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현행 의과대학 교육 과정이 지역 일차의료를 외면하는 구조로 짜여 있어 의대생들이 졸업 후 지방에 몸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문제의식이 의대 교수들 사이에 형성됐다.
강제적 장치로 의대생의 지방 정착을 유도해도 중증·희귀질환자가 몰리는 대학병원에서만 수련하고 농어촌 만성질환자는 보지 않으니, 일차의료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2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 신찬수)가 주최한 ‘지역 필수의료와 의학교육 기관의 사회적 책무성’ 포럼이 열렸다.
이는 최근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공공의대 신설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의대 차원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종태 KAMC 정책연구소 소장은 “의대 입학, 의대생, 전공의, 전문의로서의 정착 단계까지 파이프라인을 구축하지 않으면 지역의료는 언제든지 붕괴된다”며 “포괄적으로 연속적인 대안을 고민해보자”고 말했다.
이날 의대 교수들은 현재 필수의료 개념이 모호하지만, 의료취약지에 있어서 만큼은 중증·외상 보다는 일차의료를 시작으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의대생들 경험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강석훈 강원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의대 교육 목표에서 일차의료라는 단어가 실종되고 있다”며 “실제 교육 목표로 이를 언급하는 학교는 2006년 28개, 2017년 16개, 2023년 6개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련병원 중심으로 임상실습이 이뤄지고 있으며 교육 가능한 일차의료기관도 이제는 부족하다”며 “미용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많고 특별한 질환에 대한 전문화된 의원이 많아 일차의료를 배울만한 곳 자체가 없다”고 진단했다.
“공공병원·동네의원서 환자 만나는 과정 보며 스스로 고민하는 경험 제공해야”
의학계에 따르면 요즘의 의대생들은 농어촌 경험이 어렵다. 인구 감소로 농어촌 보건지소는 이용률이 줄고, 농민학생연대활동(농활) 기회도 줄었는데 최근 코로나19 유행이 더해져 대학병원에서만 실습하고 있다.
한희철 고려의대 생리학교실 교수(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은 “의대 교육이 모두 대학병원에서 이뤄지지만 일차의료 교육 기회는 농어촌을 직접 체험하는 데서 나온다”며 “이 과정이 학생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진주에서 나고 자라 의대·의사 생활 모두 경상의대에서 해온 서지현 경상의대 소아청소년과학교실 교수도 “의대생들이 농어촌에서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의대 임상실습 기간 중 농어촌을 겪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지현 교수가 꼽는 가장 큰 문제는 의대생이 대학병원에서만 실습하다 보니 당뇨병 등 의료취약지 고령환자들이 다수 앓는 만성질환을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는 “대학병원은 이미 진단받고 의뢰된 환자, 복잡한 케이스, 교과서에도 흔치 않은 질병만 보게 된다”며 “공공병원이나 일반의원 내과 의사 옆에서 ‘나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하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것들을 제쳐두고 우리 교수들이 현재 의대 교육 목표를 지나치게 ‘전문의’ 수준으로 맞춰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자성을 촉구했다.
비단 환자 케이스 뿐 아니라 의대생이 선배 의사들 마음도 어깨너머로 배우게 해야 한다는 게 서 교수 생각이다.
그는 “취약지 동네의원 의사들이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만나는지 봐야 한다. 의료취약지에도 한 병원에 오래 근무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이점이 있으니 그럴 것이다. 학생들이 그분들을 만나면 지역 의사 진로에 대한 희망을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슬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