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필수의료는 어쩌다 ‘회생 불가’ 직면
환자 많이 볼수록 적자 보는 모순된 '수가구조'·소송 등 위험 부담 '급증'
2022.10.25 12:35 댓글쓰기

[기획 3] 국내 최대 규모 병상을 운영하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 필수의료 실태를 두고 다양한 원인과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만성적인 ‘저수가’에 있다는 게 의료계 공통된 의견이다. 의사가 환자를 살릴수록 적자가 초래되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우리나라 필수의료 수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지난 2017년 기준 자연분만수가는 미국의 경우 1만1200달러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1040달러에 그친다.


이번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에게 필요한 뇌(腦) 혈종 제거를 위한 개두술도 약 142만 원에 불과해 일본의 662만 원과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정부 주도 건강보험 제도가 의료체계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수가에서는 훨씬 앞서간다.


우리나라 뇌질환 수술 관련 수가는 일본 20% 수준이다. 두개내 종양적출술과 뇌혈관 내 스탠트 수술 수가가 각각 일본의 15.5%, 17.1%다. 뇌동맥류 경부 클리핑 수술 수가는 21.2%에 그친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에게 필요했던 개두술을 예로 들면, 일본 의사들이 해당 수술을 할 경우 공보험을 통해 100만원을 지원받는다면, 한국은 20만원을 지원받는다는 얘기다.


수가가 비현실적이다 보니 애초에 초대형병원조차 전문의를 고용하고 유지하는 게 힘들다는 지적이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 김용배 상임이사(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는 “현재 4명으로 구성된 뇌혈관팀을 이끌며 개두술만 하고 있지만 인건비와 재료비를 포함해 원가를 계산하면 104%를 소진하고 있다”고 말했다.낮은 수가는 수술 핵심 장비를 구매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클리핑 수술을 하려면 클립이 필요한데 국내의 경우 단가가 태국과 대만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공급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마진이 남지 않는 구조라 일찍이 시장에서 탈출하고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다양한 클립을 선택할 여지도 없는 상황이다.


김 이사는 “합리적인 수가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누구의 배를 불리겠다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발생시 ‘의사 면책 보장’ 미흡


필수의료 붕괴를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부실한 면책 보장에 있다.


일례로 산부인과에는 과실이 없는 분만사고에 의사가 피해 보상액 일부를 부담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가 있다. 


산모나 신생아가 분만 과정에서 사망하면 환자는 최대 3000만원을 보상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의사 입장에서는 잘못이 없어도 피해 보상 재정 30%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의사가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에 나서게 할 간접적 금전 유인책이 확실하다. 


일본에서 의료소송과 분만 기피 등으로 산부인과 지원자가 대폭 줄자 정부는 인과 관계와 상관없이 뇌성마비 환아 산모에 정부가 3000만엔(2억9000만원)을 보상하는 ‘산과무과실보상제도’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이처럼 무과실 사고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해마다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2010년 580곳이던 분만병원이 2020년 230곳만 남았다. 학회는 해마다 15~20곳씩 줄어들고 있어 5~10년 후에는 분만 인프라가 붕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산모 사망과 관련해 현실적인 보상금액이 적다 보니 환자나 보호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다반사인 상황이다.




"필수의료 진료과 의사 수 부족, 의료진 과로 누적 등 전공의 지원율 하락 초래" 


이러한 상황에서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필수의료 영역 의사 수 부족은 결국 의료진 과로로 이어진다. 


실제 2019년 신형록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당직실에서 근무 중 과로로 숨졌다. 그가 사망하기 전 1주 근무시간은 113시간이었다.


이보다 앞선 2018년에는 송주한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과로에 따른 뇌출혈로 연구실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죽음과 의사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러한 문제가 계속되는 진료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입장이다. 


기피과 유인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위험부담을 고려한 지원책은 미비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이지만 환자들의 고소·고발 부담을 항상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전공의들이 대다수 기피과로 불리는 과목을 선택한 이유는 밝은 전망이 아닌 사명감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최근 세대가 교체되면서 묵묵히 희생을 감수하던 과거와 달리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전공의들을 위한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병원 전공의는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의료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는 점을 보면 의사로서 회의감이 든다”면서 “의사 희생으로만 이어온 필수의료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필수의료 붕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각종 원인에 대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 장(場)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저수가는 물론 의료분쟁, 인구역학 변화와 같은 문제를 정부와 의료계, 국민 등 이해관계자가 모여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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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 10.29 13:53
    이미 늦었어요. 인프라 붕괴전에 의료서비스 많이 받아두시고 자녀 세대부터는 한국 탈출이 답입니다 ^^
  • 정원상 10.25 14:56
    정말 훌륭한 기사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저수가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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