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코로나19 관련 주식 투자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은경 前 질병관리청장을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공직자 이해충돌 논란으로 장관 후보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을 깨고 전격 지명되면서 최종 임명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대통령실은 “정은경 前 청장이 코로나19 당시 정책 수행 능력과 소통 능력을 발휘한 보건 전문가”라며 “의료대란 역시 각계와 소통하며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정은경 前 청장의 이재명 정부 초대 복지부 장관 지명은 다양한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정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된다면 의사 출신 복지부 장관은 정진엽 前 장관 퇴임 이후 8년 만이다. 보건복지부 역사상으로는 9번째다.
1948년 보건복지부가 사회부로 태동한 이래 50명 이상의 장관이 바뀌는 동안 의사 출신이 임명된 사례는 8명에 불과했다.
보건부 시절 구영숙, 오한영, 최재유 등이 장관을 지냈고, 이후 권이혁 서울의대 교수가 제22대 보건사회부(당시) 장관, 문태준 前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제23대 장관으로 바통을 이어 받았다.
이어 박양실 前 대한여의사회 회장이 제27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고, 보건복지부로 조직명이 바뀐 후로는 주양자 前 국립의료원 원장이 제35대 장관에 올랐다.
이후 17년 동안 정치인과 관료, 학자 등에 밀려 장관직에 임명되지 못했지만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장이 제52대 장관으로 내정됐다.
정진엽 前 장관은 지난 2015년 8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제52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이해충돌 문제 등 험난한 청문회 예고
하지만 정은경 후보자의 최종 임명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전문성과 업무 역량은 이견이 없지만 최근 불거진 배우자 주식 투자 의혹이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정 후보자는 이재명 정부의 첫 복지부 장관 1순위로 거론되다가 배우자의 코로나19 관련 주식 투자 의혹에 휘말리면서 후보군에서 배제됐다는 관측이 많았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2일 SNS에 ‘방역 영웅? 재산신고는 은폐 영웅?’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정 전 청장 배우자의 코로나 관련 주식 보유를 비판했다.
배우자가 창해에탄올 5000주 등 코로나 관련 주식을 보유한 사실이 2022년 확인됐고, 최근 장관 검증 과정에서 진단키트·마스크 기업 주식도 보유하고 있음이 추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국민 생명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코로나 사령탑’이 뒤로는 배우자를 통해 관련 주식으로 이익을 취한 것은 명백한 공직자 이해충돌이라고 몰아 부쳤다.
때문에 조만간 열릴 인사청문회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야당의 거센 공세가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고위공직자 7개 검증 기준을 들어 송곳검증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활용된 7개 검증 기준은 병역면탈,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범죄 등으로, 여기에 해당될 경우 임용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인사청문 기간 동안 정치권 등을 통해 정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시작될 경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 초대 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정호영 前 경북대병원장 역시 자녀 의대 특혜 입학 의혹에 발목을 잡혀 결국 낙마한 바 있다.
"의정갈등 해소 최선 다하고 의료개혁 지속 추진" 피력
일단 정은경 후보자만 놓고 보면 기대감이 높다. 풍부한 공직 경험과 의사 출신인 만큼 1년 4개월 넘게 이어져 온 의정갈등 해소에 적극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은경 장관 후보자 지명을 환영했다.
의협은 대통령실 인사 발표 직후 “정은경 前 청장이 지명된 것은 국가 위기 극복에 헌신한 인물이 중책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이어 “내정자가 지닌 전문성과 합리적 태도 및 공공의료에 대한 깊은 태도는 현 의료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정 후보자가 “진정성 있는 소통과 협력으로 의정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의협은 “정부와 신뢰 회복, 협력 관계 형성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화답했다.
정 후보자는 전남여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와 예방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경기 양주군 보건소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한 정 후보자는 이후 질병청 전신인 국립보건원 역학조사담당관으로 ‘의사 공무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보건복지가족부 질병정책과장, 보건산업정책국 보건산업기술과장·응급의료과장, 질병관리본부 만성질환관리과장, 질병예방센터장, 긴급상황센터장, 질병관리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방역 최전선에서 활약했으며, 2020년에는 질병관리청 초대 청장으로 임명돼 약 1년 반 동안 코로나19 대응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차분하고 신뢰감 있는 브리핑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주요 언론에도 소개되며 '국민 영웅'으로 불렸다.
그는 질병관리본부장 및 질병청장으로 총 4년 10개월간 방역 사령탑 역할을 수행한 후 2022년 5월 퇴임했다.
이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임상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21대 대선을 앞두고는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이끌었다.
때문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초대 복지부 장관 ‘0순위’ 후보자로 거론됐고, 배우자 주식 투자 의혹에도 이 대통령이 무한 신뢰를 보내면서 예정대로 장관에 지명됐다.
의사 공무원 출신인 정 후보자 임명은 1년 5개월째로 접어든 의정갈등 해결과 새 정부 공공의료 정책 추진을 위한 인선이라는 분석이다.
정은경 후보자 역시 “진정성 있는 소통과 협력으로 의정갈등을 신속히 해결하고, 지역‧필수‧공공의료를 강화해 모든 분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어 “국민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된 의료개혁을 추진해 국민 건강권을 보장할 것”이라며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그는 “그동안 쌓은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 전문가, 현장, 국민들 목소리를 항상 경청하고 적극 소통하면서 정책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배우자 주식 투자 의혹 등 일련의 논란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인사청문회를 성실하게 준비하며 청문회에서 보다 상세히 말씀드리겠다”고 정면돌파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