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숙경 기자] 우리나라 의사양성제도 운영에 필요한 주요 정책적 결정에 의사 전문가나 단체의 영향력이 거의 미치지 못하고 정치적 논리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영환 한국의학교육학회 회장[사진]은 지난 11월2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36차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정치권력이나 제도·정책이라는 족쇄 때문에 의료전문가들이 정책적 결정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도입됐을 때 의사단체, 의료인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라는 기관의 입학부터 시작해서 졸업까지 그 자율성이라는 것이 정치적인 한마디에 바뀌는 것은 큰 문제다. 의사 수급 정책을 위한 장기적인 청사진 마련이나 관련 연구는 단순한 정치적 논리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 왔으며, 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나아가 의사양성교육 전(全) 과정(기본의학교육, 졸업 후 교육, 평생교육)에 대한 구조나 내용의 ‘연속성’과 ‘연계성’의 결여를 문제로 지적했다.
이는 의사양성교육과 관련된 기관의 연약한 협력적 체제나 이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거버넌스 부재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의사양성과 관련된 주요 기관은 실제로 단체 하나 하나 의미가 크고 중요하며 각자 역할을 열심히 하는 어벤져스팀 구성원인데 서로 연계가 되지 않는 점이 문제다”라고 언급했다.
이 회장은 “국민 건강과 의료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각각 단체들이 톱니바퀴처럼 역방향으로 서로 맞춰 움직여야 한다”며 “바람직한 의사양성제도 구축을 위해 관련된 모든 기관과 전문가들의 협력적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고 강조했다.
"필수 2년 예과제도 오히려 의학 발전 장애물"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필수적인 2년의 예과제도가 오히려 의학 발전의 장애물이 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예과제도가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저하시키고 임상실습 기간을 늘리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노혜린 인제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사진]는 “우리나라 예과제도 개설의 모델이 된 일본도 1973년 의예과와 의학과의 법적 구분이 사라졌다”며 “우리나라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해 현재까지 의예과와 의학과를 구분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비판했다.
노 교수는 “고등학생 때 생물과 화학을 공부한 학생과 하지 않은 학생 모두 같은 수업 들어야 하는 의예과의 획일화된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저하 한다”며 “학습 동기부여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경직된 교육과정 틀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의대제도와 관련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은 한 나라 안에서도 의대수업연한이 5년 또는 6년으로 다양했고, 1학년부터 의학교육을 시작하기 때문에 임상실습 조기 시작이 가능해 임상실습기간이 3~4년으로 우리나라(2년 미만) 보다 길었다.
또 환자-의사-사회에 관련된 내용을 전체 교육과정에 맞춰 장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1년의 학생맞춤형 연구 또는 프로젝트 학습 기간을 둬 진로를 탐색하고 교양과 인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혜린 교수는 “우리나라 예과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의예과 2년을 제한하고 있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며 “유연한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 선택과정을 늘려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전문직의 정체성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임상실습을 4년으로 늘리는 건 어렵지만 국제적 추세를 따라 어떻게 하면 임상실습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한다”며 “교수와 자원을 일정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