했다.
매년 세자릿수 규모의 신규 간호사를 채용했던 빅5 병원들도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병원에서 채용공고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취업을 목전에 둔 간호학과 학생들은 의료대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병원에 취직할 예정이었던 이들은 생계 문제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경남의 한 대학병원에 채용 예정이었던 B간호사는 “예비 간호사들이 160명에 달하지만 아무도 입사하지 못했다”며 “생활비 충당을 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성토했다.
이어 “중소병원에 취업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채용시장에 갑자기 많은 인원이 쏟아지면서 중소병원 취업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4학년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휴학’까지 고려하고 있다. 취업이 되지 않은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는 것 보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게 덜 불안하고, 향후 취업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간호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휴학’과 관련한 게시물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간호대 예비 졸업생인 C씨는 “대학병원들이 당분간 채용 계획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절망했다”며 “채용 한파에 직면하는 것 보다 차라리 휴학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또 다른 간호대 학생 D씨는 “내년 채용시장이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 더 우려된다”며 “교수들까지 집단휴진에 나서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의사들 싸움에 예비 간호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우선 2학기에 휴학하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복학 시점을 조율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간호대 학생들 ‘채용 한파’ 절감, 기존 간호사들도 ‘퇴사’ 우려감 고조
더 심각한 문제는 기존에 대학병원에 재직 중인 간호사들 조차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병원들이 의료대란 장기화에 따른 경영난을 이유로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권고하고 있고, 일부 병원들은 퇴직 신청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빅5 병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일찌감치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긴축 재정 및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대병원은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500억에서 1000억으로 늘렸고, 서울아산병원은 무급휴가뿐만 아니라 빅5 중 최초로 희망퇴직 신청도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은 간호사를 포함한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으며, 경희의료원은 무급휴가, 성과급 반납, 운영비 삭감 등의 자구책을 가동 중이다.
경북대병원은 차입 경영을 검토하는 등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고, 충남대병원은 적자 누적으로 최근 비상진료 1단계를 2단계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무급휴가 권장 사항을 ‘권고’로 변경하고 추가적인 비용은 절감·축소하기로 했다.
특히 경영난이 악화되고 있는 백중앙의료원은 20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를 시범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처럼 대학병원들이 비상경영과 긴축재정에 들어가면서 간호사 신규 채용은 물론 기존 간호사들도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E대학병원 간호사는 “병원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퇴직과 무급휴가 사용을 강요받고 있다”며 “이 상황이 길어지면 자리를 보전하는 것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나마 전문간호사는 PA로서 효용성이 있지만 일반 간호사들은 위기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필요할 때만 쓰고 버려지는 티슈 노동자 신세라는 생각에 참담하다”고 덧붙였다.
의사
박대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