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부족한 병원들···혈액 비축량 3일 미만 ‘위기감’
수술 미루거나 지정헌혈자 의무화 등 비상···政 '의료기관 대응체계 마련'
2020.04.10 05:30 댓글쓰기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헌혈자가 줄면서 의료기관 혈액 수급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헌혈이 줄어드는 계절적 요인에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고등학교 개학 및 대학교 개강이 미뤄지면서 단체헌혈이 어렵게 됐다. 군인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군부대도 문을 걸어 잠궜다.

지난 2월 혈액원 소속 간호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중앙혈액원 전체 직원이 격리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국내 혈액공급 시스템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지게 됐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3월 초 국내 혈액 보유량은 ‘주의’ 단계인 3일 미만(2.8일분)으로 떨어졌다.

혈액 수급 위기단계는 크게 ‘관심(blue)-주의(yellow)-경계(orange)-심각(red)’ 등으로 구분된다. 혈액보유량을 기준으로 5일 미만일 때 관심, 3일 미만 주의, 2일 미만 경계, 하루 미만 심각이다.

개인 헌혈이 감소해 혈액 수급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학교 개학까지 연기된데다 단체 헌혈행사도 잇따라 취소되면서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혈액관리본부 확인 결과 지난 1월28일부터 2월 31일까지 학교와 공공기관, 군부대, 일반단체 등 462곳(2만3470명)이 단체헌혈을 취소했다. 현재로선 드라마틱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혈액보유량이 경계 단계인 1.9일분까지 떨어질 경우, 수혈이 필요한 위급환자들에게 혈액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헌혈참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병·의원 혈액확보 비상···일부는 지인 통한 ‘지정수혈’도

수혈용 혈액공급은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에서 혈액을 보관하고 있다가 의료기관에서 혈액원에 요청을 하면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곳 혈액원에서 안정적으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면서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수술 및 이식을 앞둔 환자들이 사지(死地)에 내몰리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료현장에서 당장 수혈이 필요한 수술환자나 정기적으로 혈소판을 공급해야 하는 혈액암환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는 상황이 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선 수술이나 이식을 미루는 사례가 증가하는 모습이다. 고난이도 수술에 흉부외과 전문의를 배치시켜 혈액 소모를 최소화하는 곳도 있다.

이에 따라 일부 병원에선 수술환자를 대상으로 ‘지정헌혈자’를 의무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임시방편으로 일부 환자는 가족 등 자가수혈을 통해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A대학병원 관계자는 “전날 다른 환자에게 혈액을 상당수 써버리는 바람에 이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가족들의 자가수혈도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B종합병원은 내부적으로 환자혈액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적정수혈, 최소수혈시스템을 가동하기 있지만 혈액부족 사태를 피해가지는 못하고 있다.

해당 병원은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의료전달체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 상급종합병원 환자 쏠림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종합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는 환자도 혈액이 모자라 더 큰 병원으로 보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방 소재 한 중소병원장은 “혈액 보유량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인구 감소 등으로 자연스럽게 헌혈자 수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이번 코로나19처럼 외부적 요인이 발생하면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환자단체 “대국민 헌혈 참여” 호소···정치권 “국가 헌혈추진협의회 설립” 주장

상황이 심각해지자 환자단체가 행동에 나섰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회장 김성주)는 최근 ‘대국민 헌혈 참여 호소문’을 발표하고 혈액 부족으로 애를 태우는 암환자들 사정을 전함과 동시에 국민들의 헌혈 동참을 읍소했다.

협의회는 “혈액암환자들은 혈액이 부족해 무균실에서 방치되고 있으며 보호자들은 환자에게 공급할 혈소판을 구하기 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중증암환자와 희귀질환자들은 현재 부족한 혈액으로 바람 앞에 등불 신세”라며 “이들 모두 한시가 급하게 수술과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언론, 국민 모두 코로나19 사태에만 매몰된 탓에 혈액 수급을 등한시 하고 있어 수혈이 필요한 많은 환자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협의회는 “모든 기관과 언론은 코로나19라는 괴물 퇴치에만 총력을 쏟고 있다”며 “그 결과 중증환자들이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모두 움츠리지 말고 헌혈에 동참한다면 애를 태우고 있는 중증환자와 가족들에게 빛과 희망이 될 것”이라며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정치권에선 코로나19로 인한 장기적 혈액수급 위기 대처 방안으로 ‘국가헌혈추진협의회’ 설립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래통합당 이명수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아산갑)은 최근 ‘코로나19 대책 특별위원회 전문가 초청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 의원은 “현행법상 지자체별로 헌혈 증진을 위한 헌혈추진협의회를 둘 수 있는 조항은 있지만, 국가 차원의 콘트롤타워가 부재하다보니 헐액수급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 차원의 협업체계와 시스템 마련을 조속히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혈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빠른 심사와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의료기관 관리 미약, 혈액수급 위기대응 체계 마련”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는 최근 280여개 주요 혈액사용 의료기관에 대해 ‘민·관합동 혈액 수급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의 혈액 수급 위기대응 체계를 신속히 마련할 것을 공식 요청했다.

범부처적인 헌혈증진 노력과 함께, 의료기관 차원에서 혈액수급 위기에 대응할 혈액사용 체계를 선제적으로 마련토록 한 것으로, 지난 1월 30일 의료기관 혈액 적정사용 요청에 이은 후속 조치다.

이에 따라 연간 1000unit 이상 사용하는 의료기관 약 280여 곳은 혈액수급 위기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응급혈액관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해당 위원회는 부원장급 이상의 병원 운영진, 주요 임상 의료진 및 혈액은행 관리자 등으로 구성되며, 특히 부원장급 이상 보직자를 책임자로 임명토록 권장됐다.

아울러 의료기관은 혈액수급 위기시 혈액형별 적혈구제제 혈액보유량을 점검(모니터링)하고, 병원 내부에 응급혈액관리위원회 결정정책 전달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혈액보유량 관리책임자’를 지정해야 한다.

의료기관은 또 응급혈액관리위원회를 통해 혈액보유량 위기 단계에 따른 의료기관 대처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실제 혈액보유량 3.0일분 미만이 지속돼 혈액수급 ‘주의단계’가 선포될 경우, 의료기관은 각 대처계획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혈액 재고량 및 사용량을 준수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예시안을 참고, 자체 ‘혈액수급 위기대응체계’을 마련하고, 실행 여부를 대한적십자사 BISS(Blood Information Sharing System)를 통해 제출해야 한다. 이행이 미비할 경우 향후 혈액수급 위기상황 때 공급을 제한 받을 수 있다.

하태길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그동안 혈액수급 위기대응은 헌혈 증진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혈액사용량 관리 측면의 대책은 미약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의료기관의 혈액사용 관련 역할은 지난 2018년에서야 위기대응 매뉴얼에 규정돼 인식도가 낮았고 그 내용도 구체적이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하 과장은 “이번 조치가 향후 도래할 혈액수급 위기에 대처할 혈액사용 관리방안의 기본 틀이 되고 의료기관이 적정한 수혈관리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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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주 04.10 08:16
    골수이형증후군 환자들은 수술 후 혈소판이 절대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수술후 직계가족들은 수혈이 안됩니다. 지금코로나로 수혈량이 형편없이 부족한 상황이라  합니다.  일반 국민들의 자발적 헌혈이 절대적으로

     시기입니다. 동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