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기다림 무산된 서울대 의대
성추문 논란 강대희 후보자, 총장 취임 목전 사퇴···교수들 '안타까워' 탄식
2018.07.09 05:03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무려 38년 기다림의 결말은 너무나 허무했다. 1, 2차 투표에서 잇따라 승전보가 전해졌고, 최종 관문까지 통과하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기다림은 실현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목을 잡았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인 성추문에 휘말리며 결국 취임 목전 사퇴로 이어졌다. ‘의사 총장시대를 고대했던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환호는 순식간에 탄식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역동적인 리더십으로 의과대학을 넘어 본교 전체를 아우르는 총장을 확신했기에 상실감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청운(靑雲)을 향한 숨가빴던 6개월
 
오는 720일 임기가 만료되는 성낙인 총장의 후임자를 선출해야 했던 서울대학교는 올해 초부터 선거 열기가 고조됐다.
 
공과대학, 인문대학, 약학대학 등에서 다양한 후보군이 하마평에 오른 가운데 의과대학 강대희 학장(예방의학과, 1987년 졸업) 역시 출사표를 예고했다.
 
지난 제26대 총장선거 출마를 고심하다 의과대학장 연임과 맞물리며 뜻을 접었던 강대희 교수는 지난해 1231일로 학장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홀가분하게 선거에 임할 수 있게 됐다.
 
의과대학 내부적으로는 강대희 교수의 총장선거 출마에 기대가 컸다. 특유의 온화한 성품으로 학내에서 평이 좋고, 두터운 인맥도 기대감을 키웠다.
 
실제 동료 및 후배교수들을 중심으로 선거 캠프가 꾸려졌고,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물밑에서 음양으로 지원에 나섰다.
 
서울대학교 총장추천위원회가 지난 32일 제27대 총장 후보자 등록 절차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됐다. 강대희 교수 역시 당당히 등록을 마치며 출마를 공식화 했다.
 
1차 관문인 총추위 투표에서 강대희 교수는 경영대학 남익현 교수, 기계항공공학부 이건우 교수, 기계항공공학부 이우일 교수, 사회학과 정근식 교수 등과 함께 본선행을 결정지었다.
 
공대학장을 역임한 이건우 교수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가운데 강대희 교수는 이우일 교수와 함께 공동 2위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문제는 2차 관문인 정책평가단 선거였다. 서울대학교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총장 선출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부여되면서 모든 후보들을 긴장케 했다.
 
특히 타 단과대학에 비해 인원이 적은 의과대학의 경우 불리할 수 밖에 없었던 만큼 강대희 교수 캠프는 510일 치러진 정책평가단 투표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과는 반전이었다. 강대희 교수는 5명의 예비후보 중 1순위로 2차 관문을 통과했다. 기계공학부 이건우 교수가 2순위, 기계항공공학부 이우일 교수가 3순위였다.
 
승기를 잡은 강대희 교수는 최종 관문인 이사회 투표에서도 승전보를 전했다. 그는 618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건우 교수를 힘겹게 누르고 최종후보로 낙점됐다.
 
이사회가 선출한 총장은 교육부 장관 제청과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사실상 확정이라고 봐도 무방했던 만큼 연건캠퍼스는 환호했다.
 
성희롱성추행논문표절 3종 세트
 
반전은 대통령 임명을 2주 앞두고 벌어졌다. 강대희 교수의 과거 성희롱·성추행논문표절 등 3대 의혹이 불거지며 상황은 급변했다.
 
일부 언론을 통해 지난 20116월 기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여기자에게 스킨십을 요구하는 성희롱 발언을 해 논란이 됐던 사실이 알려졌다.
 
강 교수는 당시 서울대병원 대외정책실장과 서울대학교 법인설립추진단 부단장 등 주요 보직을 맡고 있었으나 이 사건으로 동시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학내 여교수 성추행 제보를 받은 서울대학교 여교수회에서 총장추천위원회와 이사회에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강대희 교수가 공적인 행사 뒤풀이로 1차 저녁식사 후 2차로 간 노래방에서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논문표절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대학교 총추위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를 의뢰했지만 비교적 경미한 사안으로 판단해 문제 삼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의혹이 불거지자 강대희 교수 측은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강 교수와 측근 인사들은 모두 오해이며 소명이 끝난 문제들이고 음해하는 공작이라는 취지로 제기된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여기자 성희롱은 과장됐으며, 여교수 성추행은 기억나지 않는 일이라는 해명이었다. 특히 이러한 의혹 모두 총장선거를 둘러싼 음해세력의 주장이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해당 여기자와 여교수회 측은 강대희 교수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하며 진실 공방전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다.
 
사태가 확산되자 강대희 교수는 결국 지난 6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서울대학교 총장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성추문이 공론화된 지 나흘 만이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모든 구성원들이 변화와 개혁을 위해 후보자로 선출해 주셨지만 그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앞으로 서울대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당혹스런 서울의대 참으로 황망한 일
 
사실 서울대학교 이사회의 최종 총장 후보자 결정 이후 강대희 교수를 둘러싼 성추문 문제는 학내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얘기이고 사안도 경미한 수준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만큼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여기자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강대희 교수가 스스로 서울대병원 대외정책실장과 서울대학교 법인설립추진단 부단장 등의 보직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은 의과대학 내에서도 공공연하게 알려졌던 얘기였다.
 
의과대학 A 교수는 사건의 경중을 떠나 본인 스스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고, 모두 일단락됐던 만큼 사태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취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비보를 전해들어 더욱 안타깝다본인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를 결심했지만 동료교수로서는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B교수는 명실상부한 상아탑의 정점인 서울대학교 총장은 그만큼 엄격한 잣대가 드리워진다시시비비를 떠나 논란의 여지를 남긴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이나 의과대학 모두 황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냉정하게 보면 불명예 취임 보다는 현명한 결정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취임을 목전에 둔 후보자가 사퇴함에 따라 서울대학교의 총장 공백 사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사회는 현재 총장 재선출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서울대학교의 총장 공백 사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은 현직 총장의 중도사퇴에 따른 공백이었다. 총장 후보자 사퇴로 인한 공백은 전무했다.
 
1991년 임기 4년의 총장 직선제를 도입한 뒤 제20대 이수성 총장은 국무총리 임명으로, 21대 선우중호 총장은 자녀 고액 과외 사건으로, 22대 이기준 총장은 기업 사외이사 겸임 등의 논란으로 임기를 많게는 3년 넘게, 적게는 6개월 남겨 놓고 조기 사퇴했다.
 
이 경우 대부분 임기가 남은 부총장이 총장 직무대행을 맡았지만 이번에는 성낙인 현 총장이 오는 19, 교육부총장은 22, 연구부총장과 기획부총장은 각각 25일 임기가 끝나는 만큼 혼선이 예상된다.
 
새 총장 후보 선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대희 교수가 개교 이후 처음으로 학생들도 참여한 투표를 통해 선정된 후보였던 만큼 직접 투표를 포함한 후보자 선출부터 다시 밟아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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