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의 2023년도 의사국시 무더기 탈락 사태를 계기로 의대생 교육 방식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비단 울산대 의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의학계 전체가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이 교수들 ‘진료’와 ‘실적’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희생되며 최상의 교육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김장한 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울산의대 협력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들의 진료 중시 분위기가 축적된 결과라는 거시적 분석을 내놨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이기도 한 그는 “실기시험 대규모 탈락의 직접적 원인은 시험에 대한 준비가 덜 된 것”이라면서도 “그 책임이 학생들에게만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성균관의대와 울산의대가 협력 형태로 각각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과 연결돼 있지만 교육이 아닌 병원 중심 정책과 문화가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김장한 회장은 “대학병원 캠퍼스에서 최우선 가치는 진료이고, 그 다음이 연구, 교육은 가장 뒤로 밀려 있다”고 일침했다.
이어 “진료수익 및 실적에 대한 병원 압박과 그에 따른 성과급을 고려하면 많은 교수들이 진정한 열의를 갖고 교육에 임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학교와 병원이 각각 다른 기관인 만큼 기능과 책임이 모두 다르다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김 회장은 이에 반대했다. 결국 학교, 교수, 병원 모두 학생들 교육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병원이 진료에만 치중해 학생 교육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며 “대학병원은 의과대학을 보호하고 육성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다만 시험이라는 게 그야말로 최소한의 검증이라면 교육 목표는 학생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데 있다. 이에 대한 내부 천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기시험 모호성 의구심 지속 제기 vs 국시원 "검증된 방법 기반 실시"
이번 울산의대 결과와 관련, 실기시험의 공정성도 합격률을 좌우하는 변수였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시험 주관처는 “문제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2009년 도입된 의사국시 실기시험은 합격 여부만 공개돼오다 점수 채점 기준이 모호하다는 학생들 지적에서 2018년 법정 공방까지 이어진 끝에 이후 실기점수가 공개되고 있다.
某 의과대학 교수는 “응시생이 모두 동일한 문제를 치르지 않고 평가자 또한 다르다는 점에서 객관성에 대한 의문은 일부 남아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의사국시를 관장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공정성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국시원 관계자는 “시행 과정, 합격자 결정, 채점방식 등 모두 투명하고 이상이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며 “실기 합격률 변동은 필기 보다 미미한 수준으로,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14년 간 유지될 수 있었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정원이 150명인 학교와 40명인 학교에서 동일하게 10명이 떨어지더라도 합격률 차이는 크다”며 “정원 차이를 간과하고 합격률만으로 교육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의대생 사이에서는 필기시험보다는 확연히 실기시험 부담이 덜하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해 의사국시에 합격한 빅5 병원 연계 의대 졸업생 A씨는 “실기는 필기에 비해 채점항목 및 점수 공정성을 알기 어렵다는 체감을 하지만 준비 부담은 덜한 편”이라고 돌아봤다.
그러나 “산부인과 분만 전 관리, 외과 직장수지검사 등 실기시험에 출제되는 내용과 관련해 실습 시 교수들이 더 설명해주고 술기 연습 기회를 많이 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학생위원회가 40개 의대 학생회 대표를 대상으로 학업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학생들의 답답함이 드러났다.
학생들은 “주관식 시험 정답지가 공개되면 좋겠는데 긴가민가한 부분을 확인하지 못해 답답하다”, “체계적인 교육이 아쉽다”, “교수들이 학생들의 학업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많았다.
의학계 주도해서 교육 일원화 추진 필요···교수들, 교육 혁신 방안 고민 절실
한편, 의학계에서도 최근 의료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의대 교육의 혁신을 고민하는 자성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KAMC 학술대회에서 왕규창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前 서울의대 학장)은 “과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파장으로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어 “학생들 입장보다는 대학 재정과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교육계 내부 분열이 생겼다”고 꼬집었다.
왕 원장이 진단하는 최근 의학교육 환경 주소는 기초의학 위축 및 인턴 교육 비효율성, 젊은 교수들 이탈 등이다.
그는 “인턴 교육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학생들의 임상추론 실기 실습을 강화하고 진료 반영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며 “의학계가 주도해서 교육 일원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영미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최근 KAMC가 추진 중인 의대 ‘통합 6년제’ 과정 효과를 설명하면서, 의대 교수들의 자가 발전을 촉구했다.
이 교수는 “이제는 자신이 의대를 다닐 때 배우지 않았던 것을 가르쳐야 하는 시대로, 교수들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대학이 이런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현행 체제에서도 충분히 좋은 의사를 배양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교수들도 있겠지만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며 “의대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기획·운영하는 초석이 되는 교육체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