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병원 수출 장밋빛 희망 '금물'
한국 병원 수준 높지만 해외 의료진 문턱·자금력 등 난관…'실패 사례 기억해야'
2014.10.23 07:00 댓글쓰기

[기획 4]미국, 유럽 등 의료 선진국은 수 백 년에 걸쳐 현대 의학을 발달시켜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54년 ‘미네소타 프로젝트(미국의 한국 의료원조 프로그램)’ 이후 불과 반세기 만에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 수년 내 매출 1조원의 의료 수출 전문기관 탄생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렇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을 안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중도 하차 및 실패 사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2000년 중반 성적표 저조… 대부분 현지화 실패


그 간 민간차원의 의료수출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의료수출 1세대로 불리는 클리닉은 대부분 현지화에 실패했다.


지난 2004년 SK그룹이 중국에 합작형태로 진출했지만 현지화 실패와 수익 악화로 인해 2009년 병원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철수한 바 있다. SK아이캉병원을 헐값에 인수한 중국업체는 현재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병원으로 탈바꿈시켰다.


국내외 파트너 간 경영권 대립, 매출부진, 중국 정부의 단속 등으로 인해 경영이 악화되고 2009년을 전후해 모두 철수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이 밖에도 많은 우리나라 중대형 병원들이 중국에 진출했지만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리고 한국으로 철수했다.
국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돼 지난해 9월 말 현재 19개국 111개 병원이 다양한 형태로 나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해외 진출 의료기관은 2009년 49개에서 지난해 111개로 2배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진출한 의료기관의 약 20%가 철수했거나 철수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외진출한 다수 병원의 현지화 실패, 낮은 수익성, 현지 파트너와의 갈등 등이 실패 요인으로 분석된다.

 

각국 제도 특성 파악 부재 등 준비 미흡 


2000년대 초 중국에 나갔던 관절전문병원과 성형외과도 2009년에 모두 문을 닫았고, 한 대학병원의 두바이 의료센터도 지난해 철수했다. 각국의 제도나 특성 등에 대한 충분한 조사 없이 각자 국내에서 하던 대로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열린 ‘의료시스템 해외진출 활성화 포럼’에서 예메디칼그룹 박인출 회장은 1995년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매우 낙후돼 있던 당시를 회상하며 실패 사례를 언급했다.


박 회장은 “SK아이캉병원에 투자를 결정한 것은 중국시장의 무한 가능성을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SK China 등 투자자들과의 운영철학 차이, 소통부재, 자금력 취약 등으로 실패했다”고 밝혔다.


SK아이캉병원 실패를 교훈삼아 박 회장은 2006년 예메디칼센터를 상하이에 설립했다. 박 회장은 예치과 의사들, 상해교민들을 주요 주주로 참여시켰다.


박 회장은 “상하이 예메디칼센터 설립 당시 외국인이 많이 사는 한 지역은 외국계병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 중국 위생국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며 “하지만 병원 설립 후에는 위생국, 공상국 등 당국으로부터 숱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내부 고발, 의료사고 등 악재가 겹쳐 병원 설립 4년만인 2010년 중국 기업에 헐값으로 매각됐다. 예스타(Yestar) 미용성형그룹의 전신이 예메디칼병원인 것이다.

 

현재 예스타 그룹은 상해, 항주, 대련, 무한, 장수, 온주 6개 도시에 미용성형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예스타 그룹은 철저하게 한국계 병원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병원 모델도 한국인이며 병원을 태극기로 도배하는 등 한류 인기를 철저히 이용해 성공하고 있다.


박 회장은 “초기단계 과감한 투자와 건물매입, 중국 부유층을 공략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중국진출 시 충분한 자본과 믿을만한 중국 파트너와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행착오 경험 교훈삼아 의료수출 전환점 기대


의료수출 2세대로 불리는 전문병원들도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다. 1·2세대에 걸친 민간 병원의 해외진출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이끌어 냈다는 점이 성과라면 성과다.


의료수출 3세대는 대형 종합병원이다. 대형병원의 경우 모두 비영리법인(의료법인, 학교법인, 공익법인 등)이라는 특성 때문에 해외 영리병원에 직접 투자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형프로젝트에 동병 이상 규모가 큰 병원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진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한 우리나라지만 지난해 빅5로 불리는 병원마저 서울아산병원을 제외한 4곳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환경에서 나온 최근 서울대병원의 수주는 국내 병원들이 의료수출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그 가운데 최근 중국이 100% 외자병원 설립을 허용키로 했다. 중국 상무부는 베이징·톈진·상하이·장쑤성·푸젠성·광둥성·하이난성 등에서 외국 자본이 지분 100%를 보유한 단독 병원 설립에 관한 시범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다.


현재 상하이 자유무역구(FTZ)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을 보다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이들 7개 지역에서는 외국인이 병원 지분을 100% 보유하는 방식으로 병원을 신설하거나, 기존 병원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개원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중화권을 제외한 외국 투자자들은 중의학(한의학) 계통의 병원은 설립하지 못한다. 현재 외국인은 중국에서 병원을 설립할 때 병원 지분의 최대 70%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나머지 30%는 반드시 중국 현지인이 보유해야 한다.


병원 운영에는 고용 및 잦은 의료소송으로 인한 법률적인 리스크도 존재한다. 이를 문제없이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양질의 파트너사와 제휴를 맺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이번 조치로 우리나라 병원들은 합자방식이 아닌 독자방식으로 중국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중국 파트너사들에게 휘둘리다 결국 기술과 장비, 인원을 모두 빼앗기는 병원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적정비용 산출에 정부 차원 후방 지원 절실


국내 병원이 중국에 진출할 때 드는 비용을 제대로 산출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선 병원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이 10억 원이라면 나머지 홍보비나 급여는 개원 뒤 매출로 충당하지만 중국에서는 국내보다 홍보비 등을 많이 지출해야 해 초기 비용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한국의료수출협회 관계자는 “병원 수출 성공의 관건은 경쟁력 있는 의료기술 외에 자본과 현지화”라면서 “현지 시장 분석을 위한 정보 습득과 현지 운영인력의 수급도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미 의료수출을 핵심 성장전략으로 제시하면서 2020년까지 이 부문 수출 목표를 현재의 3배인 1조 5000억엔으로 잡았다.


사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대형병원의 영리법인이 허용되지 않고, 해외투자용 특수목적법인도 세울 수 없어 제약이 많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의료수출에 걸림이 되는 ‘손톱 밑 가시’를 점검해 뽑는 것이다. 고용창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의료수출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지원법 마련과 후방지원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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