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게임 중독의 질병 분류 논란이 '뜨거운 감자'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코드로 등록했다. 게임이용 장애를 정신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의 하위 항목인 ‘중독성 행위 장애’에 포함한 것이다. 30년 만에 개정된 이번 분류 기준안은 194개 WHO 회원국들이 오는 2022년부터 적용, 우리 정부도 진단 기준을 마련하는 등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대한 게임업계의 반발이 큰 가운데 WHO 행위중독 대응 TF 한국위원인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의학과 교수[사진 左]를 만나 '게임중독 질병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Q.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본 이유는 무엇인가
2000년을 전후로 수십시간 게임을 하던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한국, 중국 등에서 많이 발생하자 '게임 중독'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각 나라에서 디지털 기기 콘텐츠 발달 및 확산과 관련한 부작용으로 게임 중독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으나, 건강문제가 지속 보고되면서 WHO가 4년 여에 걸쳐 다양한 관련 연구결과 및 임상사례를 검토했다. 그 결과, 게임을 중독적으로 사용해 일상생활이 심각하게 어려운 사례를 정신행동 질병으로 정의하고 보건시스템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Q.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근거, 특히 의학적 기준은 무엇인지
중독적 사용상태를 '중독성 장애'로 정의하기 위해선 3가지 연구근거가 필요하다. 첫째는 뇌과학적 기전 연구, 둘째 질병 자연사에 대한 종단 연구, 셋째, 중독적 사용으로 인한 건강 폐해에 대한 연구다. 게임 사용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고, 게임을 과도하게 하면 이런 현상이 만성화돼 대뇌(大腦) 보상회로 변화를 초래한다는 결과가 확인됐다. 또 2013년 이후에만 전세계적으로 9개의 종단연구가 존재하며 대개 30% 내외의 진단유지율이 보고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종단연구, 단면연구 등을 통해 충동성, 우울, 불안, 발달 등 뇌와 정신건강문제, 비만, 안구건조, 근골격계, 사고 등 다양한 건강 폐해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Q. 산업계에선 '진단기준'이 모호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진단기준 간략히 설명하면
WHO는 3가지 게임사용 패턴이 1년 이상 나타나면 질병으로 진단토록 한다. 첫 번째는 조절 불능이다. 게임을 한번 시작하면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먹고 자는 것을 포함한 다른 모든 일상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게임으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계속 생기는데도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고 게임에 더 빠져 있는 것이다. 3가지 핵심 패턴은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제시한 인터넷게임장애 진단기준 9개 중 국내외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 기능 이상이 심한 대상자를 가장 잘 구별해내는 항목 3개만 선택한 것이다. 일상생활이 어렵고, 유의한 신체 손상이 있어 전문가(의사)에 의해 진단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기에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게임을 즐기는 건강한 게이머들마저 환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된 반응이다.
Q. 국내 게임 중독 현황은 어떠한가
국내외 장기추적연구나 유병율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기능 손상이 동반되는 게임사용장애 수준의 대상자는 1~2% 내외로 보고되고 있다. 간혹 우리 사회에 충격을 가져다 주는 아동방임이나 학대 사건들, 부모자녀 간 폭력사건 등은 이러한 기능 손상의 극단적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청소년 시기에 균형잡힌 정신적, 신체적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초기 성인기로 적응을 위한 준비가 안돼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기도 한다.
Q. 실제 진료현장에서 게임 중독 환자들을 많이 보는지
상당히 많다. 매일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하고, 학교 수업시간에 잠만 자 학교생활을 못하는 중학생, 26세 청년은 학창시절부터 매일 서너시간씩 게임을 한 게 습관이 돼 졸업 후 구직활동을 하면서 그 시간이 더 늘어 일상생활 관리가 어렵게 되자 스스로 외래를 찾아온 사례도 있다.
Q. 정부가 민관협의체를 통해 게임 중독 질병 코드 관련 논의에 나선다. 생산적 결론 도출이 가능할지
WHO 결정에 대해 일부 정부부처까지 나서서 찬반 논란을 벌이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본, 독일, 호주, 인도네시아 등에선 예방, 치료지침 개발과 조사를 위한 후속작업을 민간과 정부 차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안다. WHO 결정의 핵심은 소수 게임 중독 환자에서 발생하는 건강문제를 기록하고 근거를 만들어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관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이번 결정을 산업 규제로 보는 시각은 부적절하다. 따라서, 협의체는 WHO 결정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벗어나 게임 중독의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정의하고, 각 부처별로 진행해야 할 후속작업을 논의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게임산업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게임업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면서 게임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도 함께 의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