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장기 파업으로 발생한 의료 공백을 PA(진료지원간호사)가 상당 부분 메우면서 대학병원에서 교수와 PA 간 협업 체계가 빠르게 안착하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복귀하는 전공의들의 입지가 예전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의료 현장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선 교수들 사이에서는 PA 업무 숙련도가 꾸준히 향상되면서 상당 부분을 안정적으로 소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PA 역할이 점차 확대되면서 교수들과 호흡 역시 한층 자연스러워졌다는 설명이다.
PA(Physician Assistant)는 의사 지도·감독 아래 일부 검사와 시술 등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인력을 말한다.
그간 의료법상 근거 규정이 없어 불안정한 지위에서 사실상 불법 업무를 맡아왔지만 최근 정부가 PA 업무 범위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이들 역할과 지위가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1일 PA 업무 행위 목록 고시(안)을 담은 진료지원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골수천자, 피부 봉합, 동맥혈 천자 등 일부 침습적 의료행위를 포함한 총 45개 의료행위를 일정 요건을 갖춘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현장에서는 전공의 공백을 PA가 메우면서 업무 부담을 덜어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A 교수는 "PA들이 실제 의료 현장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며 "특히 숙련도가 높아진 만큼 진료 효율성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복귀 후 업무범위 등 충돌 우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러한 변화가 전공의 복귀 이후 본격적인 업무 분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A 교수는 "전공의가 다시 들어오면 PA와 업무 조정이 불가피한데 누가 어떤 업무를 맡을지 애매해질 수 있다"며 "이미 숙련된 PA를 얼마나 빼야 하는지도 새로운 고민거리"라고 털어놨다.
특히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PA와 전공의 간 애매한 입지가 장기적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시선도 감지되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 실시된 전공의 추가 모집에 총 860명이 지원했다.
이는 지난해 수련 인원의 약 20% 수준으로 상당수 전공의들이 일반의 진로로 전환하거나 복귀 시점을 신중히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의료 현장에서는 업무 숙련도가 높은 PA가 오히려 초임 전공의를 지도하거나 교육하는 상황도 연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대학병원 B 교수는 "지금 형성되고 있는 교수-PA 체계가 일종의 새 진료 표준처럼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전공의들도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가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복지부는 전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PA가 1만7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처럼 PA와 전공의 간 역할 중첩이 현실화되면서 향후 업무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관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PA와 전공의 업무범위 및 교육 내용, 책임 소재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이 없으면 현장 혼선이 반복될 수 있다"며 "제도화가 본격화되는 만큼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