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팬데믹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무너진 일상으로 우울감, 불안 등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인구가 늘었다. 이와 함께 근래에는 진료실을 넘어 더 많은 대중 앞에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문화예술인 의사들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방송가에서 고민 상담 프로그램 패널로, 서점가에서는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한 해와 계묘년 새해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원인 모르는 불안, 주식투자 실패, 육아 고충 등 다양한 사유로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 뿐 아니라 진료실 밖의 이들에게도 위로를 이어가고 있다. 데일리메디가 최근 1년 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펴낸 책들을 돌아봤다. [편집자주]
이달 9일 출간 예정인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9명이 자신의 성장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김은영 서울의대 교수, 정찬승 마음드림의원 원장,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경희대병원 백종우·백명재 교수,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민영·이정현 전문의, 전진용 울산대병원 교수, 정찬영 광주동명병원 원장 등이 작가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진료실과 재난 현장에서 벌어진 영웅담 또는 환자를 극적으로 치료한 경험을 공유하는 대신, ‘얼마나 환자와 함께 견뎌줬는지’를 덤덤하게 기록했다.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의 실패, 친했던 친구를 잃은 경험, 트라우마를 호소한 환자와 함께 울기도 했던 고백도 담아냈다.
현대인의 높은 관심 분야인 주식 투자를 풀어낸 의사들도 있다. 박종석 구로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구로동 주식클럽'이라는 소설을 써냈다.
SNS 채팅방에 모인 이들이 익명으로 주식 관련 고민을 나누다가 한 구성원이 무리한 투자로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린 후 처음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 원장은 소설 형식을 빌려 주식 중독 치료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시켰다.
실제 투자 실패 경험이 있는 박 원장이 전하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앞서 '살려주식시오', '우린 조금 지쳤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등 다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박종석·최삼욱 원장 주식 다룬 소설·비법서···김혜남 작가 경험담 베스트셀러
지난해 5월에는 20년 이상 주식투자자들을 임상현장에서 만난 의사가 주식투자 성공 비법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한 책도 나왔다.
최삼욱 진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의 '주식은 심리다'다.
최 원장은 주식 문제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 환자들을 만난 경험 뿐 아니라 개인 투자경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그는 실수를 일으키는 투자 심리를 다스리면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조언한다.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탄생시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있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김혜남신경정신과의원 원장 등을 지낸 김혜남 작가다.
그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베스트셀러 등극을 기념해 지난해 11월 스페셜에디션으로 출간됐다.
지난 2015년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후 판매기록 10만부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22년 간 실제 파킨슨병을 앓기도 했던 김 작가는 해당 책을 통해 30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며 깨달은 인생의 비밀과 유쾌하게 살아간 비결을 전한다.
앞서 80만 부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비롯해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당신과 나 사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등 10여권을 써낸 베테랑 작가다.
가수와 합작 한덕현 교수···"유연한 심리" 강조 정두영 교수
현직 가수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합작도 화제가 됐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교수와 가수 이성우(노브레인)가 쓴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9월 출간된 이 책은 이성우가 한덕현 교수와 함께 찾은 불안을 견디는 법을 대화 형식으로 엮은 글로, 답답하고 두려운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한 교수는 "우울증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깥으로 향하는 공격성이 바깥 대상을 찾지 못해 나에게로 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앙대병원 게임과몰입상담치료센터 팀장도 맡고 있으며, 하버드대 의대 뇌과학연구소에서 연구전임의를 지냈다.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스포츠 정신의학', '우리 아이가 하루 종일 인터넷만 해요', '마음 속에는 괴물이 산다' 등을 펴낸 바 있다.
"힘든 일이 계속되고 바꿀 수 없다면 심리적으로 유연해지라"고 조언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헬스케어센터장)는 지난해 8월 책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에 이를 담아 내놨다.
이는 일부 신문사에 연재하던 칼럼을 묶은 것으로, 그가 UNIST 구성원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들었던 생각을 담았다.
정두영 교수는 "수많은 심리서를 읽고 유명 인사의 강연을 들어도 여전히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사람들이 있다"며 "해결하려 하면 할수록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것 같으면 해결 기술이 아니라 심리적 유연성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심리적 유연성이 낮으면 똑같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심리적 유연성이 높은 사람은 상황과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에게 이로운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두영 교수는 KAIST와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수련했다. 2016년 UNIST에 부임한 후 임상심리사, 상담심리사와 협업해 더 많은 사람이 효율적으로 상담센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허휴정·김효원 교수, 경험서 우러난 공감과 진단
본인의 경험과 환자들의 경험을 연결해 위로를 전하는 의사들도 있다.
인천성모병원 허휴정 교수는 마음과 몸이 연결돼있다는 생각을 정리해 '마음이 힘들면 몸을 살짝 움직입니다'를 지난해 8월 출간했다.
허 교수는 몸과 마음의 다양한 변화들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마음과 연결돼 있는 몸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본인도 출산을 앞두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게 되자 우울, 좌절감에 빠진 경험이 있다.
그는 마음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요가를 배우며 몸의 소리에 귀기울였던 경험을 써내려갔다. 환자들과 함께 한 몸 작업도 소개됐다.
성폭행 생존자와 발바닥 감각을 느끼며 걷고, 우울증을 앓는 모녀가 서로의 견갑골 부위에 손을 갖다 대며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날개뼈 움직임을 느끼게 한 사례 등이다.
지난해 4월 나온 '엄마의 마음이 자라는 시간'은 20년 경력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자신이 만난 엄마와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쓴 책이다.
저자인 서울아산병원 김효원 교수는 자신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진료실에서 수 많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감각을 몸과 마음으로 익혔다.
▲엄마도 엄마로 자라는 중이다 ▲아이의 빛나는 내면을 발견하려면 ▲내 등 위에 올라탄 아이들 ▲엄마도 불완전한 사람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으며, 엄마가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 안의 어린이를 직면하고 다독이는 과정이 그려졌다.
김효원 교수는 "아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오랫동안 힘든 자갈길을 함께 걸은 친구처럼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는데, 그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30 여성 위로 반유화 전문의···서툰 어른들 격려 신재현 원장
여성학자이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반유화 작가는 2030 여성을 위한 책을 펴냈다.
지난해 8월 출간된 '언니의 상담실'은 누적 조회수 30만뷰를 기록한 그의 뉴스레터 '언니단'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독자들이 그에게 보낸 고민과 사연에 대해 전문의이자 친근한 언니로서 진단 및 상담한 내용이 담겼다. 그는 12년 간 진료실에서 여성 내담자만 1000여명 이상을 상담했다.
2030여성들이 겪은 무기력함·우울 등 개인적인 문제, 가족과 친구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비혼·성차별 등 사회제도적 문제 고민 등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그는 이화여대 의과대학 졸업 후 이화의료원에서 수련하고 서울대 사회과학대 여성학협동과정에서 석사를 수료했다.
신재현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은 지난해 2월 '어른의 태도'를 통해 성인들을 독려했다.
신 원장은 "성인이 됐지만 스스로 불완전하며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서툰 이들에게 공감과 자기 성찰을 돕는 단단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특히 충고, 평가, 조언, 판단 등의 타인의 주관적인 정답 대신 심리학 이론에 근거한 삶의 해답을 제시했다.
신재현 원장은 계명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의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새내기 전문의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신문사, 웹진 등에 글을 실었고 현재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대한 글을 연재하는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나를 살피는 기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