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래를 압박하는 최대 난제는 단연 ‘고령화’다. 2050년이면 60세 이상 고령층이 인구 10명 중 4명(38.9%)에 달해 선진국 평균(31.9%)을 훨씬 웃도는 세계 최고의 ‘노인국가’ 대열에 들 것이란 유엔경제사회국(DESA)의 경고가 엄중한 현실을 거듭 일깨워준다. 2012년 현재 고령층 인구 비중(16.7%)을 감안하면 그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다. 고령화에 따른 노인의료비 역시 천정부지다. 건강보험 가운데 노인 환자 진료비 비중이 2004년 22.9%였던 게 지난해엔 33.3%가 됐다. 정부가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돈은 올해 5조3000억원에서 2020년 11조8000억원으로 늘게 된다. 노인의료에 국운(國運)이 달렸다는 말에 심각한 천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보다 고령화 문제에 일찍 봉착한 이웃나라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노인의료의 재정적 부담은 마찬가지였지만 접근방식은 크게 달랐다. 데일리메디는 앞으로 총 3회에 걸쳐 ‘노인의료 선진국’ 일본을 통해 대한민국 국운을 진단한다.[편집자주]
[上]돈벌이 회전문 아닌, 진정한 복합의료
[中]맞춤요양, 그 곳에 답이 있다
[下]섬세함의 나라, 이래서 일본이다
한국 노인의료 정책의 롤모델 답게 일본 역시 우리와 유사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의료와 요양의 이분법적 체계는 한일 양국의 노인의료가 갖는 공통적 특징이다.
하드웨어인 시설과 의료기기 역시 비슷한 수준이다.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 정서 탓에 오히려 국내 요양병원 및 요양시설이 일본에 비해 더 월등하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인 서비스 내용과 질적 측면에서는 후발주자 한국이 한참 뒤처져 있다. 우리나라가 제도에 환자를 맞추는 식이라면 일본은 제도가 환자에 맞춰진 시스템이다.
격(格)이 다른 요양보험
양국 노인의료를 논(論) 함에 있어 빠뜨릴 수 없는게 바로 보험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노인들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보험과 요양서비스를 지원하는 사회보험을 운영중이다.
즉 우리나라에 국민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이 있다면 일본에는 건강보험과 개호보험이 노인의료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의료와 개호, 생활지원, 예방 등 노인건강에 관한 시스템이 일상생활권역에서 모두 이뤄지는 지역포괄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급성기 의료부터 회복기, 생활기 재활에 이르기까지 단일기관 혹은 동일지역에서 체계적인 서비스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 최적의 노인건강 관리가 가능하다.
일례로 한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고 있는 시설들을 살펴보면 일본의 노인의료 토탈 시스템의 원리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사회복지법인 성화회는 △65세 이상, 상시개호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위한 노인복지시설 ‘타치바나’ △독립생활이 불안한 환자가 입소하는 고령자 전용 맨션 ‘케어하우스 쿠스노키’ △주야간보호로 입욕·식사·재활·레크레이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서비스센터 케야키’ △방문간호 중심의 기능홈 ‘아라에노이에’ △치매환자가 가정적 분위기 속에 생활하는 ‘그룹홈’ △단기간 입소를 통해 일상생활 지원 및 기능 훈련을 받는 ‘쇼트 스테이 나데시코’ 등의 시설을 운영중이다.
이러한 시설의 세분화는 개호보험의 환자 분류체계에 기인한다. 환자상태에 따라 등급을 세분화 했고, 그에 맞는 서비스 제공을 위해 각각의 시설들이 설립됐다.
실제 일본 개호보험의 경우 요지원 2단계와 요개호 5단계 등 총 7단계로 환자등급을 세분화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3분류 체계에 불과하다.
환자 분류 기준은 1등급이 와상상태, 2등급은 일상생활 대부분을 침대나 휠체어에서 지내는 상태, 3등급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외출이 곤란한 상태 등으로 이뤄져 있다.
환자에 대한 지원 역시 1, 2등급 대상자는 재택과 시설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3등급은 재택 서비스 밖에 제공받지 못한다.
때문에 국내 요양시설 역시 이러한 환자 분류체계에 맞춰 운영될 수 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환자들의 일상생활이나 재택복귀는 기대하기 어렵다.
적정수가의 힘, 수혜자는 노인환자
반면 일본의 요양기관들은 각각의 시설마다 환자들에 맞춤식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를 위한 전문 의료진과 훈련받은 요양인력이 충분히 배치돼 있다.
실제 의료법인 공화회에서 운영중인 개호시설에는 56명의 직원이 환자 40명을 밀착 케어하고 있다. 이들은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최상의 요양서비스를 제공한다.
충분한 인력 운용은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50~60대 아줌마 요양보호사가 태반인 국내와는 달리 일본 요양시설 근무자 상당수가 20~30대 젊은층이다.
그 만큼 일본은 노인의료와 관련한 일자리가 많고, 그 인력을 육성하는 교육이 체계화 돼 있다는 얘기다.
고령화 시대에 단순히 젊은층이 경제적으로 노년층을 부양하는 개념을 넘어 일자리 시장에서도 젊은 노동력을 활용토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인력 운용은 돈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국내에서는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인건비 부담으로 여유로운 인력 채용이 불가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인건비 수준은 국내와 비슷한 반면 보험수가는 3배 이상 높아 상대적으로 인력 운용에 여유가 있다.
때문에 최적의 의료 및 요양, 재활서비스를 받는 일본 노인환자들의 재택복귀율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실제 이러한 통합 시스템 내에서의 재택복귀율은 최대 80%에 이른다.
적정수가는 환자를 위한 인력은 물론 시설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의 시설은 눈이 행복한 인테리어가 아닌 철저히 환자의 건강과 관련한 의료장비들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요양시설들은 노인환자의 위생관리와 욕창 방지를 위한 목욕시설에 적잖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설에서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환자 상태에 따라 방식이 다른 고액의 목욕장비를 구비, 운영중이다. 이들 장비 가격은 한 대당 1억원에 달한다.
실제 일본에서는 욕창이 의료사고로 인식될 정도로 환자의 위생관리가 철저한 수준이었다. 이 역시 적정한 수가에 의한 재투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의료법인 아이노회 키노시타 타케시 이사장은 “정부 차원에서도 맞춤식 노인요양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며 “환자들이 체계화된 시스템에 건강을 맡기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는 구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