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지호 기자/
기획 4] 의사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국내 의료계에서는 어떤 것이 달라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答)은 현재 의사들이 왜 노조를 설립코자 하는지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하면 된다.
의대교수를 비롯해 봉직의, 전공의 등 직역에 상관없이 의사들은 노조 설립을 통해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고 단체교섭권을 갖고자 한다.
단체교섭권을 통해 통일되고 일관된 목소리를 낼 때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수월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 같이 의료계에 대한 유무형의 압박에 대한 대응법이자 바람막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마지노선인 셈이다.
의사들의 전국 규모 노조 출범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의과대학 소속 교수들이다.
교섭권 행사를 통해 근로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며 실적 압박에 벗어나 좀 더 환자에게 다가갈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의대 교수들이 노조를 설립코자 하는 목적, 다시말해 단체교섭권을 얻으려는 이유가 결국 의사 본연의 업무인 환자를 마음껏 치료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 만큼 노조가 설립된다면 이 부분이 어느정도 충족될 수 있을지 관심사다.
2017년 12월 18일 의사노조라는 명칭을 국내서 처음 사용한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노동조합은 설립된 지 약 1년만인 2019년 초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초대 분회장인 김재현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장은 “전담 의사는 응급 환자에 대한 콜을 받으면 언제 어디서든 병원에 가야한다. 응급콜에 응답하지 않으면 면허취소 등 엄격한 처벌을 내리는 상황이지만 사실상 현장에서는 노동이 아닌 의무로서만 취급되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2019년 동남권원자력병원 노조는 단체협상을 통해 응급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유난히 응급 호출이 많은 진료과를 위해 업무량을 조절하기로 협의하기도 했다. 여기에 저수가로 인한 경영진의 과잉진료 압박이 행해지기 쉬운 환경에서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진료권한위원회도 설립됐다.
위원회 설립 후 의사가 수익성에 내몰리고 과잉진료를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재현 위원장은 “고가 진료를 재촉하는 병원을 막고 환자에게도 진료 선택권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의사는 병원의 돈벌이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오직 환자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고민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노조 설립은 부당한 임상시험 폭로를 이유로 병원 측이 해당 의사를 인사고과 저평가 후 해고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이 같은 부당 징계 및 해고로 12명의 의사들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에 가입해 분회를 조직한 것이다.
"불법 PA·의료인 폭력에 대해 더 큰 목소리 낼 수 있다”
봉직의와 개원가 단체들은 노조 설립을 통해 의료현안에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9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은 취임사에서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봉직의 회원이 9000명을 넘어 1만명 가까이 되고 있다. 봉직의는 의사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직역이지만 의료계 내부 관심이나 정책에서 소외돼있다. 봉직의들이 직접적으로 정책에 참여하고 투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노조 설립 목적을 이같이 설명했다.
봉직의들이 노조를 구성하게 되면 직접 의료정책에 참여하고 투쟁에 동참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병원의사협의회 입장이다.
이어 주 회장은 “의료계 내부 대정부 투쟁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잘못된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며 “의협 투쟁에 동참하면서도 의협에 봉직의 회원들 권익 보호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주 회장은 또한 “구체적인 사안으로 의료인에 대한 폭력, 불법 PA문제 등 굵직한 의료 현안들에 대해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사 노조가 출범하면 의사 자신의 권익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좀 더 높이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개원가들도 노조 설립을 통한 단체교섭권 권익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로는 부족하고 각 직역별로 노조를 형성해 보다 효과적인 권익 투쟁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3월 치러진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서 후보 6명은 모두 의사노조 설립에 적극지원하겠다고 밝혔고 후보들은 하나같이 ‘의사 권익 확보’를 주장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후보 시절 “의사노조 설립이 논의되는 것은 이공계 최고의 전문가 단체인 의사들의 삶이 열악해 졌다는 뜻으로 안타깝다. 의사 노조를 설립할 경우 직종별 노조가 적합하며, 현실적으로 대형병원 봉직의 중심 노조가 될 것이다. 회장이 된다면 의사들이 전문직으로 직능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노조 설립 지지를 시사했다.
대한의사협회장 후보였던 김동석 대한개원의협회장도 당시 “더 이상 의협을 통한 투쟁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 노조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강력한 방식으로 의사 권익 투쟁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노조 통해 개별 병원과 협상 가능”
전공의들은 노조 설립을 통해 현재 시행 중인 전공의특별법을 좀더 확실하게 개별 병원에서 운영되도록 목소리 낼 수 있을것으로 기대한다.
전공의특별법 시행 이후 전공의 근무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자 병원별 전공의 노조를 수립해 개별적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공의에게 제대로 된 수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번아웃(Burn out)을 막아 전공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지난 201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전공의특별법은 올해로 도입된 지 4년을 맞았다.
대전협은 전공의특별법 시행 이후 전공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2016년 92시간에서 2019년 80시간으로 감소하고, 36시간 이상 연속근무를 하는 비중도 34.4%에서 23.9%로 줄어드는 등 일부 효과를 보였지만 여전히 많은 전공의들이 과중한 업무환경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2019년 수도권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주당 평균 100시간 이상의 살인적 근무 스케줄을 견디다 못해 당직실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전공의는 사망 직전 1주일 동안 업무시간이 113시간에 달하고 사망 직전 12주 동안 주 평균 업무 시간도 98시간에 달해 업무상 과로 기준(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 60시간)을 초과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노조 설립이 된다면 전공의특별법이 병원별로 체계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대전협 관계자는 “전공의특별법 이후에도 전공의들 근무환경이나 수련 질에 있어 가시적인 개선이 보이지 않고 있다”며 “최근 진료보조인력(PA)으로 인한 전공의 교육기회 박탈 및 열악한 육성지원과목의 부실수련, 중·소규모 수련기관 교육체계 미비 등은 대전협이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 방안까지 제안하고 있지만,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각 병원의 설립 형태, 규모, 재정적, 인적 구성에 따라 전공의들이 수련 환경이 상이해 각 병원별로 노조를 구성해 수련환경에 따라 각자 병원과 협상할 필요성이 있다”며 “각 병원별 노조 설립 후 병원 성격에 따라 국공립병원, 사립대학병원, 중소병원 등 소산별 노조에 편입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추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