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속 영상의학 전문의 판독 '환수처분 무효' 판결 후폭풍
병원계, 유사 사례 소송 문의 증가···법조계 '서비스 '질(質)' 입증되면 가능성 충분'
2020.07.20 05:19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출근을 하지 않고 CT판독을 했다는 이유로 급여를 환수한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온 가운데, 유사한 사례로 같은 처분을 받은 병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을 고려하고 있는 병원들에 법조계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출근하지 않아 의료법령 등을 위반했더라도 의료서비스 질이 담보됐다면 환수처분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최근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CT 판독을 했다는 이유로 건보공단이 급여를 환수한 사건과 관련, 경기도의사회가 낸 처분 취소 소송에서 건보공단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이번 사건 병원들은 비전속 인력으로 신고한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 출근하지 않고 원격으로 CT판독을 했다는 이유로 진단료 등에 대한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받았다.


현행 의료법과 특수의료장비에 대한 규칙은 CT장비를 운용하기 위해선 1명 이상의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배치하도록 정한다. 이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를 총괄해야 한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내부지침인 ‘특수의료장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운영지침’은 비전속 인력에 대해 “최
소 주 1회 이상 근무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건보공단은 만일 영상의학전문의가 출근 하지 않았다면 품질관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한 것이라 볼 수 없으며, 복지부 내부지침에도 위반된다며 이들 병원들에 환수처분을 내렸다.


이어진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건보공단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출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해당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한 판독행위의 의료서비스 질이 담보된다면, 환수 근거가 되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처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담당하는 ‘의료영상 품질관리, 영상화질 평가, 임상영상 판독 업무’는 촬영된 의료영상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이런 업무는 최근 전자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원격지에서 수행이 가능하며, 반드시 출근을 해야 수행할 수 있는 업무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특히 CT의 경우 ‘전속’이 아니라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둘 수 있도록 한 점을 고려하면 해당 전문의가 반드시 출근해야만 품질관리 및 판독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봤다.
 

그러면서 “관련법에 따라 시정명령 등의 제재 사유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전문의의 판독을 거쳐 품질관리 적합판정을 받고 등록된 CT 장비로 영상진단료를 급여 청구했다면 이는 국민건강보험법상 환수처분 대상이 되는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복지부 지침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상위법의 위임규정이 없기 때문에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고 봤다.


“출근과 의료서비스 질적 담보 별개, 의료법령 위반과 국민건강보험법상 환수처분 대상 이원화 추세”


이번 대법원 판단에 법조인들은 “충실하게 의료서비스를 이행했는지가 환수처분 대상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준래 변호사(법학박사. 前 국민건강보험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한 판단으로, 대법원은 영상품질관리 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반드시 장비가 설치된 의료기관에 출근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격지에서 영상 판독을 하더라도 비용청구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점은 유사한 다른 사례에서도 참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또 "이번 대법원 판단이 의료법령을 위반했어도 곧바로 건보법상 부당이득징수 처분 대상이 안된다고 본 측면도 중요하다" 밝혔다.


김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은 요양급여의 서비스질이 담보되지 않았을 때에만 부당이득징수처분을 하라는 취지의 판단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서 그동안 통일되지 않았던 하급심 판결들의 법리가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의사에 의해 의료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환수처분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원이 판단한 대표적인 사례는 다른 의료인 명의로 개설한 병원의 급여청구다.
 

한진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도 “최근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비의료인 개설이나 의료인 복수 개설 등 의료법에 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의 경우에도 건보법상 정한 요양급여 기준 등을 지켜 정상적인 진료를 하였다면, 관련 요양급여를 당연히 환수할 수 없다고 봤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번 영상의학과 비전속 전문의의 CT 판독 사건도 유사한 맥락으로 보이고, 진료행위 자체의 질적 담보, 질적 담보와 관련없는 주무부처 내부지침, 이 지침에 따른 건강보험급여 환수처분에 대해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적법성을 판단하는 것이 법원의 최근 경향이다"며 "이 같은 법리는 의료기관에 대한 다양한 환수처분 사건에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대법원 판결 앞서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CT 관련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비전속으로 출근하지 않은 사건, MRI 판독과 관련해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전속 상근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각각 환수처분이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울러 상근 수준으로 근무하지 않은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둔 병원이 MRI와 CT 비용을 청구했다는 이유로 환수처분을 받은 또 다른 사건에선 병원이 1심 패소했지만, 이번 대법원 판단에 따라 2심에선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이처럼 최근 새로운 법리가 자리를 잡고 있고, 공단 등의 환수범위도 과거와는 달리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개별사례에 따라 다른 쟁점이 생길 수 있어 환수처분에 대한 소송을 고려하는 병원들은 이를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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