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있는 지금, 많은 수련병원의 특정 진료과에서는 전공의를 임의로 모집·사전 선발하는 이른바 ‘어레인지(Arrange)’ 관행이 여전한 모습이다.
주요 수련병원 전공의 모집은 공식적으로 오는 12월 진행된다. 하지만 대학병원 일부 진료과의 경우 이미 정원을 채웠거나 사전 선발 절차를 진행 중이며 이는 수십년된 의례적 과정이다.
18일 대한전공의협의회 한 관계자는 “대부분 수련병원 의국에서 어레인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속한 의국의 경우) 전공의 공식 선발 시기 전인 11월에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이력서와 성적표를 받아 자체적으로 사전면접을 보고 의국 내에서 미리 합격 여부를 알려준다. 이후 합격자들이 공식 모집 시기에 지원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W대학병원 인턴 이 모씨도 “(저희 병원은) 정신과와 피부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진료과가 어레인지를 통해 전공의를 뽑고 있다”며 “대부분 원내 인턴들로 정원이 채워진다”고 밝혔다.
어레인지(Arrange)는 합격할 사람은 일찍 붙고 불합격자는 다른 진료과로 돌려 지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수련병원 의국 내에서는 당연한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특히, 전공의 수급난을 우려하는 병원과 업무 과중을 호소하는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어레인지 관행이 나쁠 게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정경쟁 관점 수련 희망 일부 지원자 기회 차단돼"
하지만 ‘공정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수련병원과 구성원이 짜고 맞추는 현행 선발 방식은 수련을 희망하는 일부의 기회를 애초에 박탈·제한하는 등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N병원 소속 전공의 조모씨는 “지방 2차병원의 인턴들이 서울지역 규모가 큰 수련병원 특정 과 지원을 희망할 경우, 기회에 대한 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은 원내 인턴들보다 전공의 선발에 관한 정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면서 “어레인지로 이미 정원이 확보된 병원 의국에 ‘탈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사실상 한번뿐이다. 전공의 선발에서 탈락하게 되면 1년을 재수해야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다른 병원이나 진료과로 돌려 지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몇 년 전 NMC 정형외과 전공의 지원을 희망했던 A씨가 원서접수 과정에서 해당 과 전공의로부터 협박을 당하며 지원을 포기해야만 했던 사례가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12년에는 삼육서울병원 재활의학과·정형외과 전공의 선발 당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병원이 성적이 우수한 일부 지원자들에게 ‘불합격’을 통보했고 병원 내부적으로 "사전 내정자가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불합격자들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률적 측면 저촉성 여부 판별 어렵지만 선발 방식 체계화 모색 필요"
이 같은 관행에 대해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정제혁 사무관은 “전공의 선발에 관한 안내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공식적인 전공의 임용시험 절차를 무시하고 선발해 미리 합격자를 정하는 식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레인지 관행에 대한 법률적 문제는 검토를 해봐야할 것 같다”고 선을 그으면서 “법령 상에서 전공의 임용에 대한 권한은 수련병원장에 있고 임용과 관련한 금품수수 등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공의 선발 방식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공식기관 국립 레지던트 매칭 프로그램(The National Resident Matching Program.NRMP)'이 주관하고 있는 '레지던시 매칭(Residency Matching)'이다.
매년 미국에서는 레지던트 선발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특히, 보스턴이나 뉴욕 등 본인이 원하는 지역의 병원에 근무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춰야만 지원은 물론 합격이 가능하다.
의대생 혹은 졸업생이 원하는 수련병원과 전공 분야를 정해서 온라인으로 지원하면 병원은 지원자 의대 성적, 의사면허시험 성적, 봉사경력, 연구경력, 추천서 등을 감안해 인터뷰를 하고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등 과정이 까다롭다.
지난해 약 1만7374명의 미국 의대 졸업반 학생들이 2만9671개의 레지던트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다. 당시 피부과 레지던트를 선발하는 9개 병원 총 정원은 20명이었는데, 매칭에 168명의 미국 의대 졸업반 학생들과 11명의 해외 의대 졸업생들이 지원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안덕선 원장은 “국내에서는 전공의 선발 체계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며 “외국의 경우 ‘전공의 매칭 시스템’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도 우리와 유사한 문제가 있었다가 최근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아 미국처럼 선발 및 수련방식 등을 체계화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