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의 팬데믹 구름이 걷히면서 산적해 있는 국내 보건의료 환경 과제들이 선명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와 예방의학계 등은 본격 감염병 대응·건강보험 재정·필수의료 보장성 등에 대한 고민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4일 오후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관한 1차 ‘의료보장혁신포럼’에서는 코로나19 유행 당시 가장 큰 문제였던 병상 확보와 건강보험 재정 고갈 등을 놓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험난했던 병상 확보···감염병 유행마다 빌릴까, 확보하고 있어야 할까?
정재훈 가천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지난 3년 간의 진료역량 대응 능력을 돌아봤다. 그에 따르면 감염병 일반병상은 국가 지정 300여개, 권역감염병전문병원 180여개, 중앙감염병전문병원 200개 미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환자 병상은 이전처럼 민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오미크론 대응 시에는 2800개의 중환자실을 확보했다.
정 교수는 “바이러스 전파 속도·중증화율 감소 수단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향후 평균적으로 800~2800개의 중환자 병상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성인 연세의대 교수는 그동안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병상을 포함해 예상치 못한 자원의 소모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캠핑카를 사거나, 필요시 렌트하는 방식 등 자원 활용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간 자원을 일명 ‘렌트’해서 썼는데, 문제가 있었다면 다음에 또 그 업체가 렌트해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병상 뿐 아니라 의사·간호사 등 인력이 똑같이 움직여줄지 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원된 자원은 일회용이 되면 안 되고 사기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며 “패널티 부여보다는 최선을 다했던 점 속에서 아쉬운 점을 발굴해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비 폭증···건강보험 지속가능성 개편 ‘수직적 보편성’·‘양입제출’
정재훈 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코로나19는 ‘블랙홀’처럼 의료체계 문제를 빨아들였다.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면서 호흡기 바이러스 및 합병증 등 노인인구에 영향이 큰 질환은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악화되고 있는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의료부양비는 쉼 없이 상승하고 있었고, 올해를 기점으로 건강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저성장·저출산 시대의 건강보장은 기존의 ‘수평적 보편성’이 아닌 ‘수직적 보편성’을 띠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정 교수는 “더 많이 걷어도 지출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재정 손실은 막을 수가 없다”며 “비급여 항목·실손보험 등의 조정해 보편보장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경증질환, 비필수의료 분야 등은 과감히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현웅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부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효율적으로 재정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선 지출, 이후 수입 결정 및 가격의 일부만 관리하는 ‘양출제입’ 재정관리 구조에서 먼저 총수입을 결정하고 이후 그것에 맞춰 지출을 관리하는 ‘양입제출’ 결정구조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민우 울산의대 교수는 그동안의 의료 이용이 과다했는지 돌아보는 데서 건보 지속가능성 논의가 출발할 수 있다고 봤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을지, 아니면 호미를 쓸지” 판단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팬데믹으로 의료이용이 평년 대비 줄었을 때 건강이 더 나빠진 게 없었다면 그동안 이용이 과잉돼있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비효율적이거나 효과가 덜한 약재, 행위 등을 검토해서 효율적으로 기존 재정을 관리해 필수의료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포럼 및 후속 포럼에서 나오는 의견들을 올해 수립할 보건의료발전계획 및 2차 건강보험종합계획에 반영할 예정이다.
정윤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병상 관리 및 건보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충분히 공감했다”며 “건보 개혁과 의료 개혁이 분리돼선 안 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