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강력 반발한 FDS(Fraud Detection System) 도입 여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파워게임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FDS는 공공기관 등 모든 사업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인자를 연관관계 분석이나 통계분석을 통해 사전 사후에 적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FDS 도입에 앞서 자료 요청 건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의협은 "복지부 산하 기관의 다툼이 의료기관의 이중심사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손숙미 의원(한나라당)에 따르면 정형근 건보공단 이사장이 최근 FDS 도입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심평원이 반박자료를 준비하는 등 양 기관이 갈등을 겪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건보공단이다. 정형근 건보공단 이사장은 이달 초 한 포럼에서 FDS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공단은 '보험급여 사후관리업무 추진을 위해 FDS 구축이 필요한 이유'라는 문건에서 "보험재정이 적자로 돌아설 때마다, 보험료를 인상해 국민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는 등 보험재정 관리자로서 역할이 부족했다"며 "심평원은 그동안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심사하고 있다고 하지만, 심사 적정성에 대한 공인된 평가시스템이 없다"며 심평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또 공단이 진료비 심사 메커니즘과 문제점을 알지 못하는 등 보험자 역할인 '컨트롤 타워' 기능이 상실돼 진료비 지출이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고 이유를 들었다.
공단은 FDS 세부 추진 일정으로 이달까지 허위·부정 청구 유형을 분석하고, 오는 7~8월 규칙 기반 및 예측 모형 설계·개발(FDS 데이터 마트 구축)을 추진한다.
9월과 10월에는 모형 시범 운영 및 시스템을 개발하며, 12월까지 모형 안정화와 고도화(정보 분석 인프라 구축)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FDS 구축이 필요한 이유로는 "일부 요양기관 불법 청구수법이 다양화, 지능화됨에 따라 과학적 통계기법을 활용한 허위·부당청구 적발이 필수적"이라며 "이러한 행위를 예방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단은 그러면서 "FDS가 구축되면 불필요한 진료비 지출이 억제되고 과학적인 요양기관 조사기법이 확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보험급여 사후관리 실적에서도 지난해 104.3% 급증한 반면, 심평원은 10.7% 감소하는 등 심사 기능을 문제 삼았다.
반면 심평원은 '건보공단과의 자료공유 관련 사항'이라는 문건에서 "지난해 공단 이의신청 4만4000여 건은 전체 13억 건 중 0.003%에 불과하며, 그 유형이 야간가산 착오 등 3항목이 96%로 대부분"이라며 공단의 심사기능을 평가 절하했다.
심평원은 "건강보험법상 정부와 보험자, 의약계로부터 독립해 별도 설립된 입법 취지를 부합해야 하며, 양 기관 고유 권한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러한 범위에서 공단이 특정 요양기관별 추가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 한정해 자료를 요구·제공함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공단 요청 자료를 모두 제공할 경우 국가적 행정낭비와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는 것이 심평원의 주장이다. 또 연간 13억 건에 달하는 심사누락 확인을 위해 공단은 별도 심사인력 운영으로 건강보험사업의 효율성 문제가 대두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공단에 사업장명칭과 표준보수월액, 정규직 여부 등의 자료를 2차례 요청했지만, 거부당하는 등 업무협조가 어렵다고도 했다.
공단-심평원 갈등 왜?공단과 심평원의 불협화음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였다는 게 의료계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실제로 양 기관은 지난해 한 차례 충돌했었다. 공단 노원지사가 송 심평원장 관련 스톡옵션 기사를 복지위 위원실에 팩스로 전달한 것을 놓고 잡음이 발행하기도 했다.
정형근 이사장은 지난해 국감에서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의 질의에 "심평원이 공단 업무를 위한 부속기관"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홍역을 겪었다. 논란이 벌어지자 정 이사장은 "심평원 발언의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송재성 심평원장은 "공단과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며 갈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미 잘 알려진 공단과 심평원의 갈등이 FDS로 최고조로 달아오른 것은 기관의 생존과 관련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방만한 운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공단과 정체성과 기능 논란이 잦은 심평원 입장에서 FDS는 조직의 안정을 결정짓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공단은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10% 인력감축을 요구받고 있다. 심평원 역시 신의료기술평가 관련 업무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으로 옮겨갔고, IPTV를 이용한 건강지원시스템 도입 정책이 복지위 내부적으로 평가가 좋지 못하다.
복지위 한 관계자는 "공단이나 심평원이나 현재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하다. 최근 모습은 조직생존을 위한 갈등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말했다.
복지부 중재…손숙미 의원 "건보 안정화가 핵심"공단과 심평원의 갈등이 깊어지자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복지부는 심평원이 공단에 1년치 자료를 넘겨주는 선에서 갈등을 봉합하려고 한다. 앞서 공단이 심평원에 3년치 자료를 요구했다 거절당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심사기능이 공단으로 확대될 경우 심평원의 반발이 거셀 수 있어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다.
양 기관의 갈등에 대해 현재까지 분위기로는 공단이 다소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공단은 심평원이 자료요청이 불성실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앞으로 모든 자료를 제공하겠다"라는 입장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위 내부적으로도 양 기관의 갈등이 모양새는 좋지 않지만, 큰 틀에서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손숙미 의원은 "FDS에 대한 양 기관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는 공기관 역할에 벗어나는 것“이라며 "서로 합의점을 찾아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통해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양 기관은 이러한 기준으로 협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FDS 논란과 관련해 의료계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양 기관의 갈등과 무관하게 의료계는 FDS를 언급한 정형근 이사장의 발언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