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해묵은 비정신과 'SSRI제제 처방 제한' 논란 증폭
환자 접근성 확대 등 필요성 주장 확산, 복지부 '유관 학회와 충분히 협의' 신중
2021.12.29 19:51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비정신과 전문의에게 처방일수가 60일로 제한된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오랫동안 의료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사안이다.
 
내과를 비롯해 신경과,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는 우울증 환자 치료 접근성을 제고하는데 있어 이 제한이 큰 장벽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정신과 의사들은 진료영역 침범에 대해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자가 적정한 치료를 받기 위해선 어디까지나 정신과에서 주도적으로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 측 입장은 약 20년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입장 차이는 너무도 큰 실정이다.
 
2002년 복지부 고시 발표···정신과 vs 신경과 격론
 
논란의 시작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2년 SSRI 약제급여기준 고시를 발표하면서다. 복지부는 고시를 통해 신경정신과를 제외한 타 진료과 처방 60일로 제한하도록 했다. 
 
당시 워낙 고가약이었던 SSRI의 과도한 처방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윽고 고시가 시행되고, SSRI를 둘러싼 의료계 내부의 긴 갈등이 시작됐다. 특히 정신과와 신경과 갈등은 극에 치달을 정도였다.
 
사건의 발단은 2011년, 당시 신경과 임원이었던 ‘빅5’ 소속 A교수가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말에서 비롯됐다.
 
그는 현행 처방제한 규정과 관련해 “신경계 중증 환자를 치료할 때, SSRI 처방을 위한 정신과와의 협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신과는 즉각 반발했다. 당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신영철 홍보기획이사는 반박 성명을 통해 “이런 무식한 인터뷰가 사람들의 죽음에 일조하는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두 학회 간 갈등은 신경과학회가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며 법정 싸움 직전까지 치달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대한의사협회는 다급히 양측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각자 주장만을 다시금 확인했을 뿐이었다. 
 
이후 의협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타 진료과 처방기준을 기존 60일에서 1년으로 확대하는 급여기준 조정안을 제출했지만 이마저도 성사되지 않았다. 
 
이어 2016년 8월 대한가정의학회, 대한뇌전증학회, 대한소아과학회 3개 학회가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며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같은 해 10월에는 내과학회, 소아과학회, 산부인과학회, 가정의학회, 마취통증의학회, 뇌신경재활의학회 등이 처방제한 폐지에 목소리를 보탰다.
 
2016년 의료계를 다시 휩쓸었던 논란은 이듬해 복지부가 치매와 뇌졸중, 파킨슨, 뇌전증 등 일부 신경계 질환에 대한 장기 투여 급여를 인정하면서 잠시 진정됐다.
 
올해 국정감사 ‘재등장’ SSRI 논란···의료인 출신 의원들 지적
 
한동안 잠잠했던 SSRI 처방제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언급되면서다. 포문은 간호사 출신 최연숙 의원(국민의 당)이 열었다. 
 
최 의원은 최근 SSRI 처방제한 철폐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홍승봉 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하면서 이 사안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나섰다.
 
증인으로 출석한 홍승봉 이사장 주장의 핵심은 ‘환자 접근성’이었다.
 
그는 “SSRI제제는 최소 6개월 이상 복용해야 하는 약물인데, 현재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만 장기처방이 가능해 환자들의 의료기관 선택권이 축소됐다”며 “약에 대한 우울증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자살률 증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진료과에 따른 항우울제 처방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며 "국제 학계에서도 이 규정에 대한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SSRI제제보다 위험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약물에 대해 처방제한 규정이 없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SSRI 이슈는 이어진 복지위 종합감사에서도 다시 언급됐다.
 
이번에는 의사 출신인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나서 이 규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신 의원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급여 제한으로 합리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의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실제 임상현장에서 이 규정 때문에 우울증 환자들이 중도에 치료를 그만두는 실정"이라고도 주장했다. 60일이 지나면 정신과 의원으로 전원해야 하는 환자들이 번거로움을 느끼고 약 복용을 중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도 복지부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최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SSRI 항우울제 처방 제한을 풀면 자살률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단순히 자살률을 감소시키기 위해 규정을 철폐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학회 간 갈등이 또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권 장관은 “실제 신경정신의학계의 경우 신경과와는 의견이 다르다”면서 “대한의학회 등 유관단체가 모두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場)을 열고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최연숙 의원은 권 장관에게 "처방제한 철폐에 대한 답변을 한 달 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권 장관은 “한 달 내로 해결은 어려운 문제다. 유관 학회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종합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 당장 결론 짓는 것은 무리다”라고 답했다.
 
신경과·가정의학과·소아청소년과 이구동성 "제한 폐지" 주장
 
하지만 국감 전후로 관련 학회들은 다시 논의에 불을 지피는 모습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국감에 앞서 신경과를 포함한 3개 학회 대표가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을 만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면서 논의를 다시 이끌어내기 적절한 시점이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홍승봉 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교수)은 “60일 처방 제한은 우울증 환자가 ‘급성기’에 있을 때 약을 끊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며 “WHO조차 우울증세가 개선된 후 최소 6개월 복용을 권고하는데 이러한 규정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환석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교수)도 “60일 후에는 정신건강의학과로 전원시키면 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약을 먹으면 일단 증상이 호전되는데, 이 단계에서 환자들은 굳이 새로운 병원을 찾아가지 않고 결국 치료는 도중에 중단된다”고 지적했다.
 
김용범 대한노인의학회 회장(위앤장참사랑내과의원 원장) 또한 “우울증 초기 증상을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환자를 봐온 동네의원 주치의들이다. 그러나 처방 제한으로 인해 내과, 가정의학과, 소청과 등 1차의료를 담당하는 많은 의사들이 제대로 된 우울증 치료를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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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월동 01.03 11:57
    참, 정신과 사람들 거시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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