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대한전공의협의회 23기 집행부는 역대 그 어느 집행부보다도 치열하고 꽉 찬 1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20년 만의 의료계 대정부 투쟁을 이끌었던 박지현 대전협 전(前) 회장이 있었다. 지난 15일 의료전문지 기자단은 예정보다 더 길어졌던 임기를 마치고 회장직에서 내려온 그를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전공의들에 대한 애정, 함께 일한 23기 집행부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집자주]
Q. 임기를 마무리한 소회는
A. 투쟁에 많이 집중하면서 전공의 사회에 좋은 점도 있었지만 지난 1년간 했던 다른 일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아쉬운 부분이 있다. 투쟁 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복지부에서 시작한 연구도 있었고 전공의법 개정안도 발의를 앞두고 있다. 수련규칙표준안 개정이라든지 이 밖에도 많은 재밌는 일들을 했는데 그런 일들을 마무리 못해서 아쉽다. 하지만 일단 시작을 했고 누군가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계속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기 시작하며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잘난 회장 하나가 아니라 좋은 팀을 만들고 싶단 거였다. 실제로 우리 집행부는 각자 역량을 훌륭하게 발휘했다. 누가 어느 회의를 나가도 불안하지 않았다. 마무리도 그렇고 많은 일들을 연속성 있게 하지 못해 아쉽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좋았다.
Q. 대전협이 추진 중인 전공의법 개정안은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되나
전공의법을 어겼을 때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과 현재 4주 평균 80시간 근무를 좀더 엄격한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이 담기게 된다. 가령 현재는 4주 평균 80시간이라 중간에 한 번 휴가를 다녀오면 다른 날에 당직을 몰아서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편법을 불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환경 지원을 위한 정부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조항 문구 수정도 추진한다. 전공의법 3조 1항의 ‘국가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에 따른 시책 추진에 노력해야 한다’라는 문구에서 ‘추진에 노력해야 한다’를 ‘추진해야 한다’로 바꾸는 내용이다. 2항의 경우에는 ‘국가는 전공의 육성, 수련환경 평가 등에 필요한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에서 ‘할 수 있다’를 ‘해야 한다’로 수정한다.
Q. 단체행동을 하면서 힘든 상황이 많았을 것 같은데
A. 첫째로 재정이 부족했고 둘째로 인력이 부족했다. 처음 8월7일 집회 준비를 하면서 업체를 써야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1억6000만원이었다. 당시 모인 투쟁성금으로 부족해 의협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에 의협이 투쟁성금 모금 문자를 돌려줬다. 두 번째로 인력부족의 경우 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전협 집행부는 8월7일 전에는 의협 임시회관 7층에 살다시피했다. 에어컨이 안 되는 회의실에서 한여름에 일 끝나고 모여서 밤새 공지를 쓰고 단체행동을 계획했다. 8월1일에 대의원총회에서 의결하고 7일까지 시간이 촉박했지만 열심히 한 집행부와 훌륭한 각 병원 대표들 덕분에 극복 가능했다. 중간에 비대위에 지원하겠다는 전공의들도 많았지만 이해도에 따라 할 수 있는 업무들이 제한적이다 보니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그리고 전공의들은 학창시절부터 공부하라면 공부하고 시험치라면 시험치던 한 번도 규율을 깨본 적 없는 모범적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병원 정규 업무를 던지고 나왔다는 점도 사실 심적으로 힘들었다. 단체행동은 정말 계획부터 실행, 수습까지 쉬웠던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Q. 단체행동 마무리를 놓고 여러 말들이 많았는데
A. 박지현 집행부의 투쟁은 끝났고 이후는 그들이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다. 사실 23기 집행부가 투쟁만 한 것이 아니다. 투쟁 전까지 12개월 동안 집행부의 팀워크와 대의원들과의 유대관계를 다져왔고, 병원장님들과도 갈등하기도 합심하기도 하는 등 여러 경험들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투쟁을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최대집 회장 혹은 송명제 이사의 날치기 때문에 파업이 무너졌다. 그런 상태에서 태세를 전환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목표없이 떼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중간 중간 대전협이 굳이 공식발표를 하지 않은 것은 의협이 저급하게 가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도, 전공의를 비롯한 의사들도 각종 소문과 루머, 인터넷 여론 등에 휘둘리더라. 결국 그게 흐름이라면 끌고가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향후 청사진을 알려도 소용없다고 봤다. 물론 직접 마무리 못해 아쉽지만 전공의와 의사사회가 선택한 거라면 그 템포와 발걸음에 맞춰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결과야 어떠했든 간에 정말 큰 경험이었고 많은 깨달음 얻었다.
Q. 투쟁에 가려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A.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자체가 매번 전쟁이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서울대 인턴 수료 사건이 임기 시작 전에 시작된 문제인데 임기 시작과 동시에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싸웠다. 수평위에서는 이 외에도 여러 문제를 갖고 늘 싸웠다. 힘든 부분은 수평위의 경우 아침이나 오후에 열리는데 전공의 위원들은 아무리 공문이 있어도 수련에서 시간이 제외됐다. 김진현 前 부회장의 경우는 수평위 회의 참석할 때마다 개인 휴가를 쓰고 갔다. 막상 회의에 가도 분위기가 매우 강압적이었다. 결국 수평위 구성과 관련한 법 개정도 안됐다. 굉장히 중요한 자리임에도 전공의의 비율이 적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Q. 회장직 맡기 전 박지현과 맡은 후 박지현은 어떻게 달라졌나
A. 우스갯소리지만 취임 후에 부탁 받은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글을 쓰지 말라는 거였다. 물론 트위터는 끝까지 했지만 페이스북은 2년차 이후에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단체행동 때 개인적 소회를 트위터에 썼던 게 캡쳐가 돼 돌아다니길래 이럴 바에 다 쓰는 게 낫겠다 싶어 복지부와 회의 때 이야기들을 다 썼던 것이다. 두 번째는 최대집 회장을 보고 느낀 것인데 회장 박지현과 개인 박지현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그런 얘길 들었다면 흘려버렸을텐데 최대집 회장의 언행 하나 하나가 전체 의사의 대표로서 하는 행동으로 비춰진다는 점을 보며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전공의들에게 부끄러운 회장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늘 주의했다.
인간 박지현으로선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 수련에 집중할 수 없단 점이 아쉬웠다. 회장 박지현으로선 365일 하루도 대전협을 놓았던 적이 없다. 물론 나 혼자 그런게 아니고 집행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련국 같은 경우는 노예처럼 일했다. 단체행동 기간 아니더라도 매일 밤 10명가량이 SNS 단체대화나 단체통화를 통해 한두시간씩 회의를 했다. 다들 뭔가를 바란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만 육천명의 전공의를 짝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집행부가 자랑스럽고 그들과 함께 일을 했다는 것이 개인 박지현에게 큰 자산이고 보물이 됐다.
Q. 취임 당시, 임신전공의 역차별 문제 해결을 중점 공략 중 하나로 내세웠었는데 개선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A. 임신전공의 관련해서 7월에 많은 것들을 기획했었다. 정의당과 함께 국회 토론회도 준비했고, 대학원생 등 다른 직역들과 실태조사 등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단체행동 문제로 중단이 됐던 것이다.
임신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고 싶었는데 그 문제를 개선하려면 임신전공의가 왜 추가수련 받아야 하는가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근로기준법 준수해서 주40시간을 근무하면 수련이 부족하다는 것이 교수님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도 외래 위주로 돌아가는 일부 과들은 주40시간만 근무해도 충분히 수련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지금은 수련을 절대적인 시간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문제다. 연차별 수련교과과정과 평가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면 임신하더라도 부족한 부분만 더 수련한다든가 할 수 있을텐데 지금은 그런 기준이 없다. 그래서 우리 기수가 열심히 했던 부분이 연차별 수련교과과정을 각 학회와 열심히 만들고자 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에서 돈을 받아온 것도 우리 기수가 처음이다. 관련 정책은 현재도 복지부가 진행하고 있고, 당장 가시적 성과는 아니지만 임신 전공의 문제도 그 연장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투쟁과정서 정부‧의협에 많이 배웠고 최근 당정 발언에 대해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
"회장은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자리, 옳고 그른 것 구분할 수 있어야"
"전공의들은 지금의 관심과 열정 잃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길 당부"
Q. 앞선 경험자로서 신임 집행부가 대정부 및 의협과의 관계 등을 구축해나가는 데 필요한 조언을 한다면
A. 각 집행부마다 자신들마의 색깔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가령 23기보다 앞선 집행부들의 경우에는 수요일마다 열리는 상임이사회에 참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의협 내 각종 협의체에 전공의 파견도 적었다. 하지만 우리 기수에서는 파견도 많이 갔고 위원회마다 전공의들이 다수 포진했었다. 여러 문제에서 전공의 목소리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 복지부 국장, 대한병원협회 회장과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반드시 만났다. 유관단체와 간담회, 회의 참석을 얼마나 해야 되는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각 기수별 역량과 여력이 되는 한 하는 것이다. 부담 갖지말고 하고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면 좋겠다. 회의를 많이 나간다고 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분에 주력할 것인가 임기동안 뭘 하고 싶은가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Q. 대전협 신입 집행부는 의대생 국시사태와 관련 국감에서 발언을 보고 재차 단체행동 돌입까지 고려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A. 집행부가 할 수 있다면 하는 거다. 8월7일 전에는 전공의들 내부에서도 우리가 단체행동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실제로 투쟁이 될지 안 될지는 집행부가 만들어가는 그림이라 누구도 점 칠 수 없다. 지금 의대생 본인들의 입장 표명보다 다른 사람들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의대협과도 계속 이야기를 했던 것도 본인들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대응하는 게 중요하지 협박만 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지난 2년 넘게 최대집 회장이 파업 경고만 남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예고보다는 정말 가장 좋은 시점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칼을 갈고 있다가 나서는 게 가장 좋다. 복지부도 그렇고 한 번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을텐데 그에 대해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Q. 단체행동 계기로 전공의들의 대전협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지만 이번 회장 선거 투표율은 예상보다 높지 않았는데
A. 전공의들이 현안과 대전협에 관심 가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이전에는 의료계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언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다. 공공의료든 원격의료든 의료계 내부에서만 이슈가 됐었다. 그래도 파업 기간동안에는 사회‧정치면을 다 도배했었다. 이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적어도 전공의에 대해 알게됐고, 파업과 전공의법 등에 관심이 생겼다. 전공의들도 대전협과 의료현안에 관심이 생겼다. 투표는 파업결과나 현안에 대해 마음이 들지 않아 투표를 하고 싶지 않다는 또 다른 의사표현의 결과일 수 있다. 그것 또한 존중한다. 앞으로 대전협이 하는 일들에 많은 목소리를 내주면 좋을 것 같고 개인이 느낀 수련의 문제점, 의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한 명의 전공의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
Q. 의정합의 이후 당정이 하는 발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A. 개인적으로 앞에서 뒤에서 말하는 것이 똑같은 스타일인데 이번에 정부와 의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뭐라고 말하든 별로 신경쓰지 않게 됐다. 실속 없는 도발에 굳이 넘어갈 필요없고 이제는 그걸 가려서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도 몇 개 법안이 발의됐다고 바로 단체행동에 나섰던 게 아니라 몇 달간 정부와 만나서 논의하다가 안돼서 나갔다. 지금 하는 언행들이 쇼인지 진짜인지, 지금 막아야 되는 건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정치인들의 발언을 하나하나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그래서 이번 발언들을 보면서도 정부도 전공의 파업이 큰 스크래치로 남았구나, 국감 앞두고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서 일일이 신경쓰지 않았다.
Q. 한재민 대전협 신임회장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A. 모든 건 결국 회장이 책임진다. 그래서 중심을 본인이 잡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전공의 중 가장 믿었던 사람이 김진현 부회장인데 그런 김진현 부회장이 내린 결정도 뒤집을 수 있어야 하는게 회장이고 그 결정에 책임도 져야 하는 게 회장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이용이나 간섭하려 하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가치인지 뭐가 진짜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부족했지만 결국 일은 회장 혼자 하는게 아니라 팀이 같이 하는 것이다. 회장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최종 결정을 내리며 그에 대해서 남탓이 아닌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다. 단체행동 과정에서도 매 순간 나 혼자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책임지고 납득할 수 있을 때 결정했다. 지금도 그것에 대해선 후회는 없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Q. 임기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짝사랑’ 이라고 표현한 전공의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A. 전공의들이 있어서 23기 집행부가 일을 할 수 있었다. 울고 웃고 다사다난했지만 내 인생에서 후회없을 1년이었다. 그것이 남긴 역사적 의의가 어떻든 간에 전공의 사회에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전공의 선생님들 자신들이다. 이 관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