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중환자실 붕괴 임박, 지방은 5년내 사라질수도”
조중범 대한소아중환자의학회 부회장 “대한민국 미래 기둥 아이들 위태”
2026.10.15 05:19 댓글쓰기



[기획1] 대한민국 의료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사회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필수의료’ 기반이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특히 소아·청소년 진료 현장에서는 인구 감소와 의료진 부족, 높은 업무 강도, 낮은 보상, 의료분쟁을 포함한 법적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 부족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소아과 의사 숫자가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증환아를 치료할 수 있는 소아 전문의와 필수의료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응급진료부터 입원, 중환자 치료에 이르기까지 의료체계 연결고리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소아 환자는 성인과 달리 성장과 발달 단계에 따라 진료와 치료 방식이 달라 전문적인 경험과 숙련도를 갖춘 의료진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제도는 갈수록 구멍이 뚫리는 실정이다. 한 번 사라진 필수의료 기반과 전문인력을 다시 확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존재여부를 넘어, 미래 우리 아이들이 위급한 순간에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가 남아 있을 수 있냐는 문제로 심화됐다. 특히 소아중환자 진료처럼 환자 수가 많지 않아도 반드시 유지돼야 하는 영역은 시장 수요와 공급만으로 존립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위기 속에서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소아·청소년 필수의료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특별기획 ‘마지막 세대가 되기 전에, 아이들을 지킬 의사들’ 기사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소아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을 직접 만나, 현재 의료체계가 어디서부터 흔들리고 있는지 들어봤다. 소아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줄어들고, 중증소아를 치료할 전문인력까지 현장을 떠난다면 잃는 것은 단순한 의료서비스가 아니다. 대한민국 미래 기둥인 아이들이 가장 위급한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안전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소아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현장에서 어떤 변화가 벌어지며 향후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대학병원 소아중환자실(PICU)이 전문의료진 유입 단절과 구조적인 보상체계 미비로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중환자 치료가 필요한 소아 환자를 맡는 소아중환자실은 위기 상황에서도 반드시 유지돼야 할 필수의료 영역이다. 하지만 신생아 중환자실(NICU)과 소아응급의료에 비해 정책적인 관심과 지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다.


조중범 대한소아중환자의학회 부회장(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최근 데일리메디와의 인터 뷰에서 “현재 구조가 지속된다면 지방 소아중환자실은 5년 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성인중환자실과는 전혀 다른 소아중환자실만의 인력 및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학회 차원에서 파악한 전국 주요 16개 병원 소아중환 자실 운영 현황을 보면 180개 병상을 33명의 전문의와 5명의 전담의, 8명의 전공의가 지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전국 소아중환자실 전담의가 사실상 5명에 불과한 상황 에서 이 가운데 2명이 삼성서울병원에 있고 지방 병원의 경 우 전담의 지원자가 수년째 없는 곳도 적지 않아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문제는 단순한 인력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소아중환자실은 병동에서 상태가 악화된 환자나 수술 후 집중치료가 필요한 중증 소아를 대상으로 24시간 면밀한 관찰과 즉각적인 처치가 이뤄져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야간과 휴일 진료 공백이 커지는 데다 전공의 근무시 간 단축까지 맞물리면서 지방 거점병원조차 24시간 정상적인 소아중환자 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소아중환자실에 성인 기준 적용 ‘독(毒)’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성인중환자실을 기준으로 설계된 인력 운영체계다.


성인중환자실은 통상 20~25병상 규모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문의 여러명을 배치해 팀 단위 진료가 가능하다. 반면 소아 인구 감소로 지방 소아중환자실은 5~10병상 규모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기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전문의 1명만 배치되는 구조가 되기 쉽다.


결국 한 명의 전문의가 24시간, 365일 중환자 진료에 사실상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이는 과도한 업무 부담과 소진으 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조 부회장은 “소아중환자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최소 전문의 5명이 거점병원에 배치돼 순환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의료진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확보할 수 있고, 정상적인 진료체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인력을 유입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지방 소아중환자실에 지원할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NICU·소아응급실에 가려져 PICU 지원 정책 ‘공백’


정책적 사각지대도 문제다. 정부와 공공부문 지원이 상대적으로 집중된 분야는 출생 직후 신생아를 담당하는 NICU와 응급환자를 담당하는 소아응급실에 맞춰져 있지만, 생후 1개월부터 18세까지 중증 소아를 치료하는 소아중환자실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것이 현장 지적이다.


출생과 응급이라는 정책적 우선순위에 관심이 쏠리는 사이 중증소아 생명을 직접 지키는 PICU는 정책 틈새에 놓였 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에서는 환자 수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경제성 논리만 적용될 경우 소아중환자실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조 부회장은 “소아 인구가 적은 지방 병원을 수요와 공급 경제논리만으로 접근하면 결국 지역 소아중환자 진료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곧 지역 소아환자 건강권을 침해하는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소아청소년 의료분쟁 부담까지 커져 후배 의사 유입 막는 구조 고착화”


여기에 사법적 위험 역시 젊은 의사들의 진입을 어렵게 만드 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증 소아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 될 수밖에 없는 소아중환자 진료 특성상 의료진이 부담하는 특히 숙련된 전문인력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세대 간 교육과 경험 전수가 끊길 경우 소아중환자 진료의 질 자체가 급격하 게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 부회장은 “소아중환자 진료는 단기간에 사람을 투입한다고 바로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며 “숙련된 전문인력이 축 적해온 경험과 노하우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희귀질환 치료제 한 개에 수억원이 투입되는 시대인 만큼 지역 소아중환자실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공공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필수의료 기반을 지키는 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결국 핵심은 소아중환자실을 성인중환자실 축소판으로 바라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 부회장은 “소아중환자실 위기는 단순히 의사 숫자가 부족 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며 “소아 특성과 진료량, 지역별 환 자 분포를 반영하지 않은 인력기준과 보상체계가 현재의 위기 를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법적 리스크가 상당하지만, 의료분쟁에 따른 배상액 규모 역시 과거보다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 진료현장 주장이다.


과거 수천만원대에 머물던 손해배상 부담이 최근에는 10억원 에서 20억원대에 이르는 사례까지 거론되면서, 진료 현장에서 감당해야 할 위험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이다.


결국 젊은의사 입장에서는 수입과 근무환경, 일과 삶의 균형, 고용 안정성, 사법적 위험 등 진로를 결정하는 거의 모든 요소 에서 소아중환자 분야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 부회장은 “누가 봐도 후배 의사들이 들어오기 어려운 구조 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인력이 끊기면 단순히 한 병원의 문 제가 아니라 소아중환자 진료 역량 자체가 지역에서 사라지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소아중환자실 인력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결국 환자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소아중환자실 입원환자의 사망률은 약 4% 수준으로 일부 선진국 2~3%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현 장의 설명이다.


이어 “지방 소아중환자실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시 장 논리에 맡겨둘 수 없는 필수의료”라며 “거점병원 소아중환 자실에 공공재원을 투입하고, 성인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인력 기준과 수가체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인력 보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인력 양성과 운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고 조 부회장은 강조했다.


지역 소아중환자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중증 소아환자다.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거나, 적기에 필요한 중환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부회장은 “지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며 “지역 소아중환자 진료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PICU를 별도 필수의료 영역으로 인정하고 인력과 수가, 법적 안전장치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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