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콜드체인' 의무화 그늘
이슬비 기자
2022.07.27 13:46 댓글쓰기

[수첩] 물품 생산부터 배송까지 일정한 저온 상태를 유지하는 이른바 ‘콜드체인’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지난 2020년 독감백신 상온 노출 사고로 홍역을 치른 의약품 유통업계에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콜드체인 바람이 불어 닥쳤다.


백신·인슐린 등 생물학적 제제 배송 규정을 강화하는 개정령 계도기간이 7월 17일자로 끝나고 전면 시행되기 때문이다. 


규정 준수를 위해 막대한 초기비용을 들여 냉장차량·보냉박스·수송용기·자동온도기록장치 등 장비 업그레이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냉박스 교체 연한 준수, 온도기록장치 검교정 등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해 꾸준한 고정비용이 든다. 


이 가운데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 개정령 공포 후 현재까지 의약품 유통업계에서는 기업 규모별로 다른 양상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기존 대형 업체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만반의 준비 중이다. 업계 1위 지오영은 최근 물류시설 투자를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자동 온도 모니터링 시스템과 자체 개발한 사물인터넷(IoT) 온습도 센서를 활용한 동물용 의약품 콜드체인 모니터링 서비스를 확대했다.  


국내 의약품 운송시장 70%를 점유 중인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사 용마로지스는 바이오 특송 전담 배송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콜드체인 데이터관리기업 윌로그와 손잡았다.


윌로그의 데이터 관리 솔루션으로 물품 출고시점부터 반품까지 전 과정에서 온도·습도·충격 등 다양한 데이터를 스마트폰 QR코드로 수집하고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쥴릭파마코리아는 개정령 공포 시점부터 전담팀을 꾸리고 운영 절차 개선 및 직원 훈련까지 일찌감치 마쳤다. 


또 적극적으로 장비를 마련하고 데이터·디지털 솔루션을 위한 연구·투자를 단행, 블록체인 기반 온도추적 솔루션 및 냉장수송 전용기를 개발했다. 


이 처럼 콜드체인이 의약품 유통업계의 신사업이자 활로(活路)라면 이 길에 들어서는 출발선에 나란히 서지도 못한 업체들도 있다. 


상위 기업들이 ‘미래’를 그리는 동안 대다수 중소업체들은 개정령 공포 시점부터 1년 째 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중소업체들은 규정 미준수로 형사처벌 받지 않기 위해 투자를 단행하면서도 검교정 비용·보냉박스 비용 등 주로 비용 감당과 관련해 호소해왔다. 


새로운 장비를 갖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업계 내 고질적인 문제였던 낮은 유통마진에 더해 최근 유류비 및 인건비 인상 등의 이슈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특히 유통마진의 경우 제약사 유통비용이 실제 제품 배송 비용에 미치지 못한다면 배송 물량이 늘수록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업계는 지속적으로 정부에 조율자 역할을 요구하고, 의약품을 공급하는 당사자인 제약사들에게는 유통비용을 더 부담해 달라며 손을 뻗었다.  


최근에도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국내에 인슐린을 공급하는 다국적제약사 3곳에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협의는 요원한 상황이다. 


상황이 나아지질 않자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더 이상 인슐린을 취급할 수는 없겠다”며 배송 포기의사를 밝힌 업체도 여럿이다. 


대대적 변화를 앞두고 같은 업계 내에서 누군가는 선도를 외칠 때 누군가는 기본도 지키지 못해 범죄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업체들의 준비 기회이면서도 사실상 유통업체·제약사·정부 등 3자 간 합의 기회였던 6개월 동안 이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업계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됐다. 


알아서 살아남게 하고 일부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누군가는 나서겠지’라는 생각으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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