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미래 전략인 ‘딥체인지(근본적인 변화)’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며 성장성이 풍부한 분야로 헬스케어 사업을 꼽고, ‘제2의 하이닉스’처럼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 공략을 위한 주자로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텍이 뛴다. SK텔레콤과 자회사 SK하이닉스도 의료기기 및 의료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한다.
이처럼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변화 중인 SK를 살펴봤다.
“제약·바이오, 차세대 성장동력 선정 ”
최태원 회장은 올초 ‘딥체인지’라는 화두를 던지며 ㈜SK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했다.
최태원 회장은 신년사에서 “SK가 지난 20년간 그룹 이익이 200배 성장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여전히 ‘올드 비즈니스’를 운영하거나 개선하는 수준에 안주하고 있다”며 “미래 생존이 불확실한 서든 데스(Sudden Death) 시대에서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딥 체인지(Deep Change)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반도체·소재, 에너지, ICT와 함께 헬스케어를 지목했다. 헬스케어 부문에 2조원을 투자할 계획도 밝혔다.
사실 SK의 제약·바이오 사랑은 역사가 깊다. 이 분야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우기 위한 노력은 25년 전부터 시작됐다.
SK는 1993년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신약 연구 ·개발(R&D)에 돌입했다. 당시 유공 대덕 기술원 내 신약 개발연구팀이 SK바이오팜의 전신(前身)이다.
조직이 꾸준히 커지다가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된 뒤 지주사 직속 신약개발사업부로 승격했으며, 2011년 물적분할을 통해 SK바이오팜이 탄생했다.
2015년에는 원료의약품 생산 및 제조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SK바이오팜으로부터 SK바이오텍을 분사시켰다. 쉽게 말해 SK바이오팜은 신약 R&D, SK바이오텍은 의약품 생산 및 제조에 집중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SK바이오팜에는 최 회장의 장녀 최윤정씨가 책임 매니저로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 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같은 학교 뇌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던 그는 지난해 6월 입사했다.
오너의 자녀가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보니 SK바이오팜은 더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임상 개발 수행 및 신약 관련 마케팅은 미국 뉴저지 현지법인인 SK라이프사이 언스가 맡고 있다.
한편, SK케미칼은 최태원 회장의 사촌인 최장원 씨가 44.6%의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 내 포진돼 있다. 최장원 씨는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과 SK케미칼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SK케미칼은 화학(그린케미칼비즈)과 제약(라이프사이언스 비즈) 부문으로 나눠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라이프사이언스비즈는 제약과 바이오(백신) 사업 부문으로 구성되는데, 지난 7월 백신 사업을 분할해 신설회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SK케미칼 100%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로써 SK케미칼은 친환경 소재 및 합성의약품 사업에,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사업에서 더욱 전문성을 키우고 사업 강화에 나선다.
SK바이오팜·바이오텍·하이닉스 잇단 성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장기간 추진됐던 신약 개발 사업들이 잇따라 성과를 내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 11월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판매 허가신청서(NDA)를 미국 FDA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이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글로벌 임상 시험, FDA 허가 신청까지 직접 수행한 첫 사례다.
북미·유럽·아시아·중남미 등에서 24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법인인 SK라이프 사이언스를 통해 NDA를 제출했다. 심사 및 시판 허가까지 포함하면 미국 발매 시점은 2020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SK바이오팜은 미국 법인에 세노바메이트 마케팅 전담 조직을 꾸려 판매망을 구축하는 등 현지 판매·마케팅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노바메이트 원료의약품 생산은 SK바이오텍이 맡는다.
SK바이오팜은 “NDA 제출 이후 내년 하반기 상업생산 및 IPO를 계획하고 있다”며 “제품이 시판되면 2021년 이후 매출 1조원 이상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12월에는 미국 재즈와 공동 개발한 수면장애 신약 ‘솔리암 페톨’이 미국 FDA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을 전망이다. 허가를 나면 SK바이오팜은 재즈로부터 로열티를 받게 된다.
솔리암페톨은 SK바이오팜이 임상 1상을 마친 뒤 2011년 기술이전한 신약으로, 두 회사는 공동 개발 과정을 거쳐 작년 12월 임상 3상을 완료하고 FDA에 판매 허가를 신청했다.
금년 11월에는 유럽의약품청(EMA)에 NDA를 제출하기도 했다.
SK바이오팜은 이 외에도 다수의 파이프라인을 갖췄다. SK바이오팜은 국내 최다인 16개 파이프라인 임상 시험 승인을 FDA로부터 확보한 상태다.
SK바이오텍은 현재 노바티스·BMS·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사 생산 약에 들어가는 원료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2017년 6월 아일랜드 스워즈의 BMS 원료의약품 공장 인수에 성공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유일하게 유럽 본토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직접 보유한 회사가 됐다.
제약과 무관하던 SK그룹 계열사들도 헬스케어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SK텔레콤도 디지털헬스 사업 구체화
지난 2011년 헬스케어사업본부를 신설한 SK텔레콤은 IT 통신 인프라를 활용한 무선 헬스케어 의료기기 및 시스템 등을 선보였다.
SK텔레콤은 올해 11월에는 아이센스와 손잡고 IoT 전용망 ‘LTE Cat.M1’을 활용한 휴대용 혈당측정기 ‘케어센스 N IoT(CareSens N IoT)’를 출시했다.
당뇨 환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별도의 통신장비 없이 혈당 수치를 본인 휴대폰과 가족 및 건강관리서비스 기관에 전송할 수 있다.
앞서 8월에는 마크로젠과 AI 유전체 분석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SK텔레콤은 AI 기반으로 마크로젠이 보유한 유전체 데이터와 의학정보 등의 데이터를 분석·축적·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중국 현지 공장이 위치한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 3억 달러(약 3370억원)를 투입해 800개 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건립한다.
그러나 SK텔레콤도 같은 지역에 ICT를 기반으로 한 헬스케어 사업을 벌이고 있어 SK그룹이 중국에서 헬스케어 사업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유일 세포배양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와 스카이셀플루 4가는 출시 이후 3년만에 국내 누적 판매량 1400만 도즈를 돌파했고, WHO PQ(사전적격심사) 인증을 통한 국제 입찰을 준비 중이다.
지난 2월엔 글로벌 백신 리더인 사노피 파스퇴르와 최대 1억5500만 달러(약 1730억원) 규모로 독감백신 생산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세계에서 두번째로 시판 허가를 받은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도 출시 첫해 시장점유율 50% 달성과 개발도상국 진출을 추친하고 있다. 지난달 허가된 수두백신 스카이바리셀라 역시 국내 공급과 해외 입찰 시장 참여를 동시에 타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