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연쇄 파열음…현장에선 “이미 곪았다”
환자 이송 지연·응급실 의료진 법적부담 심화 등 ‘한계 직면’ 분위기
2026.05.14 16:56 댓글쓰기

응급의료 현장의 파열음이 전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한 지역에서 터진 사고의 충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연쇄적으로 반복되는 흐름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응급의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시스템 곳곳이 한계 수준까지 곪아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 최근 발생한 산모 이송 사례들은 현재 응급의료 체계가 어떤 상태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달 초 충북 청주에서는 임신 29주 산모가 태아 심박수 저하 증상을 보였지만 충청권 내 상급병원 수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전국 41개 병원에 연락한 끝에 부산으로 이송됐다. 


산부인과 전문의와 신생아 중환자실(NICU) 병상 부족 등이 겹치며 충청권 내 전원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송에만 3시간 넘게 걸린 끝에 결국 태아가 숨졌다.


비슷한 상황은 앞서 대구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2월 대구 동구에서는 임신 28주차 쌍둥이 산모가 조산 징후로 119에 신고했지만 지역 병원 7곳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부재와 신생아 중환자실 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산모는 약 4시간 동안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이동한 끝에 수도권 병원으로 이송됐고, 쌍둥이 중 한 명은 숨졌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더 이상 특정 병원이나 특정 지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 나온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필수과 전문의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응급실 단계에서부터 병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야간·휴일 대응이 가능한 전문의와 중환자실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지역 내에서 응급환자를 받아줄 병원 자체를 찾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례로 전남 지역에서는 응급실 수용 거부 사례가 2023년 973건에서 2025년 2701건으로 2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체류시간 2시간 초과 사례와 재이송 사례도 증가했지만, 전체 응급환자 이송 건수는 오히려 감소세를 보였다.


응급실 넘어 병원 내부 체계까지 부담 누적


여기에 응급실 의료진의 형사책임 부담 문제 역시 여전히 현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남아 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강태규 부장판사)은 최근 업무상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응급의학과 의사 2명에게 각각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대 A씨는 2018년 6월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복통과 구토, 의식장애 등 뇌경색 의심 증상을 보였지만, 의료진은 신경학적 검사 없이 뇌 CT 검사만 시행한 뒤 약 3시간 만에 환자를 퇴원시켰다. 이후 A씨는 뇌경색이 악화해 신체 일부 마비 등 영구적 장애를 입었다.


재판부는 당시 의료진이 환자 상태를 충분히 평가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표준 진료 절차에는 주취 상태의 뇌경색 의심 환자에 대해 의식 상태와 사지 근력 등 기본적인 신경학적 평가를 시행하고, 필요시 CT·MRI 검사와 경과관찰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방치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 상황에서 정확한 의사 전달이 이뤄지지 않아 생긴 문제로 보인다”면서도 “전문적인 판단과 지식을 신뢰해 생명과 신체를 맡긴 환자에게 업무상 과실로 영구적 장애라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됐다”며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의료계는 이번 판결이 응급실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지난 7일 입장문을 내고 “해당 환자는 젊은 연령대에서는 매우 드문 척추동맥 박리에 의한 뇌경색 사례였다”며 “당시 과음 상태로 진료 협조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료진은 혈액검사와 뇌 CT 영상검사 등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응급의학과 의사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며 “이 같은 판결이 젊은의사들의 응급 및 필수·지역의료 기피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는 이번 판결이 응급실 의료진 판단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판단해야 하는 공간인데 결과 책임 중심 부담이 커지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점점 더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추가 검사와 전원 의뢰가 늘어나고 이는 다시 응급실 과밀화와 대기시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응급의료를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자 정치권과 정부도 급히 대응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응급·필수의료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지역·필수의료 인력과 응급이송 체계 문제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정부 역시 고위험 산모·신생아 이송 과정에서 병상과 전문의 현황을 실시간 공유하는 체계 확대 방침을 내놓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단순 이송 체계 보완이나 단기 처방만으로는 현재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환자 수용 문제 뒤에는 전문의 부족과 병상 공백, 중환자 진료 부담 등 병원 내부의 누적된 구조 문제가 함께 얽혀 있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응급실 문제를 단순히 환자를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 수준으로만 볼 단계는 이미 지났다”며 “응급실은 가장 먼저 이상 신호가 드러나는 공간일 뿐이고, 실제로는 병원 내부 진료체계 전반의 부담과 공백이 한꺼번에 응급실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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