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지헌 오주현 기자 =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치료라고 여길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가입자가 백내장 수술을 받을 경우 건강보험 비급여 수술비용의 상당액을 보험금으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보험업계에선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일부 안과 의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백내장 수술 관련 과잉진료 행태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한다.
◇ 백내장 수술, 앞으론 일률적으로 입원치료 인정 안 돼
19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백내장 수술은 포괄수가제가 적용된다는 이유로 그동안 환자의 개별 치료조건과 무관하게 입원치료로 인정됐다.
포괄수가제란 검사, 처치, 진단 등 의료 행위를 세분해 진료비를 매기는 대신 한 질환에 필요한 여러 치료 항목을 묶어 진료비를 책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포괄수가제가 입원치료를 전제로 한 제도이다 보니 백내장 수술의 경우 6시간 미만 관찰 후 당일 귀가하는 경우에도 치료의 실질과 관계없이 입원치료에 해당한다고 인정돼왔다.
최근 대법원은 이런 상황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 민사2부는 지난 16일 A보험사가 백내장 수술을 받은 실손보험 가입자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앞서 2심 재판부는 해당 사건 피보험자의 입원치료 여부에 대해 "실손보험 약관상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며 통원치료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환자의 개별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치료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 보험업계 "수술비 전액, 보험금으로 못 받을 수도"
보험업계는 이번 확정판결 영향으로 실손보험 가입자가 병원에서 백내장 진단을 명확히 받고 수술을 하더라도 통원치료 보장한도를 넘어선 비용을 보험금으로 지급받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고액의 수술비 등이 나와도 실손보험으로 보장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입원치료에 해당할 경우 실손보험 보장한도는 최대 5천만원이지만, 통원치료의 경우 보장한도가 20만∼3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보험사가 입원치료의 적정성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통원치료 보장한도를 벗어나는 백내장 수술 비용 대부분을 환자가 직접 부담해야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따라 백내장 수술을 받더라도 실손보험에서 수술비 전액에 상당하는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안과의사회도 이번 대법 판결 후 각 병원에 공지문을 보내 "지난 서울고법의 결론이 유지된 상태이므로 백내장 수술 관련해 환자들이 보험약관에 따른 보험금 수령 가능성에 대해 질문할 경우 주의해달라"고 안내했다.
황홍석 안과의사회 회장은 "실손보험금 지급 문제는 보험사와 계약자 간 문제여서 원칙적으로 의사가 관여할 수 없지만, 보험약관 해석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만큼 회원들에게도 주의를 환기하고자 공지했다"고 말했다.
◇ 보험사, 입원치료 적정성 볼 듯…고액 비급여 시술 권유 어려워져
이번 확정판결은 백내장 수술 관련 치료 관행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험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생명·손해보험협회 집계에 따르면 백내장 수술로 지급된 생·손보사의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올해 1분기 4천570억원(잠정치)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3월 한 달간 지급된 보험금만 2천53억원으로, 전체 실손보험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4%에 달했다. 지난해만 해도 이 비중은 9.0% 수준이었다.
이 같은 보험금 급증 사태의 배경을 두고 보험협회는 일부 안과에서 백내장 증상이 없거나 수술이 불필요한 환자에게 단순 시력 교정 목적의 다초점렌즈 수술을 권유하는 등 과잉수술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일부 브로커 조직과 연계해 수술을 유도하거나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 허위 청구를 권유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보험업계는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백내장 진단에 관한 근거자료 증빙 요구를 강화하는 등 보험금 지급 심사를 엄격히 하는 한편, 이달 말까지 특별신고기간을 운영해 보험사기 의심사례 제보자에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법 판결 이후 백내장 수술 관련 실손보험금 지급 심사는 한층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들이 입원치료의 적정성까지 심사 기준에 포함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백내장 진단을 확실히 받더라도 20만∼30만원을 초과하는 비용에 대한 실손보험금 지급을 확신할 수 없는 만큼 병원 입장에선 고가의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을 쉽게 권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명확하게 백내장 증상을 입증하는 첨부 서류를 냈다고 하더라도 입원치료의 적정성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으므로 불필요한 입원 치료 시술 권유 사례가 감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입원치료 인정 두고 또 다른 분쟁 가능성…"선의 피해자 없어야"
일각에선 입원치료 적정성 인정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계약자 간 또 다른 분쟁 사례들이 빗발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별 사안에 따라 의사의 판단으로 실질적인 입원치료가 필요한 백내장 수술 환자들도 있는데, 보험사들이 판례를 들어 입원치료 인정을 거부하려 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은 보험사의 지급 심사 강화 이후 올해 들어 크게 증가한 상황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꼭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백내장 환자도 있는데 이번 판결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입원치료 적정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새로운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안팎에선 보험사가 실손보험 계약자를 대신해 병원에 보험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하는 '채권자 대위'(채무자가 가진 채권을 대신 행사하는 권리)가 가능해질 경우 실손보험 분쟁 관련 소비자 보호가 강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원칙적으로 보험사가 안정성·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시술에 대한 보험금을 되돌려받으려면 보험계약 상대방인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반환 청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채권자 대위가 인정되면 보험사는 환자 대신 병원을 상대로 진료비 반환 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3부는 지난 3월 맘모톰 시술을 한 의사를 상대로 낸 실손보험금 반환청구사건에서 채권자 대위 인정을 둘러싸고 공개변론을 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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