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최고 수준인 한국의 병상수를 비롯해 CT, MRI 등 고가 의료장비 수, 외래진료 횟수는 그동안 자랑이 아닌 골칫거리로 여겨지곤 했다. 뛰어난 의료인프라가 아닌 의료 과잉, 즉 한국적 의료의 적폐로 불리곤 했던 많은 병상과 CT 수, 높은 의료접근성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처음으로 효자가 됐다. 많은 병상을 갖춘 지역별 대형병원에서는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충분히 보급된 CT 덕분에 코로나19 감염을 쉽게 가려낼 수 있었다. 전국에 퍼져있는 3만1000여 개 의원은 코로나19 1차 방어선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환자 대부분은 확진 전에 의원을 방문했고, 의원에서는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구별해 선별진료소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편집자주]
[데일리메디 임수민 기자] 우리나라의 많은 대형병원과 그에 따른 병상수는 그동안 대표적인 의료과잉의 예시로 지적받아왔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상 수는 인구 수를 고려했을 때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것이 사실이다.
OECD 건강 통계 2019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2017년 기준 12.3개로 13.1개인 일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이는 OECD 평균인 4.7개에 비해 2.6배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병상 수 증가율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높았다. 2012년과 2017년 나라별 총 병원 병상 수를 비교했을 때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0.2개 병상이 감소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개 증가한 결과를 보였다.
이와 같이 대형병원 수와 병상수가 늘어난 이유는 과거 지역별 의료 수요에 맞게 병상을 제한하는 제도가 부재했었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병상과 장비는 거의 자유시장에 맡겨져 있었다. 수요를 충족하면 병원 개설이나 병상 증설, 신규 장비 도입 등을 통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2019년 8월 병상을 수급, 관리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개정안에는 시설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립한 병상의 합리적인 공급·배치에 관한 기본시책과 병상 수급·관리계획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등에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OECD에서 두 번째로 많은 우리나라 병상수가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앞에 병상과 의료장비 부족 등으로 고전을 겪고 있는 세계 각국 상황을 감안할 때 충분한 병상수가 감염병 대응에 있어 효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의대는 전문가 31명이 참여해 개설한 ‘코로나19 과학위원회’ 웹사이트를 통해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많을수록 코로나19 완치율이 높아진다”는 연구를 최근 공개했다.
연구에는 오명돈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과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이 고문 위원으로, 감염내과와 호흡기학, 역학, 통학 분야의 교수 등이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OECD 국가 중 확진 환자 수가 3000명이 넘은 나라의 완치율을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로 비교한 결과, 국가별로 병상 수가 많을수록 완치율이 증가하고 있음이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표에 따르면 완치율이 높은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등이었는데 이들 나라의 병상수는 대부분 OECD 평균(4.7개)보다 많았다.
12.3개의 병상수를 가진 국내 완치율은 지난달 30일을 기준으로 84.2%였다.
인구 1000명당 병상수가 8개로 유럽에서 가장 많은 병상수를 가진 독일의 완치율이 76.2%였으며 다음으로 많은 병상수(5.9개)를 지닌 프랑스는 37.5%, 병상수 4.5개인 스위스는 78.1%로 높은 완치율을 보였다.
완치율이 낮은 나라로는 미국과 영국, 스웨덴 이스라엘 등이 포함됐는데 이들의 병상수는 대부분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평균 2.8개 병상을 가진 미국은 완치율이 13.8%였고 ▲영국 0.2%(병상수 2.5개) ▲스웨덴 4.8% (병상수 2.2개) ▲포르투갈 6.1% (병상수 3.4개)였다.
우리나라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은 현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서울의료원 등 69개다. 이들은 약 1만7000개의 병상에 입원해 있던 일반 환자를 다른 데로 돌리고 코로나19 환자만 받았다.
조윤민 서울대 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선임연구원은 “환자가 급증할 때 치료 장소에 여유가 있으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