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병원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의약품 결제기일 3개월 의무화법'이 6월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잠정 보류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19일 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발의한 '의약품 결제기일 3개월 의무화법'에 대한 심사를 유보했다. 사적 거래이기 때문에 당사자 간 충분한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법안소위는 보건복지부에 대한병원협회와 한국의약품도매협회의 논의기구를 통해 양 단체가 수용할 수 있는 중재안을 협의해 오라고 주문한 상태다.
이번 심의에서 쟁점이 된 '의약품 결제기일 3개월 의무화법'은 의료기관이 3개월 내 의약품 대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그 초과기간에 대해 40% 이내서 이자를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의료업을 정지 시키거나 개설 허가 취소, 최대 폐쇄까지 가능토록 했다.
단, 의료기관의 매출 규모, 거래 규모와 비중, 의약품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료기관이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우월적 지위 기준 명확하지 않아”
의약품 결제기일 3개월 의무화법을 논의함에 있어 가장 큰 쟁점이 됐던 것은 ‘사적 계약’을 법적으로 통제한다는 부분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금 결제 기한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법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단 3가지뿐이다.
이 법안들 모두 이해관계자 간 명확한 갑을관계가 조성돼 있고, '을'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입법화가 가능했다.
때문에 의약품 결제기일 3개월 의무화법이 입법되기 위해 가장 선명해야 하는 부분은 의료기관의 ‘우월적 지위’다. 법안에서도 ‘우월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법 적용에서 예외로 뒀다.
하지만 법안은 의료기관의 매출 규모, 거래 규모와 비중, 의약품의 특성 등 많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월적 지위를 가리게 해 그 기준을 오히려 애매모호하게 만들었다.
실제 심의에서도 우월적 지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 의료기관과 한국의약품도매협회 간 거래가 ‘사적 계약’이라는 의견과 ‘갑을 간 계약’이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복지부는 이날 의약품 구매량 10억원 이상인 곳을 ‘우월적 지위’를 가진 곳으로 인정하도록 복지부령으로 구체화하겠다는 안을 내놨지만 소위 의원들을 설득시키진 못했다.
이는 ‘을’의 입장인 한국의약품도매협회의 조언을 받아 마련한 것으로, 이 기준을 반영하면 상위 20% 의료기관 만이 법 적용을 받는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결제대금기한을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리는 안을 내놨지만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심의에서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베이트 처벌 강화 논의 못해"
의약품 결제기일 3개월 의무화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해 결국 같은 법에 있는 리베이트 처벌 강화와 관련된 내용은 논의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리베이트 처벌 강화법’은 리베이트 제공자과 수수자의 처벌 범위를 의료인뿐 아니라 개설자와 종사자까지 확대했다.
특히 불법 리베이트 수수를 받은 의료인의 경우, 면허가 취소되는 것은 물론 명단이 공개된다.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업무정지처분에 갈음해 과징금을 부과하면 최대 1억을 낸다.
법안소위 관계자는 이 법의 재논의 시점을 빠르면 11월, 늦으면 1월로 내다봤다. 8월 임시회의 경우 결산을 위한 이른바 ‘원포인트 국회’가 될 가능성이 크고, 10월 국정감사 전까지 소위원회를 열지 않는 관례상 빨라도 11월에나 법안소위가 열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급한 법이라면 8월에 소위를 열려 논의할 수 있겠지만 오제세 의원이 발의한 법의 경우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빠르면 11월, 늦으면 1월에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