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저출산으로 인구절벽 상황에 직면했으며, 고령화로 인해 생산 가능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2018년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 진입이 전망되고 있다. 이어 2026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의학계에도 중요한 이슈다. 노인인구의 증가로 노인환자들 역시 증가하고, 그로 인한 만성질환 역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오래 전부터 노인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 신설 필요성이 제기됐고 현재 노인병학회를 중심으로 제도화가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도 고령사회에 대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선 공약으로 치매국가책임제를 내세우면서 노인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방점을 뒀다. 이에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화 논의가 새 정부에서 진전될 수 있을지 추이가 주목된다.[편집자주]
“노인은 나이든 성인이 아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소아 환자의 특수성을 설명하면서 ‘어린이는 작은 성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소아가 단지 크기가 작은 성인이 아니며, 소아청소년 환자에는 별도 처치와 관리 등 유무형의 노력들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노인 환자를 보는 의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인은 단지 나이든 성인이 아니고, 노인환자는 종합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에 의료인들 사이에서는 노인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노인의학 전문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림의대 유형준 교수는 대한내과학회지를 통해 “노인환자는 다발성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개인의 차이가 크고 증상이 비전형적”이라며 “노인의 의학적 특성을 담당할 학문으로 노인의학 활성화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러한 추세를 감안해 몇몇 대학병원의 내과는 노년내과를 개설, 운영 중이기도 하다. 유 교수는 “현재의 의료현실 및 사회경제 환경상 노인의료를 전담하는 의료인력 양성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노인의학교육의 적절한 생성·성장·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희의대 최현림 교수도 “노인의학은 점차 발전해가고 요구도 다양해지는 추세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급증하는 노인환자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전문인력의 부재”라며 “질병의 관리 외에도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노인의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질병에 대처가 가능한 노인의학 전문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성인 환자의 경우 질병 치료가 최우선적 목적이지만, 노인환자의 경우 평상시 건강관리와 각종 건강지표의 유지 등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을 중심으로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화에 힘쓰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김록권 상근부회장은 지난해 박 의원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이제는 다양한 의견을 들어 노인의료 전문가 양성 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라며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만큼 정부 당국자들도 참여가 필요하며, 국회에서도 노인문제에 대한 지금의 방향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수가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제기됐다. 이 역시 노인환자가 일반 성인 환자와 진료양상이 다르다는 데서 비롯됐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는 “노인환자는 환자당 1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노인 환자의 기능을 평가하고 예방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 개입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지원이 필요하다”며 “노인의학 전문인력 양성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노인의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화의 과거와 현재
노인의학 전문의에 대한 제도화 논의는 과거에도 있었다. 정부는 2004년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회’를 구성하고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2005년 저출산과 고령화를 대비해 산부인과와 소아과의 전공의 정원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노인의학 관련 전공의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에 복지부는 의협에 노인의학 전문의 양성에 대한 의견을 조회했으나 의협은 “필요성은 인정하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보냈다. 결국, 노인의학 전문의제도는 무산됐고 대한노인병학회를 중심으로 인정의가 배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인병학회가 소매를 걷고 나섰다.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화 논의에 다시 불씨를 당긴 것이다. 다만, 노인의학 전문의 종류는 세부전문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과, 가정의학과 등에 속한 분과 전문의나 별도의 전문과목을 만드는 것이 아닌 여러 과에서 추가 수련을 통해 노인의학 전문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세부전문의제를 택한 것은 27개 전문과목 외에 별도의 전문과목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현림 교수는 “현재 노인의학 관련해 활동하는 의사들은 내과, 가정의학과를 비롯한 단과 전문의”라며 “단과 진료과목에서 노인환자 비중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27번째 전문과목으로 노인의학을 만들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의료계도 노인의학 전문분야 특성을 이해하고 독립된 법정과목이 아니더라도 세부전문과목으로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4년 의료계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무산된 노인의학 전문의제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세부전문의라는 큰 틀부터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노인병학회는 대한의학회와 함께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화를 위한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
“필요하다” vs “특정학회 중심” 엇갈리는 견해
노인의학 세부전문의 제도화에 대해 학회와 전문과목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과거 의료계 내 합의를 이루지 못해 무산된 노인의학 전문의제도가 이제는 시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화 논의가 특정학회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화에 찬성하는 학회들은 내과학회, 외과학회, 소아과학회, 정형외과학회, 흉부외과학회 등이다. 이들은 다양한 과목에서 참여할 수 있는 세부전문의 방식에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흉부외과학회의 한 관계자는 “노인의학 세부전문의 취득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흉부외과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요양병원 가산과 진입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노인의학 세부전문의제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학회들도 있다. 세부전문의 제도화 논의에 참석한 학회 중에서도, 불참 시 불이익에 대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 전문과목학회의 관계자는 “노인의학 세부전문의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의지가 있고 추진에 문제가 없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 좋을지 생각을 해야 한다.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많은 과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논의에서 빠지면 제도화 뒤에 배제될 수 있어 참여 중”이라고 말했다.
개원가에서도 노인의학 전문의 추진 움직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최성호 회장은 “노인병 관련 인정의와 전문의 신설은 의미가 없다”며 “회원들도 반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의료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인정의 제도가 시행됐는데, 다시 무리해서 노인의학 전문의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인의학 세부전문의 제도에 대해서는 일부 진료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의학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0여 년 전 노인의학 전문의제도는 의료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무산됐다. 그리고 2017년 의학계에서는 다시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인의학 전문의가 의료계의 극적 합의를 통해 마침내 제도화될지, 아니면 과거와 똑같이 이번에도 의료계 합의에 실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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