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트 시술 후 평생 복용하는 유일한 약제였던 ‘아스피린’ 입지에 변화가 예상된다. 보다 월등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약물로의 대체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플라빅스’라는 제품으로 널리 알려진 항혈전제 클로피도그렐이 아스피린보다 스텐트 시술 환자에게 유효하다는 사실이 입증돼 의학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효수 교수팀은 전국 37개 병원과 함께 5500명의 환자를 등재해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을 각기 투여하면서 6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를 8일 발표했다.
클로피도그렐이 아스피린보다 우월해 심혈관 사건 재발을 줄이면서 출혈 부작용도 적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망률은 차이가 없었다.
관상동맥 죽상경화증으로 스텐트를 삽입한 후에는 혈전증이나 재협착을 예방하기 위해 수 개월 동안은 혈소판억제제를 2종류 복용하며, 안정된 후에는 평생 1종류의 약을 복용해야 한다.
세계진료지침은 그동안 평생 복용할 단일 혈소판억제제로서 ‘아스피린’을 권하고 있었다. 속쓰림이나 출혈 등 아스피린 부작용이 있는 환자에게는 클로피도그렐이 대안으로 권장됐다.
그러나 이러한 지침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구성된 게 아니고, 전문가들의 자의적인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2013년 김효수 교수는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을 1:1로 직접 비교하는 무작위배정 대규모 임상연구를 기획했다.
연구팀은 국내 37개 기관에서 약물용출 스텐트를 삽입 받은 후 1년 동안 혈소판억제제 2개를 복용하면서 심혈관 사건이 재발하지 않았던 환자 5500명을 대상으로 했다.
무작위 배정 후 2년 동안 각 약제를 투여한 결과를 지난해 란셋(Lancet)에 발표했다.
환자들은 두 그룹으로 배정돼 클로피도그렐(75mg) 또는 아스피린(100mg)을 24개월 동안 매일 1회 투여 받았다.
그 결과, 클로피도그렐이 아스피린에 비해 복합 재발건수(사망+심근경색증+뇌졸중+협심증재발+심각한출혈 합계)를 유의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즉, 단일항혈소판제로서 클로피도그렐이 아스피린보다 우수함을 세계 최초로 밝혔다.
그러나 선행연구의 추적 관찰기간이 2년이었는데, 이 약제는 환자들이 평생 복용해야 하는 것이라서 장기적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추가 추적 관찰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연구팀은 선행연구에서 구축된 5438명의 코호트를 ▲클로피도그렐군(2710명, 49.8%) ▲아스피린군(2728명, 50.2%)으로 나눠 추적 관찰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의 1차 유효성 평가 항목을 모든 원인의 사망·심근경색·급성관동맥증후군 발생, 주요 출혈 사건의 총합으로 정의했다.
이어 2차 안전성 평가항목으로 허혈 및 출혈 사건을 각각 분석했다. 2014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발생한 모든 임상 사건을 분석했으며, 추적관찰 기간은 평균 6년이었다.
분석 결과 클로피도그렐 유지요법의 우수한 효과는 선행연구 기간이 지난 이후에도 지속됐다.
6년 간 관찰한 결과 심혈관사건 재발건수 발생률은 클로피도그렐군에서 약 13%, 아스피린군에서 약 17%로 나타났다.
즉 아스피린에 비해 클로피도그렐은 심혈관 재발 위험율을 26% 감소시킨 것이다.
2차 안전성 평가항목 분석에서도 클로피도그렐 유지요법은 아스피린 대비 허혈 및 출혈 이벤트 발생 위험을 각각 34%, 26%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률에서는 양군 간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약제 중단의 비율도 클로피도그렐군(8.0%)에서 아스피린군(13.5%)보다 유의하게 적었는데, 이는 클로피도그렐 유지요법이 순응도에서도 우수함을 증명한 셈이다.
연구팀은 하위 연구로 고위험 환자군·사망률·경제성 분석 등을 수행할 예정이며, 추가로 5년 추적 관찰해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관상동맥질환자의 10년 코호트를 구축할 예정이다.
김효수 교수는 “이번 연구가 관동맥 스텐트 시술 이후에 평생 복용해야 할 단일 혈소판제로서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을 직접 비교한 유일한 연구”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클로피도그렐이 아스피린보다 우월해 평생 복용해야 할 약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연구 의의를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의 환자중심의료 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미국심장협회가 발행하는 심혈관 분야 국제학술지인 ‘서큘레이션(Circulation, IF: 39.4)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