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횡령, 배임 의혹으로 주식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 신라젠이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에서 고배를 마시자, 심사 대기 기업들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초 기준 한국거래소가 국내 상장기업 중 상장폐지 심사 대상으로 선정한 바이오헬스기업은 신라젠과 코오롱티슈진, 경남제약헬스케어, 캔서롭 등 4곳이다.
신라젠은 지난 18일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로부터 상장 폐지 통보를 받았다. 기심위는 개선기간에 마련한 자금이 충분하지 못하고, 신약 연구개발 사업의 지속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상장폐지 사유로 전했다.
신라젠은 문은상 전(前) 대표 등 전·현직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각돼, 2020년 5월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사유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이후 문 전 대표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사퇴하고, 최대주주 변경을 통해 경영 투명성 확보에 노력했다.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상용화를 위한 후속 임상과 함께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추가하며 경쟁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기심위는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신라젠의 최종 상장 폐지 여부는 앞으로 20일(영업일 기준) 이내 열릴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확정된다.
이번 기심위의 결정으로, 심사 대상에 오른 바이오기업들은 전전긍긍이다. 특히 연초에 대형 횡령 사건이 터진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우 오는 24일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 여부를 가리는 심의를 앞두고 있다.
오스템인플란트는 지난 2014년 대표이사가 횡령 혐의를 받아 주식 거래가 중지됐던 과거 경력도 있어 상장 폐지 심사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코오롱티슈진은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주요 성분 허위기재 및 임원 배임 등의 혐의로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 2020년 4월 미국식품의약국(FDA)로부터 3상 재개 허가를 받아 임상시험 관련 문제는 해소했으나, 심사 결과에 미지수다.
오는 2월 중에 기심위의 심의가 예정돼 있는 코오롱티슈진은 신라젠의 상장 폐지 결정으로 낙관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남제약의 계열사인 경남제약헬스케어 역시 지난해 4월 경영진의 횡령 및 배임 혐의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중지됐다. 당시 경영진 외 포함 3인은 13억6000만원 규모의 횡령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한국거래소는 개선 기간을 부여한 후 기심위가 경남제약헬스케어를 심의했으나 '상장 폐지'를 통보했다. 이 같은 결정에 경남제약헬스케어가 이의신청을 하면서 재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한편, 지난해 회계처리 문제로 상장저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올랐던 캔서롭은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대표를 최대주주로 변경하는 등의 개선 의지를 보였지만, 기심위에서 상장 폐지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1년간의 개선기간을 다시 부여 받아 상장폐지는 면했다. 현재는 '디엑스앤브이엑스'로 사명을 바꾸고, 경영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를 올해 11월 제출한 뒤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상장 폐지되거나 퇴출 위기에 놓이면서 'K-바이오' 신뢰도 추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투자자들 역시 외면하고 있다.
바이오벤처 관계자는 "신라젠 사태를 보면 비판할 점이 많지만, 동시에 안타까운 점도 있다"며 "연구과정에서의 문제점이나 임원들 횡령 및 배임은 문제다. 하지만 거래소가 요구하는 경영 개선 노력은 바이오벤처에 너무 높은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바이오벤처의 특성상 매출 실적을 내기 어렵고, 시장에서 평가가 악화될수록 자본 수혈도 어려워져 결국 버티지 못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며 "제대로 기업을 운영하고 연구를 하는 게 맞지만, 거래소의 평가가 바이오 업계의 특성을 조금 고려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