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숙원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이뤄질까
정부 추진 의료개혁 4대 과제,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주요 안건 포함
2024.07.20 05:46 댓글쓰기

[기획 4] 보건복지부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선정한 의료개혁 4대 과제 가운데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는 의료계 숙원이다. 


특히 세부 과제로 포함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은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대안으로 의료계가 줄곧 요구해왔다.


의료사고 발생 시 고의가 아니더라도 민사는 물론 형사 책임까지 부담하게 됨에 따라 의사들이 중증·응급 포함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개혁 특위가 추진하는 우선 과제 중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은 다른 정책들과는 달리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높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의료계는 물론 환자·시민단체까지 의료특위가 내놓은 특례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의사, 보험가입 시 형사처벌 면제 가능” 


의료사고는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환자는 신체적 피해와 함께 인과성 입증, 소송 장기화 등의 어려움을 가진다.


의료행위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소송은 쉽게 장기전으로 진행된다. 


의료인에게도 의료사고는 큰 부담이다. 민·형사상 법적 책임이 발생하며 나아가 의사면허 취소 및 의료기관 존폐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중증질환자나 난이도 높은 의료행위를 기피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에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은 의료인에게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책임보험에 가입한 의료인이 의료과실로 환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 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면제한다. 


환자 보호를 위해 의료인 대상으로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조정·소송 등에 따른 의료인의 손해배상 의무 확정 전 피해자의 신청에 따라 보험사에서 치료비를 지급하는 가불금을 도입해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제공한다.


의료인이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환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형사처벌을 면제한다. 다만 필수의료가 아닌 의료행위로 중상해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여기서 종합보험이란 손해배상금 전액을 보장하며 환자와 의료인 합의 여부를 불문하고 치료비 등을 우선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종합보험에 가입한 의료인이 필수의료행위 중 환자가 사망했을 때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게 한다.


원칙적으로 형사절차가 진행되도록 하되, 치료 과정, 피해 변제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 함께 의료인이 진료기록·폐쇄회로(CC)TV를 작성·보존·제출하지 않거나 조작하는 경우와 의료인이 환자의 중재원 의료분쟁 조정신청을 거부한 경우 특례 적용이 배제된다.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해 다른 부위를 수술한 경우, 환자의 동의가 없는 의료행위를 한 경우 등 일부 유형의 의료과실이 있는 경우 또한 특례 적용이 배제된다.


의료계, 환자·시민단체 모두 ‘불만’ 성토


문제는 의료특위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에 대해 의료계는 물론 환자·시민단체, 이해 당사자들까지 모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의료계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에 포함된 ‘보험’ 관련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보험 가입 및 산정 여부, 범위, 대상자 등에 대해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의료사고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의료행위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고의인지 아니면 중과실인지, 업무상 과실인지 여부 등을 따져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사고처리특별법에 해당 내용이 포함됐다”며 “의료계와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 상근부회장은 “특히 환자 사망에 대한 특례 적용도 필요하다”며 “필수의료 분야 인력으로서는 적극적으로 수술 등을 시행·참여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특례법에는 책임보험과 종합보험 형태로 의료사고에 대한 보장이 이뤄지는데, 보험료 산정·가입을 개인별 또는 의료기관별 적용, 위험률과 보험료 비례 등도 쟁점 사항이다. 


송 상근부회장은 “만약 위험률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면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부담되는 법안이 될 수 있다”며 “보험료 지급 대불·보조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필수의료 분야부터 가입을 의무화하고 단계적으로 범위를 넓혀나가는 방안과 보험 가입 대상으로 의료인 5개 직종이 모두 포함되는 게 실효성 있는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환자·시민단체들은 이 법안이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들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기에 특별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은영 이사는 “협회체 논의 과정에서 추천 위원들이 사퇴하기도 했고, 의료계 요구가 일방적으로 많이 반영된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중상해의 경우 위헌 결정을 받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참조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의 초안이 만들졌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의료사고 입증책임 의무가 여전히 환자 몫인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환자·시민단체는 의료행위 업무와 무관한 중과실까지 형사 특례로 인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형사 책임 완화 범위는 필수의료 의사, 혹은 행위로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은영 이사는 “교통사고로 인한 형사책임 면제 특례는 관련법에 교통사고 입증 책임이 전환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지만 의료사고특례처리법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소송에 고액 비용과 장기간 소요되는 시간 등 의료분쟁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약자에 위치해 있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의료적 전문성을 갖고 직접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이 과실이 없거나 의료사고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 책임 전환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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