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책, 의료 붕괴되면 수십·수백만 환자 위험"
류옥하다 전(前) 대전성모병원 인턴
2024.03.11 05:52 댓글쓰기



"병원을 나올 때 가장 눈에 밟혔던 건 제 손에 목숨을 맡겨놓은 환자들 이었어요. 무슨 일 생겼을까 매일 '대전성모병원'을 검색하고, 여전히 중환자실에 두고 온 환자들이 마음에 걸려요. 하지만 정책으로 인해 의료가 붕괴되면 나중에 사망할 수십만, 수백만 사람들도 제 환자이기 때문에 사직했습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 전공의 1만여 명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지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전공의들 대화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받고도 병원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발송하는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대 증원 등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에 반발해 지난 16일 가톨릭중앙의료원(CMC)에 사직서를 제출한 류옥하다(25) 씨도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받은 전공의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 1년간 대전성모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이달부터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근무할 예정이었으나, 사직 후 개인 자격으로 언론 등을 통해 의료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류옥 씨는 사직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사직 밖에 답이 없었냐', '병원에 남아서 할 수 없었냐'고 묻는데 전 이렇게 답한다.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에도 없었던 '의대 증원'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일방적이고 성급했다. 총선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이다. 이로 인해 전공의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모멸감을 느꼈다. 집단적인 절망의 상황이기 때문에 선택지가 사직밖에 남지 않았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게 아니라 국민 여러분께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봐 달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류옥 씨는 대전성모병원에서 가장 먼저 사직서를 제출한 인턴 중 한 명이다.


그는 "저와 같은 방 룸메이트 인턴이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모두가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저는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사직 물결이 시작된 건 정부가 호수에 돌을 던졌기 때문이고, 단지 저는 물결 맨 앞에 있었을 뿐이다. 지금도 물결은 계속 일어나고 있고,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류옥 씨가 사직서를 제출할 당시에는 우려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동료들을 설득했다.


류옥 씨는 "처음에는 '왜 먼저 나서야 하느냐', '왜 막내가 나서느냐'라는 반응이 많았다. 내부에서는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고, 사직을 할 때 함께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저의 생각을 진솔하게 말해주고, 의료 정책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 의료정책 현실을 제가 아는 대로 이야기해 줬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득됐다"고 말했다.


'사직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결정을 내렸지만, 환자들을 생각하면 결심이 쉽지만은 않았다.


류옥 씨는 "병원을 나올 때 가장 망설이게 된 이유가 바로 환자였고 여전히 중환자실에 두고 온 환자들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의료 붕괴로 죽을 수도 있는 수십만, 수백만 사람들도 제 환자고, 미래의 제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사직했다"고 밝혔다.


"인턴 시절 가장 즐겁게 일했지만 몸은 제일 힘들어, 하루 종일 밥 못먹고 야식 다반사"

"병원 전공의 비율 34~46%, 전문의부터 의사 수에 포함시켜야"

"전공의 주 40시간 근무·의대정원 1500명 감축시 복귀 고려"

"수도권에서만 11개 분원 건립 예정, 인턴이 필요한게 아니라 노예가 필요"


고통받고 힘든 사람들 옆에 있어 주고 싶어 의사가 됐다는 류옥씨는 주 120시간 근무를 하면서도 인턴 시기를 즐겁게 보냈다.


그는 "저는 제 인턴 생활에 자부심이 있다. 인턴은 제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라며 "근무하면서 모범 인턴상, 올해의 인턴상을 받았고, 환자 칭찬 카드도 가장 많이 받았다. 진심으로 환자를 대했기 때문에 호응을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너무 자기 자랑 같아 송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공의 비중이 높은 국내 의료 환경 탓에 인턴 근무가 쉽지만은 않았다.


류옥 씨는 "마음은 즐거웠지만 현실적으로 몸은 가장 힘들었다. 밥을 5분 만에 먹어야 하는 상황도 많았고, 하루종일 밥을 못 먹다 야식을 먹는 등 생활이 엉망이 됐다. 인턴 생활 동안 거의 15kg이 쪘다. 또 36시간, 44시간 연속 근무를 하다 보니 당연히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장염도 두 번 앓았고,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를 맞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전공의의 과중한 업무량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류옥 씨는 오히려 의대 증원이 의료 질(質)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낮은 의료 비용으로 높은 의료 효율을 내고 있는데, 전공의들을 갈아 넣은 결과다. 미국 메이오클리닉이나 일본 동경대병원의 경우 전공의 비율이 10%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서울대는 46%, 전공의 비율이 가장 낮은 성모병원조차도 34%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병원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흑자를 내고 있고, 수도권에서만 9개 대학병원이 11개 분원을 추진하면서 2028년 수도권에서만 6600병상 이상이 공급된다. 거기에 필요한 전공의 수가 약 1500명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노예가 필요한 거다"라고 말했다.


류옥 씨는 오히려 의대 정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말 의사 수가 부족하다면 정원을 늘려도 된다. 그런데 어떤 산을 오르는데 A라는 길만 있는 게 아니라 B, C, D라는 길도 있는데 정부는 A라는 잘못된 길, 딱 봐도 총선으로 향하는 길로만 안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병원의 46%까지 차지하던 전공의가 빠졌음에도 의료체계가 큰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지 않냐. 유럽 응급의학저널에 따르면, 의사들이 파업했을 때와 파업하지 않았을 때 응급실 사망률은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정원을 46% 줄여도 되지 않을까. 의사 수도 너무 많고 폐업하는 병원도 너무 많다. 저는 정원을 10%인 300명에서 50%인 1500명까지 감축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물론 개인 의견이고 학계나 전문가들의 의견과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옥씨는 현재 병원으로 복귀할 생각이 없지만,  환자들을 위해 전공의 처우 개선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환자 경험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volume based'에서 'value based'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공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 주 40시간제를 시행하고, 적절한 임금을 줘야 한다. 현재 근무조건이 좋다고 소문난 가톨릭중앙의료원조차 전공의들은 주 100~120시간 일하고 한 달에 200~400만원 정도 받는다. 임금이 PA간호사보다 낮다. 인턴은 도구도, 노예도 아니다"라며 "주 40시간제 의대 정원도 1500명 감축을 고려해 달라"고 밝혔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게 있다. 현재 의사 수에는 전공의도 포함돼 있는데, 선진국처럼 전문의를 기준으로 하면 된다. 당장은 너무 급진적이고 병원 재정에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니 예를 들면 2030년까지 전공의는 3분의 2명으로, 2040년까지 3분의 1명으로 2050년부터는 0명으로 치면 된다"며 "전문가들이 이런 합리적인 대안을 제안했음에도 정부는 철저히 무시한 채 의사 수 문제로 프레임을 만든 뒤 총선형 포퓰리즘으로 의대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류옥 씨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정부는 '집단행동을 사주했다', '파업을 금지한다'는 이유로 대표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처벌하고 있다. 그러면 누가 나서겠냐. 사분오열되고 무능한 정부가 대표자를 없애고 있다. 정부가 칼을 내려놓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작한다면 대표자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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