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일지라도 열정페이 받는 인력을 유지하게만 해달라.”
인슐린 펌프 ‘렌탈’ 제도와 당뇨병 치료기기 관리·교육 수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당뇨병 치료현장 의료진의 절박한 목소리가 제기됐다.
지난해 연속혈당측정기(CGM) 교육수가가 도입됐지만 중증 당뇨병 환자가 매일 사용해야 하는 인슐린 펌프 등 주입기기는 의료기관도 환자도 처방·사용을 꺼려 “있는 기기도 제대로 못 쓰고 치료인력은 고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소아당뇨를 앓던 아동의 일가족이 사망한 안타까움 속에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이 주최하고 대한당뇨병학회가 주관한 ‘인슐린이 필요한 중증 당뇨병 관리체계 선진화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장 방청석, 복도, 입구를 ‘1형 당뇨병 치료를 개인에게만 맡기지 말라’는 피켓을 든 환자와 가족들이 가득 메우며 뜨거운 염원을 호소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재현 대한당뇨병학회 췌도부전당뇨병TFT 팀장(삼성서울병원 당뇨병센터장)은 당뇨병 치료기기 사용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내놨다. 그 역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환자를 만나온 당사자로서 북받치는 감정을 피력했다.
김재현 교수에 따르면 몸에서 인슐린이 나오지 않는 질병을 ‘췌도부전당뇨병’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1형 당뇨병과 진행된 당뇨병, 췌장 절제 후 당뇨병이 이에 속한다.
김 교수는 “혈당 조절에 도움을 주는 기기는 CGM, 이와 연동되는 디지털 펜 및 인슐린 펌프”라며 “이들을 활용해 치료하는 이론은 환상적이지만 현실은 도저히 치료 풀(Pool)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제도가 미비해서 환자·병원·의료진 모두 꺼리는 당뇨병 치료”
그 이유로는 ▲치료·관리 수가 부재 ▲요양급여가 아닌 요양비 제도 ▲높은 가격 및 렌탈 제도 부재 등을 꼽았다.
현재는 환자가 처방받고 기기와 치료재료를 외부에서 직접 구입하고 일부 환급받는 요양비 구조다. 이에 병원 자체도 책임소재 문제로 처방을 꺼리고, 설명을 들은 환자가 “생각해보겠다”며 발걸음을 돌리거나, 숙지가 어려워 수시로 찾아오는 게 흔한 진료실 풍경이다.
실제 CGM 연동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는 1형 당뇨병 인구는 5만7000명 중 241명인 0.4%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 교수는 “고위험 4등급 의료기기인 인슐린 펌프를 환자가 스스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며 “세팅값을 비롯해 의료진 전문 관리 및 교육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현재 수면무호흡증 양압기처럼 인슐린 펌프의 렌탈 제도를 도입하고, CGM·디지털펜·인슐린 펌프의 요양급여 전환 및 기기 치료·관리 수가를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 입장이다.
“단순히 기기만 보급하면 적자가 나지만, 치료·관리 수가와 함께 기기를 보급하면 흑자로 전환하고 합병증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약 2만명의 1형 당뇨병 환자에게 CGM, 디지털 펜 및 인슐린 펌프 급여를 적용하고 치료·관리수가를 도입한다면 103억원(본인부담 10%) 또는 79억원(본인부담 30%)이 소요될 전망이다.
김재현 교수 “내가 그만두면 당뇨병 환자 볼 사람 없어”
김재현 교수는 “내가 은퇴하면 우리병원에 당뇨병을 보는 사람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며 “지금도 열정페이로 살고 있지만, 우리가 열정페이라도 하면서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당뇨병 치료 전담 의료진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또 나왔다.
김종화 대한당뇨병학회 前 보험·대관이사(부천세종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은 “다른 질환은 의사에게 진단 받고 약을 잘 먹으면 되는데 당뇨병은 진단 후 치료 시 환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CGM 교육 수가는 도입돼 있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며 “결국 인력 풀이 중요한데, 병원 입장에서도 수익이 나야 의료진을 더 투입해주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지난 17년 간 휴가를 쓰지 못하고 이날 겨우 시간을 내고 토론회장에 왔다는 이정화 병원당뇨병교육간호사회 부회장은 “지속적인 의료진 관심이 환자의 CGM, 인슐린 펌프 사용을 늘릴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진일보한 결과는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말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1형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펌프 본인 부담액을 380만원(30%)에서 45만원(10%) 수준으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정성훈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의사가 모든 당뇨병 교육을 담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소아청소년 1형 당뇨병 환자 본인부담액 감면은 재정적 고려라기 보다는 성인보다 어려운 위험성 관리를 고려했다. 요양비와 요양급여 제도 각각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고민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