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흔들리는 왕진 시범사업
2019.11.29 05:50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수첩] 우여곡절 끝에 정부의 왕진 시범사업안(案)이 확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왕진수가 시범사업 시행을 의결했다. 왕진수가는 왕진료에 의료행위비를 모두 포함한 포괄형(11만5000원)과 별도 의료행위 산정이 가능한 비포괄(8만원+α)로 나눠졌다.
 
왕진 시범사업은 각계의 대립과 진통 끝에 간신히 결실을 맺었다. 당초 지난 9월 건정심에서 통과됐어야 하지만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늦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왕진수가 등 정부의 재택의료 활성화 추진 계획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일부 지역 의사회에서는 최대집 회장 사퇴를 거론하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의료계는 생각보다 낮아진 수가 금액을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는다. 진료 후 추가업무와 소모되는 각종 치료재료, 교통비 등을 고려할 때 왕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사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의협 또한 “국민 건강권에 대한 고려보다는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경제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평했다.
 
왕진 시범사업이 오히려 일차의료기관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의 왕진수가 시범사업 계획안에 참여기관이 ‘의원’이 아니라 ‘의료기관’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환자 쏠림’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대해 복지부 측은 “시범사업은 의원급으로 한정되며 병원급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범사업 실시가 이미 결정된 이상 반대를 위한 반대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큰 병원’에서 치료받는 데 익숙해진 우리나라 환자들 정서상 왕진 제도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처음 논의되는 정책인 만큼 마찰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 취지의 변질을 이유로 사업 자체를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에는 이제 힘이 실리기 어렵다.
 
보다 와 닿는 것은 현장에서 환자들을 마주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다. 
 
대한노인의학회 관계자는 “환자 부담이 30%이기는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3만원 남짓도 큰 비용이다. 왕진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도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또 “환자가 많은 병원에 왕진 요청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정작 그런 곳은 수요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쏠림 현상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범사업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는 고충을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취재 중 만난 한 개원의는 “왕진 서비스를 이용하는 환자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령으로 인한 퇴행성 질환을 겪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서 의사를 불렀는데 별다른 치료도 안 하고 돈을 달라고 하더라’는 불만이 나올 수도 있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이 같은 소소한 불편이 의외로 거부감이 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병원장도 “왕진수가는 그렇다 치고 사망신고라도 집에서 할 수 있게 하면 부담이 많이 줄 것 같다”고 말했다. 거대한 ‘재택의료 활성화’보다 국민들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먼저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왕진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일차의료 활성화 등의 거창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어떤 형태의 재택의료가 가능할 수 있는지를 포함해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도의 모양을 고민하는 것에 보다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왕진 시범사업을 비롯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정책을 둘러싼 의사단체들 간 갈등이 여전하다. 그러나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현장의 구체적인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의료계가 정부 정책에 강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생소한 첫 시범사업이 장기적 차원에서 의료전달체계 확립 기여 및 고령시대 적정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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