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우리나라 유리천장 지수는 2013년 이래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보수성이 강한 의료계 역시 유리천장 높이가 많이 낮아졌다.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무기로 임상현장은 물론 학계, 정계에서 여의사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다만 주요 기관장의 남녀 성비는 여전히 열세다. 데일리메디는 의료계 내에 불고 있는 여풍(女風)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증가세 확연한 '우먼파워'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24일 기준 개업 변호사 1만7771명 중 여성이 4165명으로, 23.4%의 비율을 차지했다. 2006년 494명 대비 약 8배 증가한 수치다.
공인회계사 역시 2016년 시험에서 전체 909명의 합격자 중 여성이 28.1%를 차지하며 최근 10년 동안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5년 간 의사 국가고시 합격자 성비를 살펴보면 여성의 비율이 2012년 32.8%에서 2016년에는 39.1%로 늘었다.
시험 응시자 수도 지난 2012년 전체 3442명 중 여성이 1085명(31.5%), 2016년에는 전체 3319명 중 1255명(37.8%)를 차지했다. 반면 남성 합격자 비율은 같은 기간 67.2%에서 60.9%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의과대학 입학생 비율도 커졌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2015학년도 전국 의과대학 36개교에 입학한 신입생 중 여성은 29.8%를 차지했다.
충북의대의 여학생 비율이 47.1%로 절반에 달했다. 주요 대학별로는 서울의대 32.6%, 연세의대 16.9%, 성균관의대 39.3% 등이었다.
여성 의료인의 비율은 진료과목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한국여자의사회에 따르면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4개 진료과목 전문의 중 56.8%가 여자다.
반면 응급의학과는 1만6678명 중 130명(0.8%), 흉부외과는 48명(0.3%), 비뇨기과는 29명(0.2%)인 것으로 조사됐다.
학계·정계 진출 ‘활발’
지난 10월 대구 인터불고 엑스코에서 열린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여자 흉부외과 의사 86명이 유재현 초대 회장(충남대병원 흉부외과)을 필두로 ‘흉부외과 여의사회’를 발족했다.
전체 흉부외과 전문의 중 여성 비중이 5%에 못미치지만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커진 인적 교류의 장 조성에 응답한 결과다.
이렇듯 여성 의료인이 의료계에서 보여주는 활약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국립중앙의료원 안명옥 원장이다. 안 원장은 산부인과 및 공공의료 분야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모자보건학회 등 다양한 학회에서 활동했다.
또한 제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활발한 입법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대한민국 1호 여성 정형외과 교수’로 알려진 김현정 서울특별시립 동부병원장 역시 지난 2015년 취임해 공공의료 텃밭을 가꿔오고 있다.
여성 의료인들은 학계와 의료계를 넘어 정계로도 진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사 출신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내과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제26대 한국여자의사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제19대 국회에서 활동한 문정림 의원 또한 의사 출신이다.
재활의학 전문의인 문정림 前 의원은 대한소아재활발달의학회 제4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대한의사협회 역사상 첫 여성 대변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여자의사회 김화숙 前 회장은 “앞으로 젊고 똑똑한 후배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며 “리더십 교육, 봉사, 국제학회 참여 등 다방면에 걸친 트레이닝을 통해 여성 의료인의 미래는 앞으로도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존재하는 '유리천장'
여성 의료인의 활동 영역이 학계 및 정계로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여성 전성시대를 열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우선 현재 국내 21개 주요 학회 임원진 중 여성이 회장 및 부회장, 이사장을 지내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21개 주요 학회 중 대한안과학회 백혜정 부회장(가천대길병원 안과),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일옥 이사장(고대구로병원 마취통증과), 대한병리학회 유은실 이사장(서울아산병원 병리과) 등 3명이 전부다.
주요 학회 내 임원진을 차지하고 있는 여의사 비율은 약 14%로 나타났다.
전국 43개 상급종합병원에는 여자 원장은 전무한 상태다. 그나마 한국여성의사회 김봉옥 회장이 충남대병원장으로 활약한 게 유일했다.
국립대병원 최초 여성 병원장이기도 한 김봉옥 회장은 국내 여성 의료인을 대표하는 동시에 前 재활의학회장으로도 활약했다.
이와 관련 한 의료계 인사는 “여전히 의료계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하지만 점차 개선될 것"이라며 "여의사 비율이 늘고 있는 만큼 영향력도 점차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