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上] 베트남 의약품 시장에 지각변동이 감지된다. 올해 1월 베트남 정부는 2030년까지 제약부문 개발 국가 전략 및 2045년까지 비전을 확정했다. 베트남 제약산업을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연구 역량 제고, 고부가가치 완제·원료의약품 개발 및 생산, 의약품 규제 국제조화 등을 추진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 전략적 파트너로 대한민국을 염두에 뒀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 시 체결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이행을 위한 행동 계획'에 의약품이 포함되면서 양국 정부와 기업 간 다각적 협력이 가능해졌다. 실제 베트남 보건부 차관을 역임한 Le van Truyen 박사는 "지난 30년 사이 한국 제약산업의 R&D 역량, 규제 수준 등이 빠르게 발전했다. 그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 달라"고 제안했다. 데일리메디는 베트남 제약산업에 부는 변화와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 등을 확인하기 위해 민관의약품진출단에 참여해 취재를 진행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파머징 부상 베트남, 제약산업 비전 2045 제시 ②삼일제약 베트남 호치민 공장 ③베트남 법인장 6人을 만나다 |
베트남 의약품 시장은 지속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베트남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10조6600억원으로 추정되며, 연간 10~11%씩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의 의약품 수출국 중 상위 10개국에 포함된다. 8위를 차지하는 베트남의 지난해 의약품 수출 규모는 2840억원이었다. 현지 생산보다 수입 비중이 2배 가량 높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베트남 국민들 의약품 수요가 늘고 있다. 전문의약품은 물론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 소비도 증가세가 확연하다.
이에 국내 제약사들이 '파머징(신흥 제약시장)'으로 부상 중인 베트남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내수가 포화상태인 국내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특히 베트남은 노동력과 자원이 풍부하며 성장 잠재력도 높아 아세안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주목받고 있다.
장병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제약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는 제약사들이 많다"며 "베트남 시장은 높은 성장 잠재력으로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말했다.
실제 대웅제약, 대원제약, 메디카코리아, 삼일제약, 신풍제약, 유한양행, 조아제약, 종근당, JW중외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HK이노엔, 한림제약, 휴온스 등 30개가 넘는 제약사들이 베트남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현지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거나 직접 설비투자 및 합작회사나 지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진입 방식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제약시장 진입장벽…"의약품 제도·약가 극복해야"
베트남 의약품 시장은 '기회의 땅'처럼 보이지만, 외국기업들에게는 시장 진입이 매우 까다롭다. 의약품 규제와 약가가 대표적인 허들로 작동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2018년 한 차례 베트남 규제 탓에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베트남 정부가 유럽 GMP 인증 기준을 근거로 현지 규제를 강화하면서 2등급이던 한국이 6등급으로 추락했다.
6등급은 의약품 공공입찰 자격이 없다. 식약처는 부리나케 현지를 방문해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 및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모두 가입한 점을 제시, 등급 유지 협상에 성공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우수규제기관국(SRA) 국가 목록에 미포함된 점도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네릭과 달리 개량신약과 신약의 경우 SRA 목록 포함 국가에게만 허가 기회가 주어진다.
실제 국산 신약 30호 '케이캡'이 베트남에서 품목허가를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케이캡은 지난해 원외처방액 1200억원을 돌파한 블록버스터 신약이지만 베트남에서 발이 묶였다.
HK이노엔 관계자는 "베트남 시장 진출에 가장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신약과 복합제 허가"라며 "한국은 SRA 목록에 포함되지 않아 신약이나 개량신약 인허가 신청 자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항암제 허가를 진행 중이다. 베트남 정부가 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해 보완을 3회로 제한키로 했다는데 횟수를 초과할 경우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격 정책도 골칫거리다. 베트남 의약품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공공의료시설은 모두 입찰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제네릭 제품 낙찰 기준은 '최저 가격'이다.
인도와 중국의 값싼 제네릭과 국내 제네릭은 경쟁 자체가 안된다. 이에 개량신약이나 신약으로 수출 품목을 변경해보려고 하지만, 이 경우 SRA 미가입국이 발목을 잡는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베트남을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영업을 전개 중이다. 실제 4개 품목으로 150억원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데 새 품목 런칭에 애로사항이 있다"며 "제네릭은 가격 경쟁력이 없어서 개량신약 중심으로 접근을 하고자 하는데 SRA 탓에 어려움이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별 각개전투 아닌 대화 창구 일원화"
문제는 의약품 인허가 규제와 관련해선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이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식약처, 제약바이오협회, 학계, 15개 기업 등으로 구성된 민관의약품진출단이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 파견된 이유다. 이번 방문은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식약처 대표단은 베트남 보건부 Do Xuan Tuyen 차관과 면담을 갖고, 의약품 교역을 확대하고 양국 간 소통 강화를 위한 '의약품 분야 국장급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키로 합의했다.
베트남 의약품국(DAV) 의약품 허가 업무를 총괄하는 Nguyễn Thánh Lam 부국장과 양자회의에서 우수한 K-의약품이 신속히 허가될 수 있도록 베트남의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두 규제기관은 국내 기업들이 베트남 의약품 시장 진출 시 겪는 애로사항과 의약품 허가 및 관리체계 개선, 규제 조화와 교류 강화 방안 등도 논의했다.
Nguyễn Thánh Lam 부국장은 "앞으로 베트남 의약품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유럽과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약품 인허가 시 보완 요청을 3회로 제한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으며, 불확실한 제도 운영에 대해 점차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석연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은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양국 국장급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기업들이 느끼는 애로사항을 개선하고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베트남이 정서적 간극이 큰 미국과 유럽 제도보다 한국 사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베트남이 한국식 제도를 수용할 경우 국내 기업들 진출이 더 용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베트남 진출 국내 기업들 간에 네트워킹 강화 필요성도 제안됐다. 베트남에서 한국 제약사들이 공식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석연 국장은 "회사가 각개전투로 베트남 정부를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진출한 기업이나 진출 예정인 기업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통로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이번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규제당국 간 소통이 지속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앞으로도 업계에서 풀기 어려운 숙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했다.
오영진 식약처 글로벌식의약정책전략추진단 과장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규제기관과 협력을 공고히 해 한국 의약품 수출이 확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