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달! 미달! 또 미달!…의사수급 소용돌이
수요·공급법칙 붕괴 심화…부실병원 퇴출 등 질(質)관리 절실
2012.04.23 12:27 댓글쓰기

과연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질까? 의대→인턴→레지던트로 대변되는 의사인력 양성 과정에 수급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원자보다 선발정원이 더 많은 기현상이 수 년째 되풀이되며 의사수급 문제는 심각성을 더해만 간다. 의사국시 합격자 보다 인턴 정원이, 인턴 보다 레지던트 정원이 더 많은 작금의 현실. 미달사태 역시 예고된 수순이었다. 매년 전공의 모집에서 미달이 속출하고 기피과의 경우 빅5병원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처참히 붕괴된 전공의 수련 현장. 돌파구 없는 암흑천지의 그 세계를 들여다 본다.

 

괴상한 의사수급 방정식
2012년도 전공의 모집결과는 역시나 처참했다. 대부분의 수련병원이 100% 충원에 실패했고, 체념 상태에서 마지못해 재모집에 나서는 병원들도 적잖았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은 오래 전부터 진행돼 온 전공의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으로 귀결된다.


매년 의사국시 합격자 대비 인턴정원이 많고, 인턴보다는 레지던트 정원이 여유롭기 때문에 일선 수련병원들의 미달은 예견된 사태라는 분석이다.


실제 2011년 의사국시 합격자는 3095명이었지만 2012년 인턴정원은 3806명에 달했다. 결국 의사국시 합격자 모두가 인턴에 지원해도 711명은 미달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레지던트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도 인턴정원은 3877명. 하지만 2012년도 레지던트 정원은 이 보다 80명 많은 3957명이었다. 배출되는 인턴 모두가 레지던트에 흡수된다고 해도 정원을 채울 수 없는 구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전년도 인턴정원과 익년 레지던트 정원의 수요 공급 차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의사국시 합격자와 인턴정원의 간극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2006년 의사국시 합격자는 3489명이었지만 인턴정원은 3725명으로, 총정원에 236명이 부족했다.


이러한 현상은 2007년 506명, 2009년 304명, 2010년 629명, 2011년 782명 등 해가 바뀔 때마다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턴과 레지던트 역시 다르지 않다. 2006년 57명이던 간극은 2007년 63명, 2008년 69명으로 소폭 증가하더니 2009년에는 무려 225명, 2010년 213명으로 급증했다.

 

2011년의 경우 정부가 날로 심각해지는 수급 불균형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무려 153명의 정원을 줄이면서 80명으로 그 간극이 좁혀졌다.


하지만 ‘정원외 모집’이라는 특혜를 부여한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차이는 233명으로, 오히려 전년보다 늘었다.

 

값싼 노동력이 빚어낸 ‘촌극’
이러한 기현상에 대한 해답은 매년 가을 열리는 병원신임위원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자리에서는 ‘전공의 정원을 더 달라’는 병원과 ‘더 이상은 안 된다’는 학회들의 서릿발 대치가 반복된다.

 

수련병원들 입장에서는 소위 ‘저비용 고효율의 만점 일꾼’인 전공의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려하고 학회 입장에서는 희소성을 고려, 정원을 줄이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힘겨루기를 차치하고라도 매년 신규 수련병원들이 지정되면서 전공의 정원은 불가피하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즉 병원의 필요에 맞춰 전공의 정원을 책정하다보니 수급 불균형이 가속화된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2008년만 해도 수련병원수는 238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9년에는 274개로 크게 늘었고 2010년에는 281개로 증가했다.
 

2011년도에는 276개로 다소 줄었지만 이는 4곳이 자진해서 수련병원 자격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타의가 아닌 병원 사정에 따른 임의적인 조치였다는 뜻이다.

 

병원들 입장에서는 한번 수련기관으로 지정되면 큰 변수가 없는 한 지속적으로 전공의를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 보증수표’를 얻게되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 각 대학병원들이 잇따라 규모 확장에 나서면서 인턴, 레지던트 정원 증가는 더욱 가속화 되는 양상이다.

 

의료인력 수요 예측에 실패한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병원계 인사는 “복지부는 병원인력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 반드시 영향평가를 거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복지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 단계적인 정원 축소를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춰간다는 입장을 내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공의 수급 불균형은 해묵은 과제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문제다”며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수련병원 구조조정 불가피
의사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련병원에 대한 구조조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한번 수련병원은 영원한 수련병원’이란 불문율을 과감히 깨야 한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신설 병원에 대한 수련병원 진입장벽을 높여 무조건적 전공의 배정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그 동안 수련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은 큰 이변이 없는한 계속해서 전공의를 배정 받아왔고 신규 병원 역시 어렵잖게 전공의 정원을 확보했던게 사실이다.

 

심지어는 400병상 이상의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1년 간 인턴 수련실적이 없어도 신규 인턴 및 레지던트 수련병원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잔존해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지난해 복지부가 단행한 일부 수련병원에 대한 정원감축 페널티는 구조조정의 시발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복지부는 외과와 흉부외과 수가인상으로 발생한 이익을 전공의들에게 지원하지 않은 수련병원에 대해 '전공의 정원 5% 감축'이라는 페널티를 적용했다.


강릉 동인병원을 비롯해 ▲계명대 동산병원 ▲광명성애병원 ▲대동병원 ▲동수원병원 ▲샘안양병원 ▲시립 보라매병원 ▲여수전남병원 ▲포항성모병원이 대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3년간 정원을 미확보한 병원에 대해 한시적으로 정원회수 정책을 실시한 부분도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2012년 과목별 정원 회수 현황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5명, 외과 46명, 흉부외과 23명, 산부인과 21명, 비뇨기과 2명, 마취통증의학 2명, 방사선종양학 2명, 진단검사의학 3명, 병리 20명, 응급의학 9명, 예방의학 23명으로 총 153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기간 전공의 모집이 안 되고 있는 병원을 솎아내겠다는 의지”라면서 “지금까지는 허수의 개념이 강했다면 앞으로는 전공의 정원을 합리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수련제도 개선안을 흔들림 없이 안착시키겠다”고 말했다.


단순 정원회수를 넘어 수련병원 퇴출 등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엄격한 자격을 정하고 이에 미달되는 수련병원을 과감히 퇴출시키는 철저한 질관리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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