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전통적 비인기과인 병리과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과목처럼 인식되면서 레지던트 지원이 감소하고 있다.
올해 레지던트 선발에서도 전체 정원에 절반을 간신히 채운 병리과는 작년에 비해서는 약간 회복 추세이긴 하지만 기피과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연수 대한병리학회이사장(서울성모병원)[사진]의 전망은 조금 달랐다.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난 그는 “AI 기술 발전이 오히려 병리과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Q. 2022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병리과는 여전히 저조한 성적을 보였는데
-전공의 모집에서 병리과가 저조한 지원율을 보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원이 수월하지 않으며 대학병원에서도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병리과는 오랫동안 전공의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병리과의 어두운 미래를 점치는 새로운 요인이 제시되기도 했는데 바로 AI 기술을 이용한 진단시대의 도래다.
Q. ‘AI 의사’가 병리과 침체의 새로운 위험요소?
-AI 기술 발전으로 위협받고 있는 몇 개의 과가 있고 병리과는 그 중 하나다. 영상의학과도 비슷한 위기설이 제시되고 있지만, 영상검사는 수요가 많고 수가도 높기 때문에 병리과와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그럼에도 AI가 병리과를 위협할 거란 전망이 정말로 현실이 될 것인지에 대해선 물음표를 던진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시간’이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AI가 병리영역을 대체할 수 있기 위해선 디지털병리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대형병원들에서도 변화 속도가 결코 빠르지 않다. 얼마 전 국내 최초로 디지털병리를 전면 도입한 서울성모병원도 계속해서 보완개선 작업을 거치고 있다. 디지털병리에는 고가 장비와 저장 서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투자가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병리 진단을 위한 AI 소프트웨어도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Q. AI기술을 활용할 기반이 갖춰진다면 병리과 위기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AI 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 이를 도입한 후 변화된 의료현장에서 병리과 의사들 역할은 오히려 확대될 것이다. AI 기술이 의사를 대체하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데이터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수행하는 것은 병리과 의사들이다. AI 기술과 관련된 병리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다. 기술발전 과정에서 병리 의사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AI 기술이 자리를 잡은 후에도 전문가인 병리의사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환자 목숨과 직결될 수 있는 의료행위 책임소재 또한 어디까지나 사람인 의사 소관이다. 병리학회는 이 같은 병리의사 수요증가에 대비해 최근 관련 교육을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디지털병리와 AI 프로그램 관리 감독 확대 등 병리 전문의 역할 중요"
"AI 등 기술발전 과정서 병리 의사 수요 증대, 학회 차원서도 관련 교육 확대"
"고령시대 진입, 암 질환 증가 속 병리 전문의 필요성 증가는 불가피"
"저평가된 병리검사 수가 정상화와 함께 수가 할인 근절 정부 지원 시급"
"병리는 미래 확장성 있는 분야이고 개원 어렵지만 진로는 다양"
Q. 병리 전문의의 수요 증가를 예견하는 또 다른 사회적 변화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암 환자의 증가다. 최근 의료기관에선 암검진 건수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국가암검진에 포함되어 있는 위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등이 모두 병리과 의사가 하나, 하나 진단하고 있어 병리검사 건수가 증가함에 따라 병리과 의사의 업무가 많아지고 병리과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의료기관이 늘고 있다. 또한 암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병리의사 업무가 확대되고 있다. 고형암(위암, 대장암, 폐암 등)에 대한 표적치료가 대표적인 예다. 표적치료를 위해선 유전자 변이나 단백질 변이 여부를 알아내야 하는데,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바로 병리과 의사다. 일반 의사들 중에서도 병리과 의사가 이러한 업무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은데, 앞으로 표적치료가 더욱 활성화되면 병리과 존재감은 더 부각될 것이다.
Q. 미래 의료에서 병리과 의사 역할이 증대될 거란 전망이다. 양질의 인재 양성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수가 개선이 시급하다. 당장 해외와 비교해도 국내 병리검사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다. 기본적으로 병리과 업무가 저평가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 병리검사에 대한 기본 수가에 대한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
낮은 수가 외에 병리과 의사들을 들끓게 했던 ‘수가 할인’마저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얼마 전 수가 할인을 한 수탁검사기관에 대한 검체검사수탁인증관리위원회가 보건복지부에 신설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하나, 아직도 할인에 대한 정확한 처벌 규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 병리검사는 병리의사가 하나 하나 직접 진단하는 의료행위인데 이에 대한 수가 할인이 이뤄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한 사람의 병리의사가 진단해야 하는 검사의 양이 늘어나고 당연히 진단의 질이 저하되므로 양질의 진단을 하는 전문의 양성이 어렵게 된다. 이에 저평가된 병리검사 수가 정상화와 함께 수가 할인 근절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Q. 끝으로 병리과를 고민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한마디 부탁
-병리는 정체하는 과가 아닌 계속해서 변화하는 전문과목이다. 짧은 인턴 기간 동안 엿본 것보다 훨씬 많은 필드에서 활약할 수 있다. 기초학문과 임상학문을 모두 아우르는 병리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병리적인 연구 방법을 포함해야만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시대다.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한 가능성은 이 길을 고려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낮은 수가 등 힘든 여건은 학회 차원에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 많은 유망한 젊은 인재들이 병리에 대한 관심을 갖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