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병원들 움직임이 심상찮다. 특히 각 지역에서 중추적인 응급의료를 수행 중인 병원들이 무더기 타이틀 반납을 예고하는 등 정부를 향해 날선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형병원들과 힘겨운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소병원을 독려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고사 직전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중소병원협회 이성규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맞물린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강력 규탄했다.
중소병원들의 비분강개(悲憤慷慨)는 얼마 전 발표된 정부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기인한다. 국민 건강권을 확보하겠다고 내놓은 정책에 정작 중소병원들이 배제된 탓이다.
실제 정부는 현재 40곳인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증응급진료 역량을 갖춘 중증응급의료센터로 개편하고, 규모도 50∼60곳 안팎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가 수술을 위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다가 시간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설명이다.
현재 대부분의 권역응급의료센터는 대학병원이 운영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응급의료센터나 지역응급의료기관인 중소병원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대한중소병원협회 이성규 회장은 “지역의료 안전망을 해치는 이러한 터무니 없는 탁상행정은 기울어진 현 의료전달체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힐난했다.
중소병원들은 무엇보다 그동안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 응급의료를 사수해 온 노고를 인정하지 않고, 이번 필수의료 대책에도 배제시킨 부분에 공분(公憤)을 표했다.
실제 우리나라 전체 응급의료기관 410개 중 중소병원은 60%가 넘는 252곳을 운영 중이다. 제도권에 포함되지 않은 일반 응급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성규 회장은 “이번 대책에는 대형병원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실제 지역에서 더 많은 응급의료 영역을 담당하는 지역응급의료기관 육성 방안을 빠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랜 세월 묵묵히 지역의료의 안전망을 담당해 온 중소병원을 홀대하는 정책에 박탈감을 느낀다”며 “지역응급의료기관의 역할을 폄훼하는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역응급의료기관도 우수한 치료 역량과 시설을 갖추고 있어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환자 부담을 덜어주며 필수의료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의료기관에게 경증과 비응급환자만 진료하라고 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며 “이는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형병원 인력 증원, 중소병원 인력 감소 초래 등 지역 의료시스템 더 악화"
이 외에도 이번 정부 대책이 향후 야기시킬 여러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성규 회장은 “중증응급의료센터에 필요한 인력과 재원에 대한 공급은 결국 중소병원을 이용하는 지역주민들의 직접 피해로 이어질게 자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병원 인력 증원은 중소병원 인력 감소로 이어지고, 중소병원 종별 가산금을 빼서 대형병원에 몰아줌으로써 지역 의료시스템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대책에 분노와 좌절감에 빠진 중소병원들이 ‘지역응급의료기관’ 타이틀을 무더기로 반납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성규 회장은 “지역응급의료기관에게 입원이 불필요한 경증 환자만 받도록 하는 이번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지역응급의료기관을 반납하겠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역량을 갖춘 지역응급의료기관도 응급환자의 최종 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