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형실거래가제 재시행 여부와 관련해 혹시나 했던 제약계의 마음은 하루 새 ‘분노’로 바뀌었다.
지난 1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제도 시행에 대해 추진 의지를 내보였다.
바로 전 날인 16일만 해도 문형표 장관이 제약협회 이사장단과 간담회를 통해 "원점 재검토" 의사를 밝히며 제도 폐지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17일 문 장관의 이번 발언으로 제약계의 희망은 날아가 버린 셈이다.
결과적으로 문 장관이 말한 ‘원점 재검토’ 이면에는 ‘시행 후 조치’ 의미가 밑바탕에 깔려있었다는 분석이다. 복지부 실무진 역시 문 장관 발언 직후 “시장형실거래가제 시행 후 제도 수정 의사 정도로 해석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제약계는 작년 일괄 약가인하 이후 최대 고비를 맞게 됐다. 지금도 낮은 약가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서 시장형실거래가제가 예정대로 내년 2월 1일 재시행되면 제약계는 앞으로 지속적인 가격 인하 사태를 눈 뜨고 바라봐야 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약협회 측은 그 동안 ‘갑’의 압력으로 1원 낙찰이 계속해서 나올 수 밖에 없다며 관련 제도 폐지 주장을 해왔다.
문형표 장관은 17일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김성주 의원의 시장형실거래가제 시행 여부 방침에 대한 질의와 관련해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시장형실거래가제가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제도 중 약가 자동 조절 기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문 장관은 이어 “이 제도를 통해 약가가 높다면 정상수준으로 조절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내외부적으로 검토한 상태다. 결국 존속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제약계 의견도 인지하고 있었다. 문 장관은 “리베이트 쌍벌제 등을 통해 환경이 어느 정도 달라지지 않았냐 등의 내용은 알고 있다. 16일 제약협회 간담회에서도 제도 시행과 상관없이 협의체를 구성해 종합적으로 재검토 해보고 수정할 필요가 있으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며 제도 시행 후 조치 입장을 강조했다.
또 문 장관은 “제도 폐지를 위해서는 시행령 개정 등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주 의원은 앞서 ‘제도 폐지’가 대안이라고 분석한 학계와 심평원 측 보고서를 들며 “모두 충분한 의견수렴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결국 강행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물었다.
이에 문 장관은 “현 상황에서는 시장형실거래가제가 재시행 될 수 밖에 없다. 제도 수정이 필요하다면, 조속한 시일 내 협의체를 구성해서 조치를 하겠다. 나 역시 심평원과 권순만 교수의 용역 결과를 검토해봤다”고 답변했다.
문형표 장관은 이어 “해당 보고서는 효과 계측이 미흡하다. 예컨대, 시장형실거래가제를 통해 약가를 1~2%씩 조정한다면 향후 누적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인센티브 규모보다 효과가 큰데, 이 부분이 보고서에서는 간과됐다고 판단된다”며 제도 시행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업계 “복지부 정책은 시대 역행”
이에 제약계는 이 같은 복지부 노선에 대해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앞서 제약협회 소속 기업 CEO들은 제도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등 적극 반대 의사를 피력해왔다.
국내 상위 A제약사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모든 기업들의 입장이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R&D에도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 제도가 재시행 되면 제네릭 약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제약회사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현재도 제네릭 가격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형실거래가제를 통한 ‘저가구매 인센티브’로 약값이 더 떨어진다면, 결과적으로 R&D 투자 이익이 나올 수 없다. 제약산업은 우수 인력 확보 및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정책에까지 산업이 휘둘린다면 앞으로 R&D 투자를 줄여야하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고 푸념했다.
다른 제약사 대표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놨다. B제약 대표는 “말도 안 된다. ‘제도의 선(先) 시행, 후(後) 보완’을 하겠다는 얘기인데, 제도의 문제점들은 이미 다 알려졌다. 그럼에도 꼭 시행하고자 한다면 ‘선 보완, 후 시행’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제도라는 것은 형평성이 수반돼야 한다. 현재 병원협회를 제외한 제약협회, 의사협회, 시민단체 모두 반대하고 있는 이 제도를 왜 다시 시행하려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약협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지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한국제약협회 이경호 회장도 전화통화에서 “복지부는 제도 시행령 개정을 하기에 입법예고까지 시간이 부족하다는 등 물리적 이유를 들고 있다. 의지만 있다면 입법예고 기간을 충분히 단축할 수 있다. 일단 시행하고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겠다는 것은 산업과 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경호 회장은 이어 “일단 제도를 유예하고, 충분한 논의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현재 진행되는 것은 정책 수립의 기본에 맞지 않다고 생각된다. 복지부가 조금 더 의지를 갖고 시장형실거래가제에 대해 심층 검토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