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PA(진료보조인력)’ 마침표 절실
박대진 데일리메디 취재부장
2021.12.30 11:16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서울대학교병원 결단에 의료계는 술렁였다. 불편한 진실이던 PA(Physician Assistant), 일명 ‘진료보조인력’과 관련한 파격 행보 때문이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던 이들 간호사의 역할과 지위를 병원 차원에서 공식 인정함으로써 ‘의사 보조인력’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키로 했다.
 
직역 간 첨예한 갈등 탓에 제도권과 정치권은 물론 의료계에서도 ‘기피 대상’으로 여겨졌던 PA 문제가 서울대병원의 과감한 결정으로 변곡점을 맞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서울대병원은 오랜 천착을 거듭한 끝에 지난 5월 PA를 정식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역할과 지위, 보상체계 등을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PA’라는 단어가 주는 반감을 감안해 임상전담간호사(Clinical Practice Nurse), 즉 'CPN'이라는 용어로 대체키로 했다.
 
그동안 음성적으로 운영돼 왔던 ‘PA’를 앞으로는 ‘CPN’이라는 명칭으로 양성화 한다는 의미다. 대상은 160명 정도로 추산했다.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이들 간호사에 대한 조직 편제였다. 기존 ‘간호본부’ 소속이었던 CPN들이 ‘진료과’ 소속으로 바뀌었다.교수, 전임의, 전공의 등과 함께 진료과 일원이 된 셈이다. 
 
이들은 해당 진료과에서 이뤄지는 각종 컨퍼런스에도 참여한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연수, 교육 기회도 보장 받는다.
 
새롭게 마련된 ‘임상전담간호사(CPN) 운영위원회 규정’은 CPN을 ‘의사의 감독 하에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로 정의했다.
 
그들의 존재는 분명히 인정하되 업무는 현행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수행토록 한다는 의미다.
 
서울대병원의 이 같은 행보는 김연수 병원장의 과감한 결단에 기인한다.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을 공론화하고 제도권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실제 김연수 병원장은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PA를 적극적으로 양성,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는 국정감사 직후 내부적으로 PA 양성화 논의에 들어갔고, 약 6개월 간의 준비 끝에 이번 CPN 운영위원회 규정을 도출해 냈다.
 
그동안 PA 양성화를 반대해 온 직역이나 단체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됐지만 서울대병원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 만큼 희생의 십자가를 자청하기로 한 셈이다.
 
예상대로 반감이 만만찮았다. 특히 개원가 반발이 거셌다. 반면 대학병원 일각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해 희생의 십자가를 짊어졌다”며 옹호 목소리도 나왔다.
 
혹자들은 PA를 둘러싼 논쟁의 단초가 불명확한 업무 범위에 있다고 말한다. 현행법상 각 직역의 업무 범위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작금의 상황이 불거졌다는 지적이다.
 
실제 의료법에는 의사 업무를 ‘의료와 보건지도’, 간호사는 ‘의사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로 규정하고 있다. 명료해 보이지만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 소지도 다분하다.
 
서울대병원 CPN을 놓고 보더라도 ‘의사 감독 하에 진료를 보조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로 정의하고 있는 만큼 명백한 합법이다.
 
다만 구체적인 행위를 놓고 얘기하면 다시금 시시비비(是是非非)가 생길 수 밖에 없다. PA 논쟁이 공회전을 거듭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그 행위 정당성과 부당성을 판가름하는 유일한 주체는 주무부처인 복지부도, 이해 당사자인 의사나 간호사도 아닌 법봉을 쥐고 있는 판사다.
 
PA 관련 의료분쟁 판결에 따라 합법과 위법이 갈린다. 관련 판례를 모아 PA 업무 범위를 설정하면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웃픈 현실이다.
 
그나마 행위 주체가 간호사인 경우는 다행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응급구조사, 심지어 간호조무사 등에게 PA 업무를 맡기고 있다. 이는 명백한 위법이다.

때문에 PA(Physician Assistant)가 아닌 UA(Unlicensed Assistant), 즉 ‘무자격 보조인력’이라는 지적이 일견 일리가 있다.
 
외과계 의사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법적으로 확립돼 있지 않은 ‘PA’라는 인력이 생겨났고, 부지불식 간 국내 의료시스템의 깊숙한 곳까지 자리매김해 버렸다.
 
이제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관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직역, 직능 갈등만 키울 뿐이다.
 
서울대병원 결단은 그래서 중요하다. 불편한 진실을 공론의 장(場)으로 끄집어 낸 만큼 이번에야 말로 PA 문제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김연수 병원장은 ‘욕받이’를 각오하고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그 과감한 결단이 단순한 돌출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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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했군 12.31 09:17
    PA를 CPN으로 명명하기로 한 것은 잘한 것 같다.

    면허증 가진 의료인을 마치 불법 무면허의료인으로 취급하고, 영역을 넘겨보는 것처럼

    간주되는 것이 마뜩잖았다.

    의사면허증을 가진 사람은 의사, 간호사면허증을 가진 사람은 간호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