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 내딛은 환자가 의사 평가하는 시대
제도 시행 전부터 우여곡절···심평원 철저 보안 속 ‘회진시간’ 부상
2017.10.21 06:39 댓글쓰기

환자가 의사를 평가하는 시대로 변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이미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환자경험평가가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의료 패러다임이 환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큰 기류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우리나라도 이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의료 질은 물론 환자의 권리도 향상될 수 있다는 ‘환자경험평가’가 7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초기 상황은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다양한 적정성평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환자경험평가는 시행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환자중심 평가모형 개발연구’를 시작으로 환자경험평가는 약 2년 여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심평원 절차 상 신규 항목의 경우에는 본 평가에 앞서 항상 예비평가를 진행한다. 환자경험평가 역시 지난해에 예비평가를 진행했다. 

결과는 비공개됐지만 당시 예비평가 대상이었던 한 중소병원 관계자는 “서울 및 수도권 대형병원을 제외하고는 점수가 높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 자체가 병원 이름과 의사 이름만을 두고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또 다른 지방대병원 관계자 역시 “충성도와 직결되는 평가로 근본적인 목표와는 다르게 평가가 변질된 지표로 나타나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다수의 병원 관계자들은 평가에 대해 객관화된 지표가 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환자마다 성향이 달라 의료진이 같은 진료행위를 했더라도 느끼는 기분은 천차만별일 텐데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준화시켜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하지만 심평원 입장은 다르다. 심평원 관계자는 “환자가 의사, 간호사와 의사소통이 잘될수록 통증 조절이 수월하고 불필요한 검사가 줄어들며, 환자는 양질의 진료라는 느낌을 더 갖는다는 다수의 해외연구 결과가 나왔다. 환자경험평가는 현재 의료체계 내에서 미흡한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세계적 추세는 의료기관 자체에 대한 측면보다는 의료진 개개인의 평가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환자평가 지표 등을 활용한 가산이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평가가 진행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7월17일 평가 시작
의견이 엇갈리고 논란은 거셌지만 세계적 흐름이라는 판단 하에 우라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환자경험평가가 시행됐다.

지난 7월17일부터 상급종합병원 및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퇴원환자 약 15만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조사기간은 약 3~4개월이다.

심평원은 15만명 중 10%수준인 1만5000명의 자료가 확보 되면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11월경에는 집계는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조사업체인 한국리서치가 심사평가원의 위탁을 받아 조사를 수행한다.

조사내용은 ▲간호사 서비스(4문항) ▲의사 서비스(4문항) ▲투야 및 치료과정(5문항) ▲병원 환경(2문항) ▲환자권리 보장(4문항) ▲입원경험 전반적 평가(2문항) ▲개인 특성 (3문항) 등으로 구성했다.

세부적으로 ▲의료진들이 환자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 줬는지 ▲치료과정 중 치료내용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줬는지 ▲퇴원 후 치료계획·입원 중 회진시간 등에 대한 정보제공을 받았는지 등 주로 환자가 입원 기간 중 겪었던 경험을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 조사는 병원 규모별로 대상 환자 수에 차이를 뒀다. 500 ~1000병상은 150명, 1000~1500병상 200명, 1500병상 이상은 250명의 환자가 평가 대상이 된다.

“중간 집계 등 결과, 비공개 방침”
10월 현재 한국리서치를 통해 심평원은 수시로 환자경험평가 자료를 전달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중간집계 등의 결과는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초 올해 안으로 환자경험평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 됐지만, 잠정적으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심평원 관계자는 “시행 2달이 넘었다. 위탁업체로부터 자료를 받아보고 있다. 하지만 중간 집계보고는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어떤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지 등은 공개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환자경험평가 내용이 공개되는 시기는 내년 상반기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은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고 언급했다.

병원계 반응 역시 베일 속에 가려진 그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서울소재 A대학병원 관계자는 “평가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섣부르게 어떤 결과가 나올지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큰 문제나 민원은 발생하지 않은 상태이며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실 환자경험평가는 병원이 다른 적정성평가처럼 자료를 제출하거나 하는 등의 업무가 없기 때문에 평가를 준비 하는 등 부담은 덜하다”고 덧붙였다. 

지방에 위치한 B대학병원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환자들은 아직 환자경험평가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특정기간을 정해 자료제출을 준비하는 적정성평가와 달리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본 평가도 예비평가처럼 수도권 대형병원 중심으로 높은 점수를 받고 지방 중소병원으로 내려갈수록 점수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드러나지 않았기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상했던 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좋은 취지로 설계된 환자경험평가가 오히려 수도권 대형병원과 지방 중소병원의 격차를 드러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이를 감안한 대책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는 의료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다만, 첫 평가 결과로 등급이 매겨지지는 않기 때문에 ‘줄 세우기’ 등 논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환자경험평가 시행에 앞서 이미 자체적인 툴(Tool)을 갖고 있던 서울대병원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는 분석을 내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선병원을 대상으로 일종의 팁(Tip)을 제공한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환자경험평가 시행 2년 전부터 환자만족도를 판단하기 위한 도구인 ‘SNUH-PEx’를 마련해 적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일부 공개했다. 

여기에는 실제 환자경험평가 문항과 동일한 형태의 질의서가 담겨있다. 의료진 경청, 환자에 대한 존중, 회진시간, 회진시간 안내 및 준수여부 등이다.

서울대병원은 환자경험평가 시 핵심을 ‘회진시간’으로 꼽았다.

서울대병원 CS팀은 “회진시간 영역에서 환자경험이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치의가 환자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마주보고 얘기하는 것이 바로 만족도를 상승 시키는 필수 요인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의사가 환자에게 언제 회진할 것인지 등을 보다 친절하고 철저하게 알리는 ‘회진예고제’ 등을 활용하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많은 입원환자들은 정확한 회진시간이 정해지면 보다 편하게 담당 교수를 맞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안정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본적 영역이 되겠지만 이 항목에서 평가 점수의 격차가 많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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