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료기기 산업계가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 빠른 기술 발전으로 첨단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어 의료기기 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지정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최근 중국 의료기기 산업과 관련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2010년 1200억 위안, 약 21조3500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발표한 2010년 한국 의료기기 산업 규모는 3조9000억 원. 업계가 추산하고 있는 매출액 기준 시장 규모가 7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 시장은 이미 한국의 7배에 이르는 시장을 보유한 셈이다. 중국 의료기기 산업의 최근 5년간 성장률은 평균 27%로 성장세 또한 초고속이다.
KOTRA는 2015년 중국 의료기기 시장이 3400억 위안, 60조 규모로 성장해 일본을 추월해 전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의료기기 무역 현황도 한국을 압도한다. 지난해 중국 의료기기 수출입액은 총 238억2600만 달러. 수출과 수입이 각각 141억8100만 달러와 96억4500만 달러를 기록해 무역수지 흑자를 이어갔다. 수출액과 수입액 역시 전년대비 54%와 55% 성장한 수치다.
2010년 수출 14억5436만 달러, 수입 22억6583만 달러로 8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를 보이는 등 만성 적자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는 한국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중국은 가격 우위를 기반으로 중저가 제품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으며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의료기기 분야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KOTRA는 중국 로컬기업이 생산한 칼라 도플러 초음파 진단기기와 X-ray 기기 등이 지난해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2010년에 비해 8억 달러 이상 수출 증가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유럽과 미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의 첨단 의료기기 시장점유율을 각각 12%와 10%까지 끌어올린 상황이다.
의료기기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 첨단 의료기기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향후 수입의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과 더불어 중저가 의료기기 매출을 늘리기 위한 작업이 활발하다.
지난해 열린 중국 국제 의료기기 박람회에서 GE, 필립스, 캐논 등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중저급 의료기기를 선보이며 중국 업체들을 견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GE헬스케어 중국법인은 현재 첨단의료기기와 중저급 의료기기 매출이 8:2 비율을 보이고 있지만 향후 이 비율이 5:5까지 변할 것으로 예측하고 중저가 시장 선점을 위한 유통망 확대를 추진 중이다.
중국 로컬 기업의 성장도 주목할 부분이다. 중국 대표 제조사로 꼽히는 민드레이(Mindray)는 매출의 10%를 R&D에 고정 투자하고 800여 명의 R&D 인력을 보유할 정도로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정부 역시 기술장벽을 동원해 글로벌 기업 및 타국 업체들을 견제하고 자국 업체 및 시장 보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내세워 자국 업체들과의 합작을 추진하는 정책을 펴 산업을 육성해 왔다.
KOTRA는 중국이 첨단 의료기기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비해 한국이 보다 빠른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한국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단적으로 2008년부터 정부주도 의료기기 R&D 지원 비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08년 753억 원이었던 R&D 정부 연구비는 2010년 438억 원으로 42%나 줄었다. 시장 규모에 맞는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
국내 업체들이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업 자체 R&D 투자가 절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향후 한국 의료기기 브랜드의 세계 진출에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시장 규모와 목표에 맞는 정부지원과 업체들이 위기의식을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 유럽 등에 비해 기술력이 뒤처지고 중국에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다고 판단하지만 앞으로는 중국에게 기술, 가격 모두 밀리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며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