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 다름 없던 대한민국 의료인공지능 가능성 충분'
서준범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회장
2020.11.04 05:14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의료와 인공지능(AI).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용기있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이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17년 전 컴퓨터와 관련된 의료 영역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주변에서도 고생만 하고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말렸다. 하지만 젊은 연구자들이 그 과정을 또 거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최근 열린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만난 서준범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장(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던 당시를 회상하며 학회가 가진 순기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는 2018년 10월 출범해 올해로 창립한 지 2년이 됐다. 의료계는 물론 공학‧산업‧법률‧인문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의료인공지능 발전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임기가 끝나는 서 회장은 지난 2년의 임기 중 가장 역점을 뒀던 세 가지로 ‘교육’, ‘회원 간 네트워킹’, ‘백서 출간’을 꼽았다.
 
학회는 현재 여름에는 써머스쿨이라는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보건의료인력개발원과는 연 200시간 교육이 이뤄지는 전문가 교육 과정을 개설해 지난해 40명의 1기 졸업자들을 배출했다.
 
회원 간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매년 연말 송년 심포지엄을 개최, 회원들이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고 있다. 
 
서 회장은 “이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하나의 학문체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이 분야에 진입하는 사람들에게도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가 필요하다”며 연레적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취지를 밝혔다.
 
전문가 단체로서 정부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학회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 일환으로 추진됐던 것이 ‘의료인공지능백서’ 출간이다. 학회는 출범 이후 준비해왔던 백서를 이번 추계학술대회에서 공개했다.
 
그는 “개별 연구자 수준에서 의견을 내는 것과 다양한 전문가 들이 모인 단체가 논의를 거쳐 문서를 통해 공식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다”며 “의학, 공학, 산업, 법률 등 각계 전문가가 모여 의료인공지능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고 백서 출간 의의를 소개했다.
 
백서 출간의 기반이 됐던 활동 중 하나는 학회가 매월 회원들만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월례 세미나다. 의료인공지능 정책 동향과 관련해서 한 두가지의 주제를 놓고 회원들이 모여 두 시간가량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서 회장은 “이번 데이터3법과 관련해서는 복지부 사무관도 직접 참여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고, 세미나에서 논의된 부분들을 종합해 복지부에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며 “최신 정책 동향 등을 이해하려는 관련 스타트업이나 회사들은 학회에 참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의료AI 발전 위해서는 정부 거시적 정책 매우 중요"
"데이터3법 실시는 시작, 앞으로 해결할 문제 산적"
"혁신적인 기술 도입 촉진 위해서는 보상체계 마련 시급"
 
서 회장은 "금년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데이터 3법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기존 법들과 충돌되는 부분은 물론 여전히 불확실한 영역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데이터에 대한 법적 문제가 해결되고 기술에 대한 투자만 이뤄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정부와 일각의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실제 의료인공지능이 현장에 쓰이기 위해서는 데이터 외에도 인허가, 보상, 사후 관리는 물론 의료인공지능기술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법적 책임 문제 등 수 많은 산이 있다”며 “데이터 3법 시행은 시작이 끝난 것(End of beginning)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도 민간이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산업화에 따른 다음 단계가 안갯속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 회장은 “정부는 데이터와 기술개발 투자에만 몰두하기보다 거시적 측면에서 문제를 조망하면서 그 다음 단계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주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와 산업을 대척점으로 보는 사회의 인식에 대해서도 서 회장은 아쉬움을 피력했다. 지속가능한 헬스케어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서라도 산업화는 필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모든 산업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면 의료는 망가진 인간을 고친다는 측면에서 실용화 기술의 끝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의료 기술이나 의학 연구가 실제 사람을 구하는 데 쓰이고 지속가능하려면 결국 산업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힘줘 말했다.
 
하지만 의료인공지능의 안정적인 산업화를 위한 선결 과제 중 하나인 보상 시스템 마련은 여전히 갈 길이 먼 실정이다.
 
서준범 회장은 현재 보험체계 하에서는 의료인공지능 기술이 유용성을 입증하고 보상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보험체계는 ‘진단’과 ‘치료’ 행위에 대해 보상하는 시스템”이라며 “기존의 진단과 치료 행위의 ‘질’을 높이거나 혹은 질병이나 부작용을 사전에 ‘예측’, ‘예방’하는 의료인공지능 기술이 보상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상이 없으니 현장에 도입될 수가 없고, 도입이 안 되니 증명할 수도 없다”며 “혁신적 의료기술 도입을 촉진하기 위한 한시적이거나 정책적인 보상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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