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노인의료 천국 일본을 가다!
획일적 의료서비스 아닌 병원·지역 특성 맞는 ‘색(色)' 찾아 제공
2018.10.16 10:52 댓글쓰기

[후쿠오카 박근빈기자] 대한민국 의료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놓여있다. 문재인 케어로 통하는 전면 급여화와 함께 동시에 고령화 대응을 위한 의료전달체계의 획기적 전환을 의미하는 커뮤니티케어가 준비되고 있다. 2025년 초고령 사회의 진입을 앞둔 시점, 늘어나는 노인인구와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아래 커뮤니티케어는 절실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문제는 지역사회 연계라는 커다란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원활한 노인의료가 이뤄지려면 과연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는지 명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단순히 환자분류체계로 중~경증을 구분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환자 중심의 설계가 요구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시기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고령화 선배’로 불리는 일본을 찾아가 3곳의 병원을 방문해 현장을 보고 느끼며 국내 적용 시사점을 알아봤다.[편집자주]

日 최초 전(全) 1인실 도입 ‘아리요시병원’
먼저 찾아간 곳은 후쿠오카 공항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미야와카(宮若)시에 위치한 아리요시병원이다. 

주변에는 일본 대표 자동차 브랜드 도요타 공장이 있을 뿐 나머지는 논과 밭으로 이뤄진 한적한 시골 동네였다. 과거에 이 지역은 탄광촌이었다고 한다.

‘과연 이런 곳에 환자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잠시 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1인실에서 사색을 하거나, 공동생활 공간에서 정겹게 대화하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은 동네의 정취처럼 여유로움을 즐기는 듯 보였다.

아리요시병원은 강제 결박을 금지하는 ‘후쿠오카 선언’을 이끌어 낸 곳으로 유명하다. 1998년도 일이다.  또 지난 2002년 일본 최초로 병동 전체를 1인실로 바꿨고 이를 일본 전체로 넓혀가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병원이다.

최신식 장비나 시설을 갖췄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병원 전반적 으로 일본 고유의 문화가 담겨있는 다다미방과 자그마한 소품들로 구성됐다. 내부 조명도 밝기가 적당한 수준을 유지한 상태로 가정에서의 생활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었다.

가장 눈에 띈 부분은 환자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보다 안전한 공간을 형성하겠다는 의지였다. 실제로 낙창, 욕창 등 ‘안전사고 제로’를 표방하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됐다. 믿고 맡겨도 안전하다는 신뢰감이 형성된 상태로 ‘부모님을 믿고 맡길 만큼 매우 안전하다’는 신뢰가 보호자들에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리요시 병원은 설립 이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들은 고령자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입장에 서서 의료를 제공한다’ 이념을 토대로 보다 적은 부담, 최적화된 진료, 한사람 한사람을 향한 인격 존중, 가족 및 지역과 연계 라는 기본 운영방침에 입각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설립 목표가 아닌 이를 증명하려는 자세가 도드라졌다. ‘착한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과제를 설정하는 것이 아닌 환자를 위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측면이 인상적이었다.

병원 방문 후 간담회를 통해 아리요시 미치야스 병원장은 “40년전 아리요시병원이 만들어졌다. 일본 노인의료 성장과 함께 했다는 뜻이다. 탄광촌에 위치해 있었지만 이미 패쇄된 지 오래고 이 지역은 2만명 정도 살고 있는 동네다. 고령화의 흐름을 모두 느끼며 지내왔다”고 운을 뗐다.

아리요시 병원장은 “노인 의료비가 전액 무료였던 시기부터 정액수가가 만들어졌으나 질 하락이 진행됐던 시기도 겪었다. 그 시간을 지내고 나니 환자를 위해 고민하는 것이 이어져야 정책적 변화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욕창 케어가 힘들다면 욕창을 만들지 않는 방법에 대해 구상했다. 섭식이나 배변 케어도 환자의 습관을 보고 미리 진단해서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복기 재활수가 모델 ‘세이아이 리하빌리테이션병원’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세이아이 리하빌리테이션병원(Seiai Rehabilitaion Hopital)이다. 가장 큰 특징은 국내 도입이 예고된 ‘회복기 재활수가’ 모델병원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1988년 후쿠오카에 설립된 후 장애를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재활에 중점을 두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체 210 병상 중 116개의 회복기 병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재활치료사만 150명이 재직하고 있다.

‘회복기 재활의 선구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만큼 세이아이 리하빌리테이션병원은 참신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었다.

앞서 소개한 아리요시병원보다 병상은 더 많았지만 300병상 에는 미치지 못했다. 국내 병원 하드웨어와 비교하면 획기적인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드물게 환자 1명당 20분 혹은 한 시간 이상 맨투맨 치료를 진행했다. 환자의 ‘내일’을 위해 뇌졸중, 자폐증, 뇌성마비 등 여러 질환군의 재활팀을 꾸려 의료를 제공 중이다. 

특히 통상적 재활치료 개념에서 ‘FLEX 재활치료’를 도입해 재활의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기존 오전 9시부터 12시30분, 13시30분부터 5시15분까지라는 시간을 규정하지 않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끊임 없는 재활치료를 이어간다.

이 시스템이 적용 가능한 이유는 환자 대비 전문가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결국 세이아이리하빌리테이션병원에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적자에 허덕이는 병원도 아니다. 인건비가 높은 일본 이지만 이곳이 적자를 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적정 수가와 병원의 경영 철학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일본은 재택복귀율 30%가 넘으면 50만엔의 정책가산이 붙는다. 경영 상 직접적인 도움이 될만한 인센티브는 아니지만 특정 목표를 정하고 의료 질을 담보하면 제도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병원 옆에는 개호노인보호시설 ‘카토레아’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요양원 개념으로 병원 바로 옆에서 운영되고 있다. 인근의 시오지산을 조망할 수 있는 환경, 옥상 노천탕 등이 구비된 상태다. 

주목할 점은 이곳도 나라에서 정한 기준보다 많은 인원을 배정했다는 것이다. 물리치료사 59명, 작업치료사 60명, 언어 청각전문가 23명 수준으로 환자를 전담 케어하는 방식을 택했다.

방문간호스테이션도 운영 중이다. 이 시스템은 지역사회와 밀접한 연계를 갖고 있다.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익숙한 지역과 가정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치의 지시 하에 간호사와 재활팀 직원이 직접 방문해 의료서비스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방문관리를 진행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급성기, 회복기 치료와의 연결을 모색한다는 점은 의료복합체 형태의 일본 노인의료의 긍정적인 장면으로 보여진다.

이바야시 이사장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코줄을 끼면 수가가 올라간다. 그렇지만 최대한 코줄을 빼려고 한다. 지금 환자의 71%는 입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수가보다는 환자가 편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그는 “병원 운영 경비의 60% 이상이 인건비로 들어간다. 많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행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다보면 병원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케어 거점 ‘사가기념병원’ 

마지막으로 사가현 소재 사가기념병원(SAGA Memorial Hospital)을 방문했다. 앞서 방문한 병원처럼 의료복합체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지역밀착형 의료계 구축을 위해 다양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가기념병원은 의료, 보건, 복지를 책임지는 핵심 의료기관 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 아래 매년 새로운 시설이 늘어나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사가기념병원은 인근 지역을 병원 거리로 만들만큼 규모를 키우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노인들의 마음을 충족시키자는 설립 취지에 설정했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신뢰, 청결, 쾌적,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병원이다.

병원 주변에는 노인홈, 그룹홈 등 다양한 시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상태였다. 24시간 응대가 가능한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단기 입소는 물론 데이케어까지 이용하도록 의료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의료복합체 개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의 밀접한 연계를 중점적으로 고령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가기념병원에는 인근 지역 주민들이 오후 시간을 활용해 재활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사가기념병원은 적자경영의 길을 걷고 있었다. 많은 투자 때문에 수익을 창출해 내기 어려운 모양새였다.

요시하라 병원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경영이 힘들다”고 고백 했다. 4억엔 규모의 부채를 떠안고 있으며 이를 갚아가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의료나 개호보험 모두 한정된 재원이다. 적정수가를 기반으로 운영은 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 질 것이다. 사가현지역 언론이 조사하는 기업 순위에서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높은 순위에 있었지만 이제는 100위권에 드는지 헷갈리는 수준이 됐다”고 언급했다.

다소 파격적인 발언에 놀랐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요시하라 병원장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한정된 재원을 두고 의료계를 압박하는 규제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규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같은 자리를 걸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채를 떠안고 적자에 허덕인다고 푸념을 했지만 매년 새로운 형태의 노인홈을 구상하고 또 만들어 내는 중이다.

사가기념병원은 제도적 지원책이 없고 수가보상이 떨어지는 분야라고 할지라도 고령화 대응을 위한 자체 아이디어를 지속적 으로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세웠다. 적자라도 가야할 길을 궁리해야만 하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사실 이 맥락에서는 국내 의료현실과 엇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수가 자체가 3배 이상 차이나는 일본 병원이지만 고령화에 따른 보험재정 악화와 ‘의료계 희생’이라는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는 점은 왠지 모를 아쉬움으로 남았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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