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홍보팀의 아침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 원장실에서 호출이 오면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 때문에 아침 전투태세를 위한 새벽 출근은 기본이다
. 언론들과의 교류 강화에 힘쓰다 보면 야반 퇴근 역시 다반사다
. 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이들의 노고를 순도
100%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많지 않다
. 심지어 집행부 조차 냉담할 때가 적잖다
. ‘홍보는 잘해야 본전
’이라는 푸념에는 홍보인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 그런 그들에게 최근 패러다임 변화가 일고 있다
. 보건의료 시스템 문제와 의료사고 등 고발성 뉴스가 확대되면서 이제 홍보인들의 역할은 대국민
PR이 아닌 위기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병원 홍보인들의 피로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지난
10일 데일리메디 주최로 열린
‘위기관리 홍보전략
’ 포럼에 국내 병원계 홍보 전문가들이 운집한 것 역시 작금의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했음이 아닌가 싶다
. 이날 토론자로 나선
5명의 대학병원 홍보팀장들은 병원 홍보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진단과 함께 향후 홍보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제시했다
.[편집자주]
“홍보팀 필수 아이템, 위기관리 매뉴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이제혁 홍보팀장은 위기관리 대처가 중요해지면서 홍보업무의 고충이 심화되고 있음에 공감을 표했다.
다만 시대적으로 위기관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에 순응하고 사전 대비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혁 팀장은 “과거 위기관리 매뉴얼이 없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며 “다양한 위기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술회했다.
이어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도되는 건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확산되는 것은 막아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준비해 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기상황 발생 시 집행부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다도 제언했다.
그는 “집행부와 독대를 하며 해당 사건이나 상황이 조직 전체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최적의 대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시간 대처가 중요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적당히 초연할 필요도 있다”며 “홍보팀에서 먼저 가치판단을 내리고 집행부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사태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명확한 시시비비 확인하면서 홍보창구 일원화 중요”
삼성서울병원 조홍석 홍보팀장(한국병원홍보협회 회장)은 대한민국 병원 홍보의 역사를 반추하며 유례없는 환경변화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까지 ‘병원홍보’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건강에 대한 정보 수요가 늘어나고 비로소 병원에서도 홍보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 등장은 본격적인 대언론 홍보의 서막을 알렸고, 이후 십 수년 동안 경쟁적으로 PR에 집중했다.
하지만 매체의 급격한 증가와 의료환경 변화 등으로 홍보팀의 업무 중심이 대국민 PR창구에서 위기대응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홍석 팀장은 “홍보팀은 조직의 위기상황을 최종 방어하고 사과해야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언론 홍보가 점차 어려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기상황이라고 무조건 덮으려 하기 보다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고,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명쾌하게 인정해야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위기관리 대응전략으로 홍보창구 일원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론 입장에서는 원활치 못한 실무부서 접촉에 불만을 제기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중요한 방어수단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다.
“사전 준비 철저, 상시 전투태세 구축”
서울성모병원 임성규 홍보팀장은 위기상황에 대한 정면돌파를 제안했다. 다만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임성규 팀장은 “홍보의 완성은 위기관리다. 그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확산을 최소화 시키는 게 작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홍보”라고 말했다.
이어 “위기상황 발생 시 홍보팀은 숨을 수도, 숨어서도 안될 부서”라며 “어차피 내외부적으로 홍보팀에 집중이 될 수 밖에 없는 만큼 발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속한 대처를 위한 유비무환(有備無患)은 임성규 팀장이 제시한 정면돌파론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위기는 언제 어떤 형태로 찾아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평소 다양한 상황을 전제로 시뮬레이션 해보고 그에 따른 대처법을 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그는 토론 도중에 자킷 안주머니에서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을 꺼내 보이며 “위기상황에 대비해 매뉴얼을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며 “위기관리는 평상시 얼마나 준비돼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설파했다.
이어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홍보팀이 직접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대처하면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위기상황, 소통 기반 조직적 대응전략 구사”
서울아산병원 강석규 홍보팀장은 “위기는 곧 홍보팀 존재의 이유”라고 정의했다. 이미 홍보팀의 역할이 변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특히 "위기관리는 비단 대형병원의 문제가 아닌 모든 의료기관에 해당되는 만큼 개원가, 중소병원, 전문병원, 요양병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위기관리 핵심은 ‘소통’에 있다고 단언했다.
강석규 팀장은 “홍보팀은 사고를 수습하는 역할이고 그를 위해서는 명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며 "소통 부재는 이러한 부분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꾸준한 교류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며 “위기 상황에서 소통 부재에 따른 2차 문제가 발생하면 수습이 더욱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위기관리에 대한 조직적 대응 필요성도 강조했다. 홍보팀이 수습의 중심에 설 수는 있지만 조직원 전체가 함께 사태 확산을 막아내야 한다는 얘기다.
강석규 팀장은 “과거 실무자의 인터뷰가 방송을 탔고, 병원이 부도덕하게 인식될 수 있는 내용으로 고충을 겪은 적이 있다”며 “조직원 모두 위기관리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확한 판단 근거 결정이 행운과 불운 갈라”
30년 넘게 홍보 외길을 걸어온 세브란스병원 홍보팀 최경득 부장은 ‘운(運)’이라는 한 글자로 위기관리를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 운이 찾아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화(禍)가 될 수도 있고 복(福)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경득 부장은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운”이라며 “지난 겨울 화재 당시 내외부에서 많은 칭찬이 이어졌다. 시스템의 덕(德)도 있었지만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발화 현장에 환자가 있었더라면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었더라도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며 “결국 운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절대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향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침착하면서도 신속한 상황 판단을 내려야 한다”며 “사실관계에 입각해 이후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고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홍보실은 위기상황에 대한 병원 결정에 관여할 필요가 있다”며 “해당 결정에 대한 가치 판단과 함께 최고경영자에게 가감없는 조언을 해야 하는 게 홍보실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