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현상 장기화와 시멘트, 철근 등 원자잿값 상승으로 건축비 인상폭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병원 건축시장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신축이나 증축을 추진하던 병원들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건축비 부담에 계획을 전면 보류하는 등 병원계 건설경기가 급속히 얼어붙는 모양새다.
특히 당장 올해부터는 정부의 대대적인 병상 제한 조치가 가동됨에 따라 병원들은 건축비 부담은 물론 제도적으로도 신‧증축에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병원계에 따르면 최근 병상당 건축비가 10억원을 넘어섰다. 1000병상 규모의 병원을 설립하려면 무려 1조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병상당 건축비에는 단순 자재비 외에도 의료장비, 각종 시설비용 등이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다. 병원 설립에 소요되는 비용 총계를 추산할 때 통상 1개 병상 당 건축비를 사용한다.
병상당 건축비는 지역이나 규모에 따라 천양지차이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3~5억원 정도가 통상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세계 경제가 요동쳤고, 그에 따른 여파로 원자잿값이 치솟으면서 병상당 건축비도 10억원을 돌파했다.
설계비는 물론 자재비, 인건비, 장비비 등 모든 영역에서 단가가 오른 탓에 신축이나 증축을 추진하던 병원들이 난관에 봉착하는 상황들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 700병상 규모 대학병원을 포함한 인하대학교 김포메디컬캠퍼스 조성 사업은 김포도시관리공사와 인하대학교가 건축비 분담 방안을 놓고 대립하면서 좌초 위기에 놓였다.
당초 양측은 3200억원으로 추산된 건축비를 절반씩 분담하기로 논의했지만 이후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건축비가 대폭 증가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정부 지원을 받아 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키로 했던 양산부산대학교병원도 당초 예상 대비 천정부지로 뛴 건축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축비 등 사업비로 700~800억원을 계획했지만 건축사무소 등의 추계결과 1500억원으로 2배 가량 사업비가 늘어났다.
인건비와 건축자재 가격 등이 크게 오른데다 국립대병원 등 공공기관에 신재생에너지 시설 설치 의무화 등 여건 변화로 사업비가 크게 증가했다.
건축비 인상과 함께 정부의 병상 제한 정책도 병원 건축시장에 악재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수도권·대도시에 과도하게 집중된 병상에 대한 구조조정 내용을 담은 제3기 병상수급 관리대책을 발표했다.
2024년부터 인구 수 등 병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지역은 병상을 더 늘리지 못하게 억제하고 병원 신설 또는 증설시 지자체와 복지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지자체가 병상관리 기준을 바탕으로 지역별 의료 이용, 의료 생활권 등 지역 상황을 고려해 병상수급 및 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사실상 올해부터 병상 억제책이 시행되는 만큼 신‧증축을 추진하려던 병원들은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일부 병원들은 일단 제도 시행 전에 신‧증축 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일단 추가 병상을 확보해 놓으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한 종합병원 원장은 “증축 계획이 있어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허가가 나더라도 당장 공사를 시작하기는 어렵다”며 “치솟은 건축비에 병상 제한까지 이중고에 한숨만 나온다”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