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기에도 불구하고 대형병원 건립 열기가 가시지 않고 있다. 새로운 도시가 조성되는 지역은 ‘의료 사각지대’ 해소나 의료 질 향상을 명분으로 너도나도 종합병원 유치에 나선다. 선거 때마다 대형병원 건립 공약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지자체가 호기롭게 팔을 걷어부친 병원 건립사업이 순항하고 있는 지 진단해 봤다.[편집자주]
‘빅4’ 명의 참여설 광명의료복합타운 첫 삽도 못 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빅4’병원 암 치료 ‘명의’ 8명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경기도 광명시 1400병상 복합의료클러스터 조성과 관련해 사업 참여자 측에서 나왔던 말이다.
빅4 병원 명의 참여설로 관심이 높아졌던 광명시 대형병원 건립 사업은 1년 6개월여 가까이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앞서 광명시는 2015년 4월 말 소하1동 SK테크노파크 옆 의료시설 부지와 KTX 광명역세권 인근 도시지원시설 부지에 각각 대형종합병원과 의료복합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업 규모만 5000억원에 달하고, 미래에셋, MBC플러스, 메디애드 병원컨소시엄 등이 참여했다.
소하 1동 의료시설부지 1만9114㎡에는 2018년까지 900병상 규모 종합병원을 건립하고, KTX 광명역 롯데프리미엄아울렛 부근 도시지원시설부지 1만9835㎡에는 2021년까지 암전문요양병원, 암케어센터, 항노화센터 등 500병상 규모의 의료복합시설을 개원한다는 게 골자였다.
병원 구축 및 운영을 담당했던 메디애드 병원컨소시엄 측은 900병상 규모 종합병원은 총 20개 진료과로 구성되며, 2016년 상반기 착공해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병원을 개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에서 핵심 인물로 인정받고 있는 현직 교수 8명이 주축이 된다’고 알려져 당시 이목이 집중됐다.
메디애드 측 관계자는 “빅4 현직 교수 8명이 의기투합해 새롭게 병원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는 사업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명의 마케팅’ 효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빅4 유명 의사 8명이 뭉쳤다고 하지만 대형병원 운영이 쉬운 것이 아니”라며 “의사들은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당장 의료진 영입부터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종합병원 고위 관계자는 “우리 병원에도 참여 제의가 들어왔지만 사업성이 적고, LH부지를 고가에 매매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내부 판단이 작용해 사업을 접었다”고 말했다.
기대를 모았던 종합병원 건립 사업은 삐걱대는 모습이다. 사업 참여자 간 자금 조달에 관한 이견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광명시는 지난해 12월 말까지 종합병원 부지 계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지엠씨티글로벌(병원 조성 페이퍼 컴퍼니)측은 은행과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세부 사업계획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결국 토지 계약은 불발됐고 2018년 개원은 불투명하게 됐다. 이후 서울 H병원이 수도권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광명시 측에 사업 의사를 타진하고 실무자 간 논의까지 이어졌으나 성과는 없었다.
광명시 관계자는 “병원은 비영리사업이다 보니 이윤을 남겨야 하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며 “지역민이 의료 질 향상 목소리가 높은 만큼 대형병원 유치에 계속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천 송도·청라 국제도시도 대형병원 유치 ‘빨간불’
인천 송도 국제도시 내 투자개방형 병원 건립 사업도 십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지난 2005년부터 병원 건립을 위해 해외 의료기관 사업자 유치에 나섰다. 2006년 미국 뉴욕프레스비테리안병원과 2009년 존스홉킨스병원, 2011년 일본 다이와증권캐피털마켓 등과 병원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구체적인 개설 요건과 절차에 대한 시행령 미비로 투자 확신을 제공하지 못한 탓이었다.
2012년 외국인 의사를 일정 비율 확보하는 등 요건을 강화한 시행 규칙이 마련됐지만 시민단체의 ‘의료영리화’ 반발은 거셌다.
또한 국제병원을 함께 건립할 국내 병원 유치도 실패했다.
지난 2009년 서울대병원에 이어 2010년 연세의료원이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유야무야됐다. 한진그룹도 2013년 의료복합단지 설립 계획을 추진했다가 2년 만에 철회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종합병원 건립에 최소 2000억~3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주변 국내 외국인 거주자나 의료관광객만을 진료해서는 수익성을 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투자 걸림돌 해소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월31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7차 규제개혁현장점검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산업부는 외국계 의료기관의 지분투자 의무 비율을 규제 개선 과제로 꼽고, 현행법상 50% 이상으로 묶여 있는 외국계 의료기관 지분투자 의무 비율을 49%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법이 개정될 경우 51% 지분을 투자한 국내 의료기관이 경영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정부가 허용한 투자 개방형 병원 부지가 있는 경자구역은 송도국제도시가 유일해 송도 국제병원 착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법 개정이 이뤄져야 외국인 지분 투자 비율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규제 완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사업성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해 나서는 사업자가 없는 것 같다”며 “지금으로서는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투자 유치를 하고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전했다.
투자개방형병원과 별개로 인천경제청이 연세대학교와 추진하고 있는 병원 유치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경제청과 연세대, 연세의료원은 3자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송도국제도시 7공구 내 국제화복합단지에 1000병상 병원을 건립하기로 했다.
3900억원을 투자해 내외국인 환자 유치를 한다는 계획이다. 연세의료원이 타임 테이블과 로드맵 마련에 착수한 상황이지만 속도가 나아가질 않고 있다.
연세의료원 내부에서는 신중론도 감지된다. “국제병원 건립이 어떤 측면에서 의료원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다.
또한 의료원 측이 추진하는 동백세브란스병원 건립 사업에 우선순위가 밀려 나 있어 참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연세대 측에 업무협약 이행을 계속해서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투명한 사업성 불구 문 두드리는 병원들
야심차게 추진됐던 병원 건립 계획이 좌초 위기에 놓여있지만 병원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인천 송도에 국내 최초로 조성되는 총 440병상 규모의 ‘전문병원 복합단지’가 대표적이다.
세종병원(심장), 예손병원(관절?수지접합), 한길안과병원(안과), 다인이비인후과(이비인후과) 등 보건복지부 지정 전문병원 4곳과 종합병원인 뉴고려병원이 참여하며 총 2500억원이 투자될 예정이다. 대학병원이 아닌 전문병원들이 ‘따로 또 같이’ 방식으로 추진하는 사업 모델이라 관심을 모았다.
이들 병원과 말레이시아 의료관련 투자사 GPSB와 함께 구성한 컨소시엄인 송도 SHC㈜는 지난 9월 경제청과 ‘송도전문병원복합단지’ 건립 투자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2019년 준공을 목표로 송도 국제도시 내 1만5236m²의 부지에 총 사업비 2500억 원을 투입, 전문병원 복합단지(건축면적 7만6145m²)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에 버금가는 고난이도 의료 행위를 주로 하는 전문병원 복합단지는 국내서는 처음이다.
복합단지에는 국내 유일의 심장 전문병원인 세종병원(100병상)과 국내 최초 수지접합·관절 2과목 전문병원인 예손병원(150병상), 국내 2위 한길안과(50병상), 수도권 최대 규모인 다인이비인후과(80병상) 등 4개 전문병원이 입주할 예정이다.
내과, 검진센터, 응급센터를 운영하는 뉴고려병원은 60병상 규모로 병원을 설립한다.
송도 SHC는 향후 산부인과, 대장항문외과도 추가해 500병상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문병원 복합단지 외에도 외국인 전용 진료센터, 종합검진센터, 산후조리원 등도 들어설 예정이다.
각 병원은 개별적으로 개설, 운영되지만 진료에 관해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긴밀히 협력한다. 1층 로비를 무빙워크로 연결하고 시설 확충을 통해 환자가 단지 내에서 모든 의료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입구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상급종합병원’이 등장하는 셈이다.
경제청은 단지내 근린생활시설 건물에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 신경과, 정신과, 비뇨기과, 가정의학과 등 전문클리닉을 유치해 지역 주민들이 의료타운 내에서 모든 진료를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예손병원 김진호 원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단지에 예손병원이 참여해 기쁘게 생각한다”며 “소통과 협업을 통해 최적의 진료시스템을 갖춰, 전문병원 복합단지가 국내외 최고 의료단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인천국제공항과 가까워 외국인 환자에게도 질 높은 국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규형 한길안과병원 이사장은 “환자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외국 의료관광객 유치에도 주력해 의료한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청라 국제도시 내 의료복합타운 건설도 추진되고 있다. 차병원그룹은 달튼외국인학교와 신세계 교외형쇼핑몰 인근에 ‘청라의료복합타운’ 조성을 수년 전부터 계획해 왔다. 복합타운 내에는 병원, 의과대학, 메디텔, 노인복지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를 위해 차병원그룹은 지난 11월 3일 청라헬스케어(주)를 설립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등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차바이오텍이 최대 주주로 있는 차헬스케어가 8억원을, 홍콩의 재무적 투자 법인이 1억원을 각각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년 말 경제청과 청라헬스케어는 복합타운 조성을 위한 기본협약(MOA)를 맺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차병원그룹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속도를 낼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경제청 관계자는 “청라헬스케어가 외투법인으로 등록한 것은 맞다”며 “후속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