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경상북도 영주군의 지역 내 유일한 분만 병원이 경영악화로 분만장을 폐쇄했다. 또 지난 10월에는 서울 송파구에서 10여 년째 분만전문병원을 운영해 오던 한 원장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 신고 후 지방병원 봉직의로 취업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됐다. 이런 상황에서 산부인과 분만장 폐쇄가 늘어 원정출산을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도서 산간 및 의료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분만병원이 줄줄이 사라지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다. 특히 서울에서도 분만장 폐쇄가 증가하고 있어 서울과 대도시도 안전지대에 속하지 못한다. 산부인과 분만병원만을 놓고 본다면 한반도 전체가 의료취약지역이다. 왜 이렇게 산부인과, 특히 분만병원이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것일까?
지난해 52곳의 산부인과가 새로 문을 열었지만, 두 배에 가까운 102곳은 폐업을 선택,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는 전국적으로 51곳이나 됐다.(표참조)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심사 청구되는 산부인과는 2007년 1011곳에서 2008년 938곳으로 줄었고 이후 2009년 834곳, 2010년 796곳, 2011년 763곳으로 감소했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병원급의 변동 폭은 거의 없다. 하지만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은 2007년 710곳에서 2011년 484곳으로 4년 새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중 서울 송파구에서 산부인과 진료과목을 내건 곳은 129곳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서울아산병원)을 제외한 분만병원은 단 두 곳뿐이다.
더 심각한 건 앞으로다. 2001년에 배출된 산부인과 전문의가 270명인데, 올해는 3분의 1인 90명으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전국 100여 곳의 산부인과 수련 병원 중에 4분의 1은 레지던트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 산부인과 의사 부족 사태가 현실로 닥쳤다.
병원도 의사도 없어 피해는 고스란히 산모에게
이렇게 병원도 의사도 부족한 산부인과, 이는 고스란히 산모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출산으로 인해 산모가 숨지는 비율이 2008년 신생아 10만 명당 8.4명에서 3년 만에 17.2명으로 2배이상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출생아 10만 명 당 사망한 산모의 숫자(모성사망비)가 17.2명을 기록해 2010년의 15.7명에 비해 1.5명(9.2%) 증가했다.
이때 사망 산모는 임신 중 사망하거나 분만 후 42일 이내에 숨진 여성을 의미한다. 17.2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2010년 평균치 9.3명의 두 배 수준이다.
이렇게 산모 사망이 늘어나는 요인에는 분만 취약지 증가 등 출산 인프라 부실과 산부인과 의사 감소가 꼽힌다.
분만 병원이 적어 긴급한 상황에서 제대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산모가 나오면서 사망률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10년 출생아 10만 명당 사망한 산모의 수가 강원지역은 34.6명으로 서울 지역 10.8명보다 훨씬 많았는데, 병원 접근성이 떨어질수록 산모의 사망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수가·의료사고 무과실 분담금 등 근본부터 해결돼야"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을 꺼리는 가장 큰 원인은 육체적, 정신적 노동의 부담이 큰 만큼 대가를 인정해 줘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상황은 악화돼 적자 운영을 하는 병원이 늘고 여기에 의료사고로 인한 난동이나 폭력적 진료방해, 의료소송 발생 등이 반복되면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의료사고 무과실 분담금에 대한 부담이 부당하다는 피해의식이 강했다. 의료계는 “낮은 수가와 포괄수가제, 의료사고 무과실 분담금 등 산부인과에 타격이 가중돼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의사들이 폐업신고를 잇달아 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이런 상태라면 분만병원이 더 줄어들 것”이라면서 “현재도 분만장은 있지만 실제 분만을 하지 않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 말로만 하던 원정 출산이 실제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박노준 회장은 “포괄수가제, 의료사고 무과실 분담금, 낮은 수가 등 산부인과에 적용되고 있는 불합리한 제도와 수가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년째 전공의 지원 미달… 악순환 반복
저수가, 분만병원 수 감소, 전공의 지원 미달, 대학병원 인력 부족 등이 산모관리에 대한 인프라 약화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러한 악순환은 개선될 기미 없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 최근에는 대학병원에 산부인과 전공의가 없어 분만실을 폐쇄하거나 진료기능이 약화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13년도 산부인과 전공의 모집 역시 미달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2013년도 산부인과 레지던트 총 정원은 151명, 정원 외 정원이 18명으로 모두 169명을 선발한다. 하지만 지원은 95명(정원 외 지원 포함)에 그쳐 지원율이 58.95%에 머물렀다.
산부인과학회 김선행 이사장은 “후학들이 많이 들어와야 하는데 수년째 미달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김선행 이사장은 “전공의는 물론, 서울 경기 지역도 분만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면서 “이제는 젊은 의사들에게 오로지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만으로 의료소송에 대한 정신적 부담과 응급 진료에 대한 육체적 부담을 이겨내라고 강요할 수 없게 된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김 이사장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보전책, 폐업 막는데 도움될지 미지수
이런 상황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월 말 산부인과 병의원의 연쇄 폐업을 막기 위해 연간 분만 건수가 200건 미만인 산부인과에 자연분만 수가를 최대 200%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 보전책을 내놨다.
복지부는 분만병원이 없어 고생하는 산모를 위해 분만병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연간 50건 이하 분만병원은 보험수가의 200%, 51~100건은 100%, 101~200건은 50%를 올려주기로 했다.
자궁수축이 있는 산모와 35세 이상 산모에 대해서는 산전검사를 보험 적용해 안전한 출산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며, 이외에도 신생아 중환자실도 기본입원료를 최대 100% 인상해 병상을 확대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농어촌뿐 아니라 도시 지역에서도 이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2013년부터 응급의료, 분만, 신생아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3040억~334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이번 개선방안을 통해 그동안 취약점으로 지적돼 온 현장 진료 애로사항들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응급, 분만 등 필수 진료영역에서 환자들이 겪었던 불편한 점이 해소되는 한편, 의료기관들은 각자 진료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 개원의사들은 “마땅히 수가는 올라야 한다”면서 “고위험 산모 뿐 아니라 모든 산모의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상남도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한 원장은 “분만 건수가 적은 병원에 보조 지원을 한다는데 찬성한다. 늦었지만 수가를 200% 올린다는데 환영하지만, 수술비 등 전체적인 수가 인상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원장은 “올해 전공의 지원율도 미달”이라면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흉부외과도 한시적으로 지원을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면서 “산부인과 역시 수가 인상은 물론 의료사고 무과실 분담금 같은 말도 안 되는 정책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개선 방안을 환영하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서 “현재 정부와 많은 부분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와 개선안을 도출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