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영결식이 20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고인은 가족과 지인, 동료 교수 및 제자, 그리고 그가 수술했던 환자와 보호자들의 눈물 속에 영면에 들어갔다.
하루 아침에 동료를 잃은 의사 선후배, 특히 심장혈관흉부외과 미래를 함께 개척하고자 힘썼던 동료 교수들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며 추모를 이어갔다.
“자비로움과 순수함이 떠오르는 선생님”
영결식에서 김승후 울산대 의대 학장은 조사를 통해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며 “타인을 배려하던 주 교수 자상함으로 주위는 평온했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고인과 함께 일해온 김홍래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추도사에서 “지금도 본관 13층에 올라가면 복도에서 자전거 바퀴소리와 함께 선생님께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고 슬퍼했다.
이어 “선생님을 생각하면 자비로움과 순수함이 떠오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생명과 위안을 전했다”며 “부디 하늘에서는 ‘응급콜’로 깨는 일 없이 편안하시길 바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의료계는 조문과 함께 추모를 이어갔다. 대한의사협회는 혼신을 다해 진료해온 흉부외과 최고 석학이자 임상전문가를 잃은 사실에 비통함을 표했다.
의협은 “고인은 병원 10분 거리에 거처를 두고 응급환자 수술을 도맡으며 개인 시간보다 의업을 우선시 했다”며 “수많은 응급환자를 살렸지만 고인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빛나는 업적과 헌신을 새기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심장혈관흉부외과는 응급수술이 잦고 법적 소송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전공의들이 급감해왔다”며 “이러한 가운데 주 교수님 같은 인재를 잃은 것은 의료계를 넘어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다. 필수의료 인력 근무환경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고 참담함을 표했다.
고인 “할 일이 많다. 후배들 위해 우리가 흉부외과 더 좋게 만들자”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이사장 김경환)도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은 사고 당일 응급수술을 진행하고 아침 일찍 환자들을 만나며 일상을 보냈지만, 그날 오후 제자들을 위한 교육과 연구회의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했다. 이 소식을 듣고 동료들은 충격에 빠졌다.
주 교수가 떠난 뒤 눈물을 참으며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은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고인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학회는 “교수님을 아는 모든 이들은, 환자가 회복할 때 교수님이 짓는 아이 같은 웃음을 좋아한다”며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시도해야 한다면서 포기하지 않던 우직한 용기, 모든 의료진의 작은 의견도 흘려듣지 않는 겸손함, 환자 곁을 떠나지 않는 따스함을 보여줬다”고 기억했다.
고인은 생전에 항상 “후배들을 위해 흉부외과를 더 좋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학회는 “교수님은 24시간 환자를 걱정하고 흉부외과 미래를 걱정했는데, 숙제를 잔뜩 만들어주신 채 떠나셨다”며 “교수님이 사랑했던 환자와 아끼셨던 세상을 우리가 열심히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 결과 이룩한 조용한 영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의료계 동료들이 슬픔을 토해냈다.
주 교수와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의국 선배인 노환규 前 의협 회장은 “멀쩡히 인터뷰와 저녁 약속을 진행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택시 안에서 감당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며 “의국 생활이 끝난 후 나는 그를 그저 마음이 가는 후배로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렇게 살기 정말 어렵다. 네가 그렇게 훌륭한 의사로 평생을 살아갈 줄을 내가 몰랐다는 걸 인정한다”며 “돌아올 수만 있다면 돌아와 달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노 前 회장은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그는 “주 교수는 대동맥·심장 수술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 결과를 일궈낸 위대한 인물”이라며 “그와 같은 조용한 영웅들에 의해 세상은 발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흉부외과 의사들이 특히 애통해하는 이유가 있다”며 “수많은 노력과 희생, 환경 투자가 있어야만 그 자리에 그런 의사가 메스를 잡고 수술을 집도해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아이엠재활병원 원장)도 자신의 SNS에 “늘 환자가 우선인 삶을 살았던 이 시대 참 의사 주석중 교수님, 천국에서 평안을 누리소서”라고 추모했다.
이어 “그처럼 이 땅에 수많은 헌신적 의사들이 있기에 우리나라 의료체제가 이 정도라도 유지되고 있다”며 “오늘도 악조건 속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14만 의사 선생님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고인 대학·의국 후배인 송석원 이대서울병원 대동맥혈관병원 병원장(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진다”며 “많은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애도했다.
한편, 故 주석중 교수는 198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수료했다.
이어 1998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전임의로 근무를 시작한 후 200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의사 면허증을 취득했으며, 같은 해 하버드 의대 버밍엄 여성병원 심장외과 임상 전임의를 거쳤다.
그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대동맥질환센터소장을 맡아 대동맥박리 등 대동맥질환, 대동맥판막협착증 등 응급수술이 잦고 업무 강도가 극히 높은 전문 분야에 헌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